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촉구하는 제6차 민중총궐기 대회가 서울 광화문 일대에서 열린 가운데 시민들이 청와대로 행진하고 있다. (사진=사진공동취재단)
역사교과서 국정화 등 박근혜 정권과 치르는 역사전쟁의 최선봉에 서 있는 역사학자 주진오(59) 상명대 교수는 수렁에 빠진 대한민국을 건져 올리고 있는 '촛불' 정국을 두고 "꺼지지 않고 계속 옮겨 붙으면서 본질에 접근해 가고 있다"고 진단했다.
"박근혜는 '주변 사람들을 관리하지 못해서 그런 것이지, 나는 아무 잘못 없다'고 주장하지만, 국민들은 이미 본질을 꿰뚫고 있어요. 촛불은 단순히 박근혜라는 한 대통령의 퇴진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박정희에서 박근혜로 이어져 온 우리 사회의 적폐, 잘못된 관행들을 이번 기회에 극복하려는 목소리인 거죠."
주 교수는 5일 CBS노컷뉴스에 "촛불을 든 시민들이 광장의 정치를 통해 원내 정치를 견인할 뿐 아니라, 오히려 통제하고 있다"고 전했다.
"촛불은 진화한 운동 방식입니다. 물론 지난 시절 야당과 운동권이 우리 사회 민주화에 큰 역할을 한 것은 분명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직성, 시대 변화에 부응하지 못했던 측면이 있다고 봐요. 독재와 치열하게 싸우면서 스스로 그것을 닮아간 면이 분명히 있던 거죠. 그것이 지금 야당 내 계파 정치, 운동권 내 여성·장애인 등 소수자에 대한 문제의식 부재 등으로 나타나고 있는 겁니다. 지금의 촛불집회는 다양성에 바탕을 두고 한 목소리를 낸다는 데 의미가 커요."
"다양한 목소리를 지닌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자기가 원하는 방식으로, 생각하는 이슈들을 들고 나와 다 같이 행진할 수 있는 것은 그동안 우리 사회가 쌓아 온 역량"이라는 것이 그의 견해다.
"국민의 역량은 여기까지 왔는데, 정치권 등은 이에 걸맞지 않은 수준이었던 게 촛불집회를 통해 여실히 드러났어요. 이러한 평화적인 시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가를 보여 준 거죠. 어린이부터 노인까지 (광장에) 나올 수 있다는 사실이야말로 '철저한 부정'이라는 걸 그대로 보여주고 있잖아요."
◇ "'샤이 박근혜'? 오히려 '샤이 촛불'에 주목해야 할 때"
역사학자 주진오 상명대 교수(사진=주 교수 페이스북 페이지 화면 갈무리)
주 교수는 "지금의 촛불집회에 혁명이라는 단어를 붙여도 무방하다"고 강조했다. "앞으로 역사는 '촛불혁명'으로 기록할 것"이라는 말이다.
"촛불혁명의 완성은 박근혜 탄핵과 정권 교체를 이루는 겁니다. 조선일보 등 보수매체, 새누리당이 원하는 것은 박근혜를 끌어내리는 데서 끝날 겁니다. 효용가치가 떨어진 박근혜로는 보수 정권 재창출이 불가능하다고 봤을 테니까요. 언제든지 개헌 국면이든 종북 논란이든, 새로운 인물이든 국면 전환을 통해 다음 정권을 가져갈 수 있을 거라 지금도 믿고 있을 겁니다."
"그런데 이는 촛불의 열기가 얼마나 뜨거운지 모르는 저들의 오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 교수는 지적했다.
"이전처럼 자기들이 공작정치, 여론조작을 통해 (광장의 촛불민심을) 꺼뜨리고 분열시키면서 원하는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 거라 본 거예요. 그런데 지금 국면은 그들이 통제할 수 없는 데까지 왔어요. 소위 (숨은 지지층을 뜻하는) '샤이 박근혜'라는 말을 쓰는데, 저는 오히려 '샤이 촛불'이 있다고 봅니다. 광장에 나온 시민이 전부가 아니라는 거죠. 여러 사정으로 인해 촛불집회에 못 나온 사람들이 분명히 훨씬 많을 겁니다."
