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의 얼굴 Your Face, 2014, 한지, 92x122cm
분단을 주제로 미술 작품 활동을 해온 김혜련 작가의 '슬픔의 벽' 전시가 주한독일문화원에서 열리고 있다. 파주에 거주하는 작가는 임진각을 향한 해안도로 철조망과 대북전단 살포와 같은 접경지역의 긴장을 늘 느끼고 산다. 김 작가는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던 시점에 독일에서 유학을 했었고, 그 이후에도 독일에서 공부와 작품활동을 했었다. 작가에게 분단은 예민하게 다가올 수밖에 없는 주제였고, 이러한 주제 의식과 감수성은 작품에 지속적으로 반영되었다. 그 방식은 회화, 수묵, 설치작품으로 다양하게 변주되었다.
이번 '슬픔의 벽' 전시에는 북한 병사의 모습을 수묵으로 드로잉한 작품 '너의 얼굴 Your Face', 대북전단을 연으로 형상화한 '연', 분단 현실의 아픔을 다룬 오브제 신작 20여 점이 선보인다.
너의 얼굴Your Face –북한 병사의 얼굴,주한독일문화원 설치 전경.
'너의 얼굴 '은 얼굴을 그린 59점으로 이뤄졌다. 이 얼굴들의 주인공은 단 한명의 북한 병사의 초상이다. 그 초상에는 눈,코,입이 없는가 하면, 코가 없기도 하고, 입이 없기도 하다.눈과 입만 있는 초상도 있고, 온전한 초상도 있다. 그 눈과 입은 밝거나 침울하거나 수많은 표정을 담고 있다. 해맑기도 하고, 수줍기도 하고, 수심이 어리기도 하고.
김혜련 작가는 한 장의 사진에서 '너의 얼굴' 모델을 발견한다. 한 장의 사진에서 그 북한 병사는 남쪽 군인들과 마주 보면서 귀엽게, 사랑스럽게 웃고 있었다. 사진 속 분위기로 보아 1976년 판문점 도끼만행사건 이전으로 추정된다. 그 사진 속 북한 병사는 지금 60세쯤 되었을 것이다. 작가는 '황금 눈물'이라는 제목의 작가 노트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그는 웃고 있다. 사진 속에서 환하게.
혹시 강제수용소에서 굶고 있는 것은 아닐까? 병들어서 죽은 것은 아닐까? 그는 지금, 사진속 그는 지금, 내 작품의 모델이 되어,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나로 하여금 눈물 흘리게 하고 잇다. 타인의 얼굴 그리기를 부담스러워 하는 나로 하여금, 수도 없이 쳐다보며 그 얼굴을 그리게 하고 있다. 붓을 들고 고개를 숙이고 , 때로는 눈물이 너무 흘러 그리다 말고 소리 죽이고 울었다. 그와 내가 무슨 인연이란 말인가? 그는 지금 살아 있을까? 그의 어머니가 이렇게 환하게 웃었을까? 남한 군인을 마주 보고 이렇게 환하게 웃는 그는 분명, 평소에도 이렇게 자주 웃었을 것이다. 자상하고 섬세한 여느 젊은이들처럼, 그렇게 환하게 웃었을 것이다.
그는 웃고 있는데, 그를 그리는 나는 눈물이 난다. 그리고 있노라면 그가 나인지, 내가 그인지, 그의 얼굴에서 빛이 나온다. 그가 쓴 모자가 광배가 되고, 웃던 그는 울고 있다. 나 대신 울고 있다. 내가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어, 눈물이 난다. 배 속에서서부터 눈물이 난다. 나는 네가 되고 네가 내가 되는, 그 속에서 하나가 되는 황금빛 눈물이 된다. 황금 눈물, 우리의 살인을 용서해 달라고, 그는 아마도 하늘 나라에 있을 것이다. 황금빛 눈물 안에서 웃고 있을 것이다."
작가는 북한 병사의 환한 웃음에서 남북간 적대감의 환영을 걷어낸 사랑의 씨앗을 발견한 것이다. 그 씨앗은 남과 북, 분단과 이산, 대립과 갈등, 차별과 배타 의식, 증오와 편견을 일순간에 쓸어내버리고 깨달음의 경지에 이른 것인가. 그 깨달음은 남과 북의 일반 사람들은 인간애에 바탕을 둔 선한 사람이라는 것을, 서로 손을 맞잡고 함께 나아가야 하는 형제라는 것을 일깨웠으리라. 하여 가슴 깊은 곳에서 눈물이 솟구치게 하고, 정화된 감정의 결정체인 눈물은 황금빛 찬란함으로 빛나게 된다. 그 황금빛 눈물이 어린 시선은 북한 병사 군모를 해원상생의 광배로 변모시켰으리라.
