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의 밧모섬="">은 16세기 격동의 시대를 살아간 위대한 종교개혁가 마르틴 루터의 삶과 고뇌, 결단을 마치 눈앞에서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논픽션 작가 제임스 레스턴이 쓴 이 책은 루터의 목숨이 위태로웠던 절체절명의 순간이자 그의 문필력이 절정에 달했던 시기를 다룬다. 루터가 95개조 논제 발표 이후, 보름스 국회에서 이단 혐의에 대해 소명하고 1521년 4월에서 1522년 3월까지 1년여 동안 독일 아이제나흐 인근에 있는 바르트부르크 성에 은신해 있던 때다.
저자는 목숨의 위협, 개혁의 위기, 두려움과 유혹, 고립과 고독, 자기회의… 인생의 광야와도 같았던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루터가 가장 창조적인 시간을 보냈다는 사실에 주목했던 것이다. 다시 말해 '침묵'과 '격동'이 교차하는 루터 생애의 가장 빛나기 시기이며, 그의 모든 삶을 집약해 보여주기 때문이다.
사도 요한이 로마 황제의 박해로 밧모(파트모스) 섬에 유배되고 환상 중에 「요한계시록」을 쓴 것처럼, 루터는 바르트부르크 성을 "나의 밧모 섬"이라고 생각했고 그곳에서 독일어 신약성서를 번역하며 초인적인 많은 과업들을 이뤄냈다. 즉, 고립된 환경 속에서도 그는 친구들과 서신을 주고받으며 개혁의 흐름을 주시했고, 세상을 향해 쉼 없이 글을 썼으며, 독일 민중을 위해 성서를 번역했던 것이다.
바르트부르크 성에서 루터는 질병과 두려움에 시달리며 그리스도인으로서 근원적인 질문들과 대면했다. 사제로서의 서원, 금욕, 성, 사제의 결혼, 천국과 지옥, 순종과 불순종, 교회의 권위, 각 개인의 신앙 증거 등의 문제와 씨름했다. 교황에서 벗어난 그리스도교를 구상했고, 새로운 성서 교리를 만들었으며, 편지, 강론집, 소논문, 번역물 등 실로 방대한 저작물을 남겼다. 육체적 고통, 불길한 운명에 대한 예감, 지옥과 사탄에 대한 환영, 죄의식에 시달리는 악몽으로 신산한 가운데에서도 이 모든 일들을 해냈다. 이처럼 루터는 죽음의 위협 속에서 열정과 탁월함, 집중력을 발휘하여 개혁운동을 지켜낼 수 있었고, 로마 가톨릭과는 분리된 별도의 교리를 확립함으로써 프로테스탄트가 태동할 수 있게 만들었다. 그리고 유럽 교계 변방의 평수도사에서 일약 그리스도교 사상의 정점으로 우뚝 서게 되었다.
이 책은 영성으로 충만했던 루터를 마냥 성인으로 미화시키지 않는다. 개혁을 추진해나간 그 강인한 정신력과 육신을 지닌 한 인간으로서의 겪는 어려움이나 나약함 등을 입체적으로 그린다. 종교적 교리나 용어도 쉽게 풀어 설명하고 루터의 개혁운동이 당시 국제적·정치적·사회적 맥락에서 어떻게 발전하고 확립되어갈 수 있었는지 맥을 잘 짚고 있다. 사실 루터의 생애에 해당하는 1483년에서 1546년까지의 시기는 잉글랜드의 헨리 8세,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 유럽 대부분을 다스렸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 카를 5세, 메디치가 출신 교황들인 레오 10세와 클레멘스 7세,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한 술레이만 대제 등 내로라하는 인물들이 각축을 벌였던 시대다.
그 놀라운 일을 해낸 완벽해 보이는 개혁자 루터도 약점 많은 인간이었음을 저자는 지적하고 있다. 반란을 일으킨 농민들에 대해 거칠고 냉혹한 태도를 보였으며, 반유대주의 편견에서도 자유롭지 못했다. 종교개혁을 의미하는 Reformation이 본래 모든 종류의 개혁 일반을 지칭하는 라틴어 reformatio에서 유래한 단어라는 사실이 시사해주듯이, 종교개혁은 태생적으로 끊임없는 자기개혁을 영원히 추구할 수밖에 없는 ‘아직 오지 않은 과거’와 같은 사건이다. 그런 점에서 레스턴의 <루터의 밧모="" 섬="">은 오늘날 빛과 소금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방황하는 한국 교회와 물신숭배에 깊이 물들어 있는 한국 사회를 안타깝게 여기며 참된 '개혁'을 바라는 모든 이들에게 의미 있는 독서가 될 것이다.
CBS노컷뉴스 김영태 기자메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