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씨 하나 피었네'는 글씨 예술가 강병인이 지난 2009년 출간하였던 '글꽃 하나 피었네'를 바탕으로 글과 작품을 다시 쓰고 재구성한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돌아보면 부끄럽고 또 부끄러운 것이 나의 손으로 나온 글씨'들이다. 그래서 다시 썼다고 한다. 글도 그렇지만 글씨는 대부분 새로운 작품이다. 초등학교에서 서예를 접하고 붓을 잡았던 저자는 중학교 때 교과서에서 추사 김정희 선생을 만나 정신적인 스승으로 모시고 그를 닮고자 했다. 그래서 스스로 지은 호가 '영원히 먹과 함께 살겠다'는 뜻을 담은 영묵永墨이다.
출판사에서 편집디자이너로 사회에 첫 걸음을 내딛은 저자는 광고디자이너로도 오랫동안 일을 하면서도 붓을 놓지 않았다. 그러면서 그는 자연스럽게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하려는 시도를 했고, 90년 대 말부터 서예와 디자인을 접목한 '캘리그래피'라는 분야를 개척하게 된다. 디지털 서체가 범람하던 시절, 사람의 손으로 쓴 글씨, 캘리그래피는 글의 내용과 쓰임에 따라 글꼴 속에 다양한 이야기와 감성을 담아 메시지를 전담함으로써 제품의 로고나 책의 제호, 드라마 타이틀에 이르기까지 폭넓게 적용되며 각광을 받고 있다.
그는 이러한 서예와 멋글씨, 즉 캘리그래피를 통해 한글 글꼴의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찾고 알리고자 노력해 왔다. 하나는 순수서예의 현대적인 재해석이오, 또 하나는 디자인적인 쓰임의 글씨를 통해 한글이 가진 예술적인 가치, 디자인적인 가치를 알리는 일이었다.
이 책은 저자가 붓을 잡은 초등학생 때부터의 이야기와, 90년 대 말부터 지금까지 15년여의 세월동안 캘리그래피 분야를 개척하고 일해 오면서 느꼈던 자신의 자전적 에세이다. 이 책에 수록된 글과 글씨는 자연과 한없이 뛰놀았던 어릴적 경험 그리고 IMF가 터지면서 신용불량자가 되었던 일들이 글씨를 씀에 있어서는 오히려 큰 스승이 되어 주는 등, 수많은 부침을 통해 터득한 그의 삶의 이야기이자 글씨를 대하는 태도, 나아가 한글에 대한 절절한 사랑이야기이다.
그의 글씨들은 모두 한글의 제자원리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봄, 꽃, 꿈, 눈, 숲, 춤, 한, 흙 등 한 글자에서 오는 힘, 우리말의 고움과 독특함, 그리고 한글이 가지고 있는 조형성을 어떻게 글씨에 부려 글이 가지고 있는 뜻, 소리, 형상들을 자연스럽게 표현하느냐 하는 방법론까지 한글의 제자원리를 토대로 설명하고 있다. 사실 기호학 측면에서 보면 '봄' 자는 원래 봄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그렇지만 보라. '봄'이라는 말과 그의 글씨 속에 자연스럽게 땅에서 싹이 나서 자라고, 가지가 되며, 가지 위에 꽃이 피질 않는가. 또한 '똥'은 똥하고 엉덩이 두 짝에서 떨어지지 않는가. 한글을 소리문자로만 가두어 두기를 거부해온 그의 글씨에 대한 철학, 글씨를 쓰면서 고민하고 연구하며 새롭게 정립한 이론인 '캘리그래피로 표현하는 한글의 의미적 상형성'에 대해서도 이 책에서는 자세히 설명하고 있다.
또한 좋은 글씨, 좋은 캘리그래피를 위한 제언도 빼놓지 않고 있다. 저자 자신이 걸어온 길이기도 하지만 법고창신의 정신이다. 먼저 전통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끊임없는 공부가 그것이다. 그러한 공부 뒤에는 반드시 전통의 답습이 아닌 재해석이 요구된다. 그의 글씨들은 서예를 바탕으로 전통을 깨고 나온 글씨들이다. 이른바 창신인 것이다. 나아가 캘리그래피는 무엇이며, 어떤 공부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길라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RELNEWS:right}
강병인 지음 | 글꽃 | 248쪽 | 25,000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