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촛불이 커져서 횃불되는 것이 아니라 촛불과 횃불 질적인 차이 있다
- 촛불은 개인적인 침묵과 기원과 간구의 의미
- 횃불은 더 강한 정치적 열망 표현, 민중봉기의 속성, 촛불과는 다른 의미의 항의
- 촛불과 횃불 공존할 수 있어야
- 정치권은 국민의 편에 선 정치인들만이 살아남을 수있다는 교훈 얻어야
[CBS 라디오 '시사자키 정관용입니다']
■ 방 송 : FM 98.1 (18:30~19:50)
■ 방송일 : 2016년 12월 6일 (화) 오후 7시 35분
■ 진 행 : 정관용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 출 연 : 이택광 교수 (경희대)
◇ 정관용> 매 주말, 아니 요새는 매일 전국에서 촛불이 켜지고 있죠. 그런데 지난 주말 집회에는 횃불도 등장을 했고요. 4. 16을 상징하는 416개 횃불이 등장했다고 하죠. 문화비평가 경희대학교 이택광 교수와 함께하는 일상다반사 시간, 오늘은 촛불의 의미 그리고 횃불의 의미 이건 뭘까, 어떤 점은 같고 어떤 점은 다를까. 이 문제를 한번 같이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이택광 교수, 어서 오십시오.
◆ 이택광> 안녕하십니까?
◇ 정관용> 촛불의 의미부터 볼까요? 촛불을 든다, 대통령 퇴진 요구하면서 촛불 아니라 다른 방법도 많을 텐데. 촛불을 든다, 뭘까요?
◆ 이택광> 사실은 제가 80년대 학번인데요. 저희들이 학교를 다닐 때는 사실 상상을 못했죠. 이렇게 시위를 하는데 촛불을 들고 와서 시위를 한다 이런 것들은. . .
◇ 정관용> 말이 안 되죠. 그때는 외치고 빨리 도망가야 되는데 촛불 켜고서 어떻게 도망갑니까?
◆ 이택광> 그러니까 그걸 좀 오랫동안 지속하기 위해서 돌도 던지고 이랬던 것 같은데요. 지금의 시위 양상은. 시위라고 불리지만 상당히 다른 양상을 띠는데 거기에 촛불이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물론 지금은 약간 이상해지셨지만 예전에 김지하 시인이라고 있었죠. 그 시인도 촛불에 대한 찬사, 찬양론을 하기도 했는데 저는 이게 아마 새롭게 등장한 시위 형태로서 좀 한번쯤 고민해 봐야 되는, 돌아봐야 되는 그런 양상이 아닌가 싶고요. 그래서 촛불이라는 것은 뭔가 소리를 크게 내고 항의를 하기보다는 뭔가 침묵을 지키면서 또는 굉장히 평화적 방법으로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그런 어떤 형태로 채택이 된 것 같아요.
◇ 정관용> 촛불 자체가 침묵, 평화. 이런 걸 상징한다?
◆ 이택광> 원래 외국에서는 촛불이라는게 demonstration 이것이라기보다는 candle visil이라고. visil이라는 것은 원래 여러 명이 모여서 소원을 기도하는 그런 것에 가깝거든요.
◇ 정관용> 종교적 의미가 좀. . .
◆ 이택광> 그렇죠. 훨씬 종교적이죠. 종교적이고.
◇ 정관용> 사실 초도 자기 몸을 조금씩 조금씩 불태워가면서 세상을 밝게 하는 거잖아요. 그런 의미도 들어 있고.
◆ 이택광> 원래 도상학적으로 말하면 초는 지저스 크라이스트. 예수님을 상징하죠. 그리고 또 촛불 자체는 생명 이런 걸 상징하는데 아마 거기에서 연유가 되지 않았나 싶어요. 물론 광화문에서 지금 열리고 있는 촛불집회가 꼭 그런 종교적인 걸 띠고 있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무관하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어느 정도의 그런 종교적 간구, 기원 이런 것들이 스며 있는 게 아닌가 생각이 들고요. 그런 면 때문에 또 광화문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집회가 정치적이지 않다라는 이야기들을 하기 위해서도 촛불을 든 게 아닌가. 그래서 대부분 외국 같으면 어떤 불의의 사고로 누군가 사망을 했다든가 또는 테러 같은 게 일어났을 때 대부분 촛불을 들거든요. 또는 꽃다발을 갖다 주던가.
