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스마트뉴스팀
검찰이 20일 '국정농단의 장본인' 최순실(60)씨와 안종범 전 경제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 등을 직권남용과 공무상비밀누설죄 등으로 기소하면서 박근혜 대통령을 사실상 공범이자 피의자 신분으로 입건했다.
최씨를 재판에 넘기기 전 박 대통령 대면조사에 실패한 검찰은 공소장에 등장하는 모든 이권 사업에 '박근혜 대통령과 공모하여'라는 부분을 적시해 사실상 박 대통령이 '베일 속 주범'임을 분명히 했다.
특히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박 대통령과 최씨, 안 전 수석은 대기업들의 '발목을 비틀어' 출연금을 모은 미르·K스포츠재단 설립은 물론 롯데로부터 추가 투자금 독촉, 현대자동차 광고 몰아주기, 포스코 배드민턴 창단 이권챙기기, 심지어 최순실씨 딸 친구 학부모 민원해결까지 손발을 맞췄다.
최씨가 필요한 부분을 언급하면 박 대통령이 깨알같은 지시를 내렸고 안 전 수석이 'VIP 관심사항'이라며 대기업을 압박하는 방식으로 세 사람의 호흡은 '여자양궁 국가대표급'으로 착착 맞아 떨어졌다.
◇ 최순실→박근혜→안종범으로 이어지는 일관된 흐름
미르·K스포츠재단의 설립·운영은 물론 각종 이권 사업에는 최순실씨가 제안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지시하고 안종범 전 수석이 직접 실행에 나선 뒤 보고하는 일관된 흐름이 존재했다.
검찰의 공소사실에 따르면 최순실씨는 지난해 10월말 리커창 중국 총리가 방한 예정이라는 사실을 알고 청와대 정호성 당시 부속비서관에게 "양국 문화재단간 양해각서(MOU)를 체결하는 게 좋다. 문화재단 설립을 서두르자"고 제안한다.
정 전 비서관은 최씨의 이런 제안을 박근혜 대통령에게 즉시 보고했고, 이후 안종범 전 수석은 대통령으로부터 "리커창 총리 방한 때 양해각서를 체결해야하니 재단 설립을 서두르라"는 지시를 받는다.
안 전 수석은 전국경제인연합 이승철 부회장에게게 전화를 걸어 "빨리 재단을 설립해야하니 전경련 직원을 청와대 회의에 참석시키라"고 다급하게 지시하고 500억원 규모의 문화재단 설립에 본격 나서게 된다.
지난해 9월말부터 10월까지 재단에서 일할 임직원을 직접 뽑은 최씨는 재단 명칭을 '미르'라고 정한 뒤 재단 이사장과 사무총장, 이사 등 임원진 명단과 조직표, 정관을 마련했다.
임원진 구성이 끝난 뒤인 10월 21일 안 전 수석은 또다시 대통령으로부터 "재단 명칭은 용의 순수 우리말로 신비롭고 영향력이 있다는 뜻을 가진 '미르'라고 하라. 이사장과 사무총장, 이사들은 누구누구다"라는 지시를 받게 된다.
최씨가 재단설립 시기와 양해각서 체결 등 구체적인 이벤트, 그리고 재단 명칭과 임원진 구성 등을 마련해 보고하면 박근혜 대통령이 어김없이 안 전 수석에게 세세하게 지시를 내리는 구도였다.
이런 구도는 이후 만들어진 쌍둥이 재단 K스포츠로까지 고스란히 이어진다.
최씨는 지난해 12월초 스포츠재단에 대한 사업계획서를 작성하고 이사장과 사무총장 등 임원진 명단을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다시 보냈다.
같은달 11일과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정동구 명예교수를 이사장으로, 정현식씨를 감사로 하고 사무실은 서울 강남 부근으로 알아보라"는 지시와 함께 재단 정관과 조직도를 전달한다.
최씨가 기획안을 올리면 박근혜 대통령이 이를 안종범 경제수석을 통해 실현에 나선 셈이다.
◇ 최순실 기획·朴대통령 감독·안종범 연출
박근혜 대통령이 8일 오전 국회를 방문해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면담을 마치고 의사당 밖으로 향하는 가운데 뒤로 야당 당직자들이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하는 피켓을 들고 구호를 외치고 있다. 윤창원기자
'비서실세' 최순실-박근혜 대통령-안종범 전 수석으로 이어지는 기획과 지시, 실행 구도는 다른 이권사업에도 똑같은 형태로 반복된다.