나의 연 My Kites –노르망디에서. 주한독일문화원 설치 전경
'연' 작품은 대북전단을 은유해 만든 것이다. 이곳 파주에서는 대북전단을 날리는 행사가 종종 열리고, 이를 반대하는 주민들의 시위로 인해 양측이 마찰을 빚기도 한다. 김 작가의 '연'작품에는 100개의 연이 등장한다. 실제 날리기 위한 연이라가 보다는 연에 담는 염원을 그림으로 표현했다. 사각 또는 마름모의 연에는 분단의 아픔을 상징하는 철책 그림, DMZ 초록 풍경 등이 분홍, 노랑 등 화사한 색의 한지 위에 수놓여 있다. 이러한 '연' 연작에 담긴 염원이 바람보다 가벼운 무게로 높이 높이 올라 북녘은 물론 남녘 사람들의 가슴에 메아리치기를 바라는 것이 작가의 마음이리라. 대북전단에 적힌 적대와 비방의 언어 말고, 화해와 치유의 그림 언어를 전하고 싶은 것이다.
일곱 개의 별 Seven Stars,2016, Wire mesh, magnets, pins, 30(h)x63x34cm
오브제 신작에서는 석쇠 철망 작업이 주를 이룬다. 이 철망은 분단을 상징하고, 이를 뛰어넘는 그 너머를 상징하기도 한다. 작품 '일곱 개의 별'은 철망 위에 철핀뭉치로 된 7개의 별이 철망 위에 자리한다. 일곱 개의 별, 북두칠성은 항해할 때 길잡이가 되었다. 북두칠성을 인격화한 칠성신은 농사와 생사 그리고 화복을 맡아본다고 한다. 작품 '일곱 개의 별'은 비록 남북이 분단되어 있지만, 남과 북이 하나가 된다면 일곱 개의 별이 합해져 북두칠성과 같은 운을 받으리라는 것을 암시한다. 작품 '색동', '고깔모자' '투명한' 등도 석쇠 철망을 이용해 다양한 의미들을 담아낸다.
나무틀을 이용한 작품 '슬픔의 벽' '왕과 왕비' '새가 되고 싶은 사람들', 그리고 왕골 원형 덮개를 이용한 '확성기- 나는 너이다', 또는 거울, 구슬을 이용한 작품이 등장한다. 나무 틀은 구속을, 거울은 일그러진 삶을, 구슬은 슬프지만 아름다운 눈물을, 색동에 누벼진 수련은 활기와 기쁨을, 왕과 왕비는 시대의 슬픔과 자존감을, 새는 자유를 각기 상징하거나 은유한다.
김혜련 작가는 "이번 전시는 전부 나 자신을 위한 작업이다.공감하면 좋고, 누구를 위한 작업은 없다"고 했다. 작가는 분단이라는 주제를 깊이 파고들며 떠오르는 생각들을 다양한 표현 매체를 통해 작품으로 변주하고 있다. 현실과 작가의 의식 간에 팽팽한 긴장과 대결을 하면서 말이다. 앞의 작업은 뒤의 작업을 예고한다. 이번에 선보인 작품 '삼족오'가 그렇다. 삼족오는 평양 진파리에서 출토된 금동 투각으로 해모양 뚫는 무늬 금동 장식이다. 김 작가는 "왜 나는 통일을 원하는가. 한민족은 혈연, 역사, 문화 공유하는 언어공동체이다. 현재 상황은 10년 전보다 더 분단이 고착화하고, 남쪽은 섬으로 전락하고 있다. 북쪽은 중국에 먹히고 남쪽은 일본에 먹히지 않을가 우려를 한다. 소름 끼치게 그럴 가능성이 많다. 문화, 언어가 없어지는 것 만큼은 막아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이제까지 김 작가의 작품 여정이 분단의 인식과 넘어섬이었다면, 앞으로 작업 방향은 한민족의 역사와 문화의 기원이 될 것임을 짐작해 볼 수 있다. 이런 주제 의식에서 그 미적 표현이 어떻게 펼쳐질지 자못 궁금하다. 제주의 아픈 현대사를 그토록 슬프고도 아름다운 회화로 표현해냈듯이. {RELNEWS:right}
전시 기간: 12월 2일까지
전시 장소: 주한독일문화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