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현대차, SK, LG, 롯데 등 5대그룹이 박근혜 정부에서 사회공헌 또는 기부, 후원 등의 이름으로 낸 돈이 1조 천억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돈을 낸 18개 대기업과 현대중공업, 효성, 네이버, 다음 카카오 등으로 확대할 경우 그 돈은 최소 2조 2천억원을 넘는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774억원), 청년희망펀드(880억원), 기능정보기술연구원(210억원), 한국인터넷광고재단(200억원), 중소상공인희망재단 출연금(100억원), 평창 동계올림픽후원금(9월현재 7800억원), 창조경제혁신센터 투자․융자․보증금(7227억원), 세월호 성금(942억원), 태풍 치바 성금(5대그룹 233억원),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5대그룹 4137억원)으로 냈다고 언론에 발표한 돈이 2조 2503억원이다.
여기에 알파(α)가 더해진다. 20일 검찰 수사 발표에서 드러난 대로 현대차가 안종범 전 청와대 수석의 요구에 따라 최순실씨의 지인 회사인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납품받은 11억원, 차은택씨 광고 회사에 밀어준 62억원 상당의 광고, KT가 밀어준 68억 원 상당의 광고 등이다.
삼성이 승마와 관련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에게 지원한 35억원, 최씨의 조카 장시호씨에게 지원한 16억원을 합치면 알파(α)에 해당하는 돈은 192억원에 이른다. 이를 합치면 22개 대기업의 2조 2695원으로 늘어난다. 앞으로 검찰 수사에 따라 돈의 규모는 더욱 늘어날 가능성이 높다.
◇ 정치부패로 이어지는 '기부'세금은 아니지만 기업이 의무적으로 내어야 하는 돈을 준조세라고 부른다. 부담금관리기본법에 따른 각종 부담금, 사회보험료, 강제성 채권 등이 포함된다. 준조세에 대해 합의된 정의는 없지만, 대부분 법적 근거를 가지고 있다. 기업 활동에 부담을 줄 수는 있지만 법적 근거가 있는 만큼 투명하다.
문제는 사회 공헌이나 후원, 기부 등의 이름으로 기업의 팔을 비틀어 내게 하는 돈이다. 겉으로는 기업의 선의를 강조하지만 법적 테두리 밖에 있어 항상 부패와 연결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워싱턴 포스트는 17일 “‘최순실 게이트’가 정치 부패라는 ‘한국병(Korean disease)’이 여전히 남아 있음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은 대통령과 기업, 측근들이 함께 만들어낸 한국 특유의 부패사건”이라고 보도했다.
전경련이 박근혜 대통령의 지시로 미르 K스포츠재단 설립을 위해 대기업을 상대로 774억원을 모은 것은 정치 부패와 정경 유착이라는 한국병의 전형적인 실례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재임기간 여러 차례 ‘국기문란’이라는 말로 정적들을 공격했지만, 미르와 K스포츠 재단 모금이야말로 법적 영역의 밖에서 이뤄진 정치 부패라는 점에서 사회공헌의 ‘국기문란’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자발성을 내세우지만, 정권과 기업이 서로의 이해를 위해 공모한 사실상의 ‘뇌물’이라는 정황이 갈수록 강하게 드러나고 있기 때문이다.
미르와 K스포츠 재단에 삼성이 204억원, 현대차 128억원, SK 111억원, LG 78억원, 포스코 49억원, 롯데 45억원, GS 42억원, 한화 25억원, KT 18억원, LS 15억원, CJ 13억원, 두산 11억원, 한진 10억원, 금호아시아나 7억원, 대림 6억원, 신세계 5억원, 아모레 퍼시픽 3억원, 부영 3억원을 냈다.