심지어 최씨의 딸 정유라의 친구 학부형인 이모씨가 운영하는 (주)KD코퍼레이션이 현대자동차에 흡착제 관련 부품 약 11억원 어치를 납품하는 데도 이런 구도가 작동한다.
최씨는 2013년 가을부터 유라씨가 졸업한 초등학교 학부형으로 친분이 있던 이모씨로부터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고 정호성 전 비서관에게 KD코퍼레이션 회사소개 자료를 전달한다.
2014년 11월27일쯤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KD코퍼레이션은 흡착제 관련 기술을 가지고 있는 훌륭한 회사인데 현대차에서 기술을 채택할 수 있는지 알아보라"는 지시를 내린다.
이후 안 전 수석은 박 대통령이 정몽구 현대차 회장과 김모 부회장을 면담하는 자리에서 현대차측에 "KD코퍼레이션이라는 회사가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다고 하니 현대차에서 활용이 가능하다면 채택해주면 좋겠다"고 거절할 수 없는 제안을 한다.
김모 부회장은 안 전 수석에게 KD코퍼레이션 대표자 이름과 연락처를 다시 확인한 뒤 "잘 챙겨보겠다"고 답하고, 구매담당 부사장에게 즉시 납품계약을 추진하라고 지시한다.
안 전 수석은 현대차의 납품계약 진행상황을 수시로 점검하면서 '특별 지시사항 관련 이행상황 보고'라는 문건을 작성해 박 대통령에게 확인 보고하는 등 최씨의 이권 개입 시도에 박 대통령과 청와대 관료가 총동원되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납품에 성공한 유라씨 친구의 학부형인 이씨는 최씨에게 감사의 뜻으로 1162만원 상당의 샤넬백 1개와 현금 4000만원을 전달했고, 최씨는 올해 5월 이씨가 박 대통령의 프랑스 순방에 경제사절단으로 동행할 수 있도록 다시한번 도와준다.
최씨는 이밖에도 측근 차은택, 김홍탁씨와 함께 광고회사 플레이그라운드를 설립한 뒤 올해 1월까지 회사소개 자료를 만들어 박 대통령에게 전달하기도 했다.
안 전 수석은 어김없이 한달 뒤인 올해 2월 박 대통령으로부터 "플레이그라운드 자료를 현대차측에 전달하라"는 지시를 받았고, 대통령 면담에 나선 정몽구 회장측에게 해당 자료를 넘기면서 "광고를 할 수 있도록 잘 살펴달라"고 요구한다.
현대차는 결국 올해 4월부터 5월까지 플레이그라운드에 약 70억원 상당의 광고 5건을 발주하게 된다.
◇ 포스코·KT·롯데라고 무사했을까?
K스포츠재단을 돈벌이에 이용하겠다고 생각한 최씨는 올해 2월쯤 포스코를 상대로 배드민턴팀을 창단하도록 하고 본인이 소유중인 법인 더블루K가 매니지먼트를 담당한다는 내용의 기획안을 마련했다.
박근혜 대통령은 같은달 22일 권오준 포스코 회장을 만난 자리에서 "포스코에서 여자 배드민턴팀을 창단해주면 좋겠다. 더블루K가 자문을 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최씨의 뜻을 고스란히 전했다.
이번에도 마찬가지로 권 회장이 박 대통령과의 단독 회담을 마치고 자리를 나서자 안종범 전 수석이 밖에서 대기하다 권 회장에게 더블루K 조성민 대표의 이름과 연락처를 넘기면서 만나보라고 종용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최순실씨가 KT 광고부서를 장악해 최씨의 광고회사가 부당 이득을 얻을 수 있도록 직접 나선 것으로도 확인됐다.
검찰 공소장에 따르면 최씨는 지난해초 대기업으로부터 광고계약을 수주할 목적으로 차은택, 김홍탁씨와 함께 광고회사 모스코스와 플레이그라운드를 설립하고 자신의 측근들을 대기업 광고책임자로 채용할 계획을 세웠다.
최씨는 지난해 1월부터 7월 사이에 차은택씨의 지인 이동수씨와 자신의 측근의 아내인 신혜성씨를 추천받았다.
비슷한 시기 안종범 전 수석은 대통령으로부터 "이동수라는 홍보전문가가 있으니 KT에 채용될 수 있도록 KT 회장에게 연락하고, 신혜성씨도 이씨와 호흡을 맞출 수 있도록 하면 좋겠다"는 지시를 받는다.