그는 오는 9일 국회의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 표결과 관련해 "만에 하나 탄핵안이 부결될 경우 그야말로 광장의 정치가 결국 (제도권 정치를) 뒤엎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탄핵안 부결은) 국회가 존재 가치를 상실했다는 걸 말하는 겁니다. 결국 이를 넘어서려는 직접 혁명으로 발전하지 않을까 예상합니다. 만약에 탄핵안이 부결됐다고 하면 그것을 국민들이 받아들일까요? 국회는 민의를 대변하는 기관이지, 민의를 외면하는 권력기관이 아니니까요."
일각에서 나오는 당장의 개헌 논의에 대해 주 교수는 "대권 가능성 없는 자들이 야합을 통해 권력을 나눠 먹기 하려는 행태"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지금의 헌법이 이상적이니 그대로 지키자'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겁니다. 분명히 손봐야 할 점이 있어요. 그런데 민심은 '지금은 아니'라는 거죠. 현 상태에서 원내 정치를 통해 (개헌이) 진행되면 민의가 충실히 반영될 거라 보는 이들은 거의 없다고 봐요. 정권을 쥐기 힘들다고 판단한 자들이 내각제, 이원집정부제라는 권력구조 재편을 통해 (권력을) 나눠 먹으려는 정치적 술수에 불과합니다. 권력구조 재편이 필요하다고 보지만, 지금은 (개헌을 논할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그는 박근혜정권 이후 우리 사회가 "패거리, 기득권이 지배하지 않는, 헌법과 법률에 입각해 움직이는 사회로 나아가야 한다"고 역설했다.
"(방송인) 김제동 씨가 사람들에게 헌법 이야기를 많이 하고 있는데, 수많은 똑똑한 법학자들이 해내지 못했던 헌법 가치의 생활화에 일조하고 있다고 봅니다. 제가 말하는 법치는 인간이 법에 종속됐다는 것이 아니에요. 예를 들어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정신에 입각한 사회, 정치권뿐 아니라 각자의 일터 등 우리 사회 전체에 여전히 남아 있는 (비민주적인) 요소들을 없앨 수 있는 세상인 거죠."
주 교수는 이를 두고 "생활 속 민주주의"라는 표현을 썼다. "가정에서부터 일터, 사회 구조 등 모든 면에서 일어나는, 그야말로 사회 혁명"이라는 것이다.
"우리 사회는 압축 성장 과정에서 나타났던 허약성, 그러니까 장기가 하나하나 튼실하게 여물지 못한 상태에서 신체만 비대해진 상태예요. 광장의 촛불은 이러한 우리 사회의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굉장히 중요한 계기가 될 겁니다. 대한민국의 역사가 진일보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말이죠. 그동안 소위 대의 민주주의라는 미명 아래 소수가 권력을 독점해 왔다면, 이제는 시민들의 힘과 역량이 기득권층을 무력화시키고, 견인해내고, 변화를 이끌어낼 계기를 마련해 나갈 거라 봅니다."
그는 "2016년 촛불집회에 대해 역사는 '대한민국의 대통령은 후졌지만, 대한민국의 국민은 위대했다'라고 기록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역사는 촛불집회를 '시민들이 대한민국의 수준에 맞는 정치를 견인해낸 혁명이었다' '다양성에 뿌리를 둔 시민들이 함께 모여 변화를 이뤄낸 사상초유의 혁명'으로 기억할 겁니다. 박근혜의 모든 실정이 밝혀지면서 국내외 국민들이 얼마나 창피했습니까. 얼마나 억울하고 분했습니까. 그러나 시민들은 우리의 수준이 그렇지 않다는 것을, 세계적인 시민의식을 지녔다는 점을 촛불집회를 통해 스스로 보여줬어요. 결국 한국 사회가 지금까지 이뤄 온 경제성장, 문화 수준이 특정 지도자의 역량이 아니라, 국민들 덕에 가능했다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낸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