◇ 청년 실업, 법-제도 대신 성금으로 해결?청년희망펀드도 법과 제도를 통해 해결해야할 청년 고용문제를 대기업과 국민들의 모금으로 대응했다는 점에서 아무리 취지의 순수성을 인정한다고 해도 문란의 소지가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청년희망펀드에 1호 기부를 했으니 기업들에게는 사실상 자동 할당이 됐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 의원실에 따르면 삼성 이건희 회장이 200억원, 현대차 정몽구 회장이 150억원, LG 구본무 회장이 70억원, 신세계 이명희 회장 정용진 부회장 등이 64억 5천만원, 롯데 신동빈 회장이 50억원, GS 허창수 회장 등이 33억 4760억원, 한화 김승연 회장 등이 30억 6840억원, 두산 박용만 회장이 30억원, 현대백화점 정지선 회장 정교선 부회장이 24억원, 고려아연 최창영 회장 등이 23억원, LS 임직원이 22억 4200억원, 한진 조양호 회장이 22억원, 교보생명 신창재 회장 등이 21억원, SK 임직원이 20억 1500만원, CJ 이재현 회장 이미경 부회장 등이 20억원, 효성 조석래 회장이 15억원을 냈다.
중소상공인희망재단 100억원과 한국인터넷광고재단 200억원은 네이버가 낸 돈이다. 네이버가 지난 2014년 시장 지배적 지위행위로 공정위 제재를 받지 않는 대신 출연하기로 한 상생기금에서 나온 돈이다. 법적 제재 대신 기업으로부터 거액의 돈을 모은 특이한 사례이다
◇ 좁은 나라에 18개 창조센터…박근혜 후 몇개 남나? 창조경제혁신센터도 대기업에 떠넘겨진 경제적 부담이기는 마찬가지이다. 결코 넓다고 볼 수 없는 우리 나라에 18개나 되는 창조경제혁신센터를 곳곳에 지어놓고 기업에서 지원을 하도록 했다.(16개 그룹, 삼성과 SK는 2개 지역)
기업들이 창조경제혁신센터 투자금․융자금․보증금으로 출자한 펀드 규모가 7227억원이다. 더불어민주당 최명길 의원실에 따르면 투자․융자․보증금 용도로 한화 1250억원, 두산 1050억원, LG 750억원, 삼성 400억원, GS 400억원, 롯데 398억원, 다음 카카오 369억원, SK 289억원, 현대차 250억원, 네이버 220억원, 효성 200억원, 한진 200억원, 아모레퍼시픽 200억원, KT 150억원, 현대중공업 91억원, CJ 10억원 등이다.
기업들은 센터 투자․융자․보증금 말고도 적게는 3100만원에서 많게는 100억원까지 센터 운영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재계는 창조경제혁신센터의 실효성을 감안할 때 박근혜 정부 이후에도 살아남는 센터가 과연 몇 개일지 의구심을 보이고 있다. 창조경제혁신센터가 유효기간 2년짜리 정권 치적용이라는 야유가 나오는 이유이다.
창조경제혁신센터에 참여한 대기업 중 삼성전자, SKT, KT, 네이버, 현대자동차, 한화생명 등 7개 기업은 지능정보기술연구원(AIRI)에도 210억원(기업당 30억원)을 출자하기도 했다.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은 박근혜 대통령이 민간주도 연구개발 방식‘의 연구원 설립을 지시한 데 따라 설립된 것으로 알려졌다.
대기업 출자금 말고도 5년간 750억원의 미래부 지원을 받도록 되어 있다는 지능정보기술연구원의 원장에는 박 대통령 싱크 탱크로 불리던 국가미래연구원 발기인 출신 김진형 한국과학기술원 명예교수, 이사장에는 박 대통령 한나라당 비대위원장 재직 당시 비대위원을 지낸 조현정 비트 컴퓨터 회장이 임명된 상태이다.
◇ 국가 대사 '평창올림픽' 에도 정경유착의 그림자평창동계올림픽은 지난 9월 현재 목표금액인 9천 400억원의 83% 수준인 약 7천 800억원의 후원금이 확보된 것으로 나타났다. 삼성이 현금 800억원 현물 200억원 등 1000억원을 후원하기로 한 데이어 대한항공, 현대차, KT, LG, 롯데, 포스코, 영원 아웃도어 등 8개 기업이 500억원 이상을 후원하는 공식 파트너로 참여했다.
물론 평창 동계올림픽은 성공적으로 치러야할 국가적 대사라는 점에서 대기업 후원금은 성격이 다를 수 있다.