안 전 수석은 황창규 KT 회장에게 연락해 "윗선의 관심사항인데 이동수씨는 유명한 홍보전문가이니 KT에서 채용하면 좋겠다. 신혜성씨도 이씨 밑에서 같이 호흡을 맞추면 좋을테니 함께 채용해달라"고 요구했다.
KT는 두 사람을 채용하고 추가 요구에 의해 보직까지 변경해줬다.
이후 안 전 수석은 "플레이그라운드가 KT 광고대행사로 선정될 수 있도록 하라"는 박 대통령의 지시를 받고 다시 황 회장에게 전화를 걸어 "VIP 관심사항이다. KT 신규 광고대행사로 선정해달라"는 취지로 요구했다.
황 회장은 안 전 수석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세무조사나 각종 인허가에서 불이익을 받게 될 것을 우려해 경쟁입찰 기준까지 바꿔가며 플레이그라운드를 신규 광고대행사로 선정해 68억원 상당의 광고 7건을 맡기게 된다.
롯데 역시 최씨의 기획에서 제외되지 않았다.
최씨는 올해 1월 K스포츠재단 명의로 전국 5대 거점지역에 체육시설을 건립해 관리 등 이권사업은 자신의 회사 더블루K가 담당하는 사업안을 만들어 정호성 전 비서관을 통해 박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역시 박 대통령은 올해 3월 10일 안 전 수석에게 "롯데그룹 신동빈 회장과 단독 면담을 할 수 있도록 조치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엿새 후 신 회장과 단독 면담을 가진 박 대통령은 안 전 수석에게 "롯데그룹이 하남시 체육시설 건립과 관련해 75억원을 부담하기로 했으니 진행상황을 챙기라"는 지시를 추가로 내린다.
롯데는 올해 5월31일까지 6개 계열사를 동원해 70억원을 K스포츠재단 투자했다가 검찰의 압수수색 하루 전인 6월 9일에 돌려받게 된다.
◇ 강공모드 검찰 VS 사상누각 수사 청와대…힘겨루기 일전
검찰은 최순실씨와 안종범 전 수석, 정호성 전 비서관은 물론 구속된 차은택 CF 감독, 미르재단 김형수 초대 이사장, K스포츠재단 정동춘 이사장, 정현식 사무총장 등 최씨 이권사업에 등장하는 인사들을 피의자 또는 참고인으로 소환해 고강도 조사를 벌였다.
소환된 인사들의 진술은 물론 압수수색에서 확보한 각종 회의문서, 컴퓨터 하드디스크, 특히 안종범 전 수석과 정호성 전 비서관의 휴대폰 속 음성녹음 등을 토대로 박근혜 대통령이 최씨 이권 사업에 깊숙이 개입했다고 결론냈다.
최씨와 안 전 수석 등의 공소장에 '박 대통령과 공모하여'라고 적시하며 박 대통령을 사실상 사건의 '주범'이자 피의자로 규정한 것도 확보한 각종 자료의 증거능력에 자신이 있다는 것으로 풀이된다.
특히 검찰은 최씨가 재단설립은 물론 대기업들을 상대로 각종 이권사업에 나설 때 박 대통령의 지원이 절대적이었던 것으로 보고 있다.
최씨가 제안하면 박 대통령이 안 전 수석에게 세세하게 지시하고, 또 안 전 수석은 최씨의 제안과 박 대통령의 지시를 실행하면서 진행상황을 박 대통령에게 다시 보고하는 등 전형적인 권력형 비리라는 판단이다.
한편 청와대는 이날 검찰의 중간수사결과 발표에 발끈하고 나섰다.
청와대 정연국 대변인은 "검찰이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마치 대통령이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처럼 주장했다. 심히 유감스럽다"며 "수사팀의 오늘 발표는 전혀 사실이 아니며 객관적인 증거는 무시한 채 상상과 추측을 거듭해서 지은 사상누각"이라고 맹비난했다.
박 대통령의 법률대리인인 유영하 변호사 역시 "검찰이 조사도 하기 전에 결론을 내렸다. 수사의 공정성을 믿을 수 없다는 게 여실히 드러났다"며 "앞으로 검찰의 직접 조사 협조요청에는 일체 응하지 않고 중립적인 특검 수사에 대비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