잘 데려온 불펜투수 하나 열 마무리 안 부럽다. 거침없는 상승세로 68년만의 메이저리그 우승을 노리는 클리블랜드의 앤드류 밀러는 월드시리즈 무대에서도 '가을의 지배자'의 위력을 과시했다.
26일(한국시간) 미국 오하이오주 클리블랜드 프로그레시브필드에서 열린 2016 메이저리그 시카고 컵스와의 월드시리즈 1차전.
3-0으로 앞선 클리블랜드는 6회까지 볼넷없이 안타 4개만을 내주고 탈삼진 9개를 솎아내며 무실점 호투하던 선발 코리 클루버가 7회초 선두타자에게 안타를 맞자 주저없이 투수를 교체했다.
당시 클루버의 투구수는 88개. 충분히 더 던질 수 있었지만 테리 프랑코나 클리블랜드 감독은 망설임이 없었다. 경기는 후반부로 접어들었고 그에게는 확실한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다.
2016년 가을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좌완 중간계투 앤드류 밀러다.
시즌 중반 뉴욕 양키스에서 영입한 밀러는 올해 포스트시즌 6경기에서 총 11⅔이닝을 던져 1승무패 1세이브 4홀드를 기록했고 단 1점도 내주지 않았다. 피안타율 0.132, 피OPS(출루율+장타율) 0.355를 기록하며 그야말로 상대를 압도했다.
그런데 밀러가 흔들렸다. 볼넷과 안타를 연거푸 내줘 무사 만루 위기에 처했다. 1997년 이후 처음으로 클리블랜드에서 열리는 월드시리즈 경기를 보기 위해 경기장을 가득 메운 팬들은 침묵에 빠졌다.
그러나 이때부터 '밀러 타임'이 시작됐다. 대타 윌슨 콘트레라스를 중견수 플라이로 처리하고 애디슨 러셀과 데이비드 로스를 연거푸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불을 껐다.
밀러에게는 놀라운 기록이 있다. 밀러는 2013년부터 이날 경기까지 총 26번의 만루 상황에서 안타 1개, 볼넷 3개만을 내줬고 삼진은 12개나 솎아냈다. 만루에 강한 사나이다.
밀러는 8회에도 등판했다. 프랑코나 감독은 올해 포스트시즌에서 불펜투수의 '1경기=1이닝' 등판 시스템을 지웠다. 밀러는 8회에 안타와 볼넷을 내주고 득점권 위기에 몰렸으나 타격 감각이 물오른 카일 슈와버를 헛스윙 삼진으로 처리하고 또 불을 껐다.
클리블랜드는 밀러가 마운드를 지킨 사이 승부를 결정지었다. 1회말 2득점,4회말 로베르토 페레즈의 솔로홈런으로 기선을 제압한 클리블랜드는 8회말 페레즈의 3점홈런으로 쐐기를 박았다. 마무리 코디 앨런이 9회를 책임지고 6-0 팀 승리를 지켰다.
밀러의 투구수는 다소 많았다. 46개. 보스턴 레드삭스와 토론토 블루제이스를 공포에 몰아넣었던 위압감은 다소 떨어져보였다. 그러나 밀러는 밀러였다. 하위타순에서 상위타순으로 이어지는 7,8회 승부처를 실점없이 막아내며 팀 승리 가능성을 높였다.
'밀러 효과'는 또 있었다. 프랑코나 감독은 경기 후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앤드류 밀러가 등판하면서 클루버가 에너지를 남겨둔 채 마운드에서 내려올 수 있었다"며 상황에 따라 클루버가 3일 휴식 후 4차전에 등판할 여지를 열어두겠다고 밝혔다.
이날 클루버에게 압도당한 시카고 컵스로서는 끔찍한 소리다.
71년만에 월드시리즈에 올라 108년만의 우승을 노리는, '염소의 저주'를 깨겠다고 나선 시카고 컵스는 막강한 타선을 갖추고도 무기력한 패배를 당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