그러나 평창 올림픽 개폐막식 운영사로 맡게 된 삼성에서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씨 법인에 16억원을 지원한 의혹과 롯데 신동빈 회장이 지난 3월 평창 후원금으로 600억원을 지원하는 업무 협약을 맺기 전에 박 대통령을 독대했다는 의혹 등으로 후원금의 순수성이 의심받고 있다.
오히려 올림픽이라는 국가적 대사에도 후원금을 둘러싸고 정권과 기업 간에 거래가 이뤄지는 정경유착과 국기문란의 그림자가 도처에 드리워져 있다는 관측이다.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 각종 성금도 대기업 사회공헌금의 한 유형이다. 세월호 성금은 전경련 주도로 대기업이 942억원을 냈고, 치바 태풍 피해주민 후원을 위해서는 5대 그룹이 233억원을 냈다.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박근혜 정부 기간 5대 그룹이 낸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은 4137억원이나 된다. 삼성이 2012년부터 4년간 한 해 500억원씩 2000억원으로 가장 많이 냈다.
◇ 불우아웃 성금도 재계 황금비율 적용세월호 성금과 태풍 치바 성금, 연말 불우이웃돕기 성금 등은 사실 기업의 선의가 가장 잘 드러나는 대목일 것이다. 그러나 이런 성금조차도 “재계 내에서 암묵적으로 정해진 비율”을 따른다는 점에서 비공식 준조세의 맥락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삼성이 2를 내면 현대차 1.2, SK 1, LG 0.8를 부담한다는 황금 비율이다. 박정희 시대 방위성금에서부터 유래한 대기업 사회공헌 성금의 구조인 셈이다.
결국 22개 대기업이 박근혜 정부기간 미르와 K스포츠 재단 등 이상의 10개 항목에 냈다고 언론에 밝힌 돈을 모두 합치면 2조 2503억 원이 된다.
삼성이 승마와 관련해 최순실씨의 딸 정유라에게 지원한 35억원처럼 앞으로 검찰 수사 등을 통해 밝혀질 알파(α)도 감안해야 한다.
일단 20일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수사 발표에 따르면 현대차는 최순실씨의 지인 회사인 KD코퍼레이션으로부터 11억 원 상당의 물품을 납품받고 차은택 씨 광고회사에 62억 원 상당의 광고를 밀어줬으며, KT도 68억원의 광고를 준 것을 드러났다. 아울러 삼성은 최순실씨의 조카 장시호에게 16억원을 지원한 혐의를 받고 있다.
따라서 10개 항목으로 낸 돈과 이 과정에서 발생한 알파 192억원을 합칠 경우 5대 그룹은 1조 1300억원, 22개 대기업은 2조 2695억원에 이른다.
이런 가운데 기업들은 ‘FTA 체결에 따른 농어업인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이 통과됨에 따라 앞으로 매년 천억원씩 10년간 1조원의 ‘농어촌 상생기금’을 부담해야한다. 그러나 이 돈은 최소한 입법 과정을 거쳤다. 따라서 투명하다.
◇ 사회공헌금이라는 이름의 블랙박스, 해결책은?
반면 미르와 K스포츠 재단, 청년희망펀드, 평창 동계올림픽후원금, 창조경제혁신센터 투자․융자․보증금 등은 마치 블랙박스처럼 그 속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알 수 없다.
이에 따라 재계에서는 대기업 사회공헌과 기부의 이름으로 이뤄지는 국기문란을 차단하기 위해 정권의 반강제적 기부금 요구를 막는 제 2의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이라도 제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대기업의 선의를 강조하지만 사실상 대기업의 팔을 비틀어 각종 권력 실세용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결국 정치 부패라는 한국병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이제는 차단하자는 것이다.
김광두 국가미래연구원장은 “정권의 기부 요구를 들어주지 않을 경우 검찰과 금감원 국세청 조사를 통해 기업을 사지로 몰 수 있는 막강한 권력이 있는 한 기업은 돈을 내지 않을 수 없다”다며 “기업의 선의를 내세우지만 결국 부패로 이어지는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정부와 시장, 기업간의 관계 재설정을 위한 총체적인 고민과 해결책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