◇ 정관용> 애도의 뜻으로.
◆ 이택광> 그렇습니다. 그런데 우리 같은 경우는 정치적 의사를 표명하기 위해서 촛불을 드는. 그래서 오히려 이런 촛불 시위 문화가 역수출되는 것도 볼 수가 있어요. 오히려 미국 같은 데는 촛불 드는 게 생기고. 특히 홍콩에서 예전에 엄브렐라 혁명이라는 게 있었지 않습니까?
◇ 정관용> 우산 펼쳐드는 거.
◆ 이택광> 우산 펼쳐들고 거기에서 촛불 들고 나와서 한국에서 촛불시위를 배웠다, 이런 얘기를 하고 그랬었는데 상당히 특이한 그런 현상이란 생각이 들고 시위로서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 시위로서 적합한 형태가 되는 그런 것이 되는 것이죠.
◇ 정관용> 그렇게 됐네요. 뭔가를 간절히 바란다 그런 마음을 모은다라는 게 바탕에 깔려 있으면서 시위의 양상은 평화롭게 그리고 고요한 침묵의 의미로. 그러나 저항한다. 어떤 그런 것.
◆ 이택광> 그래서 굉장히 좋은 의미가 있는데 저는 이걸 한번 분석을 해 봐야 되는 것 아니냐. 왜 거기에 모이신 분들이 이런 생각을 하시는가. 그게 제가 생각할 때는 좀 횃불. 사실 저번주에 처음으로 등장을 했는데 횃불과 어느 정도 비슷하면서도 다른 점이 있다. 질적으로 다르지 않을까 생각을 해 보는 거죠.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6차 촛불집회가 열린 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청운동사무소 사거리에 횃불을 든 시민들이 행진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 정관용> 그러면 횃불하고 촛불하고 비슷한 점은 뭡니까? 횃불하고 촛불.
◆ 이택광> 촛불이라는 것은 사실 어떻게 보면 굉장히 개인주의적인 행위에 속하죠. 퍼포먼스는 퍼포먼스인데 개인주의적이고. 횃불은 거기에 비하면 훨씬 더 강렬하고 집단적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약간 조금 문화비평적인 상상력을 발휘해 본다면 촛불이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어떤 내 자신의 내면, 그것을 통해서 나를 표현하는 그런 방식에 가깝다면 횃불은 상당히 집단적이고 한국 같으면 조금 민족적인 그런 생각들을 표현하는 것에 가깝죠. 저 같은 경우는 횃불 그러면 멸공의 횃불도 떠올라요, 제가 군대 가서 맨날 들었던 군가죠. 그것도 상당히 이데올로기적인 의미를 띠고 있는데. 마찬가지로 상징적 코드가 둘이 다른 게 아닌가 싶고요. 그리고 한국에서 일반적으로 횃불이라고 하면 역사극에 주로 등장하는 민란이라든가 또 민중봉기가 일어났을 때.
◇ 정관용> 동학농민전쟁.
◆ 이택광> 동학농민전쟁이나 이런 것처럼 횃불 들고 고부군수 목을 베러 간다든다가 이런 분위기를 띱니다. 사실 저는 상당히 그런 것도 지난 주말 촛불집회 때 횃불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 아닌가 싶어요. 워낙 대통령께서 말을 안 들으니까. 잘못하다가는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겠다. 이런 식의 어떤 강력한 항의. 그러니까 촛불과는 다른 의미의 그런 항의를 하기 위해서 횃불을 들고 나온 것이 아닌가 싶은데요.
◇ 정관용> 그러면 촛불은 개인주의적인 것이고 자기 내면을 밝히는 것이라면 횃불은 어떤 집단 또 어떤 민족 이런 걸 상징하면서 더 강력한 저항을 담는다 그런 차이가 있다?
◆ 이택광> 좀 더 심층적으로 들어가보면 사실 촛불과 횃불이 비슷하게 보이지만 사실 저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해요. 서로 다른 어떤 질적인 가치를 품고 있다고 보는데. 일반적으로 촛불이라는 것은 우리에게는 낯설고. 어떻게 보면 젊은 세대들이 더 공감을 하는 그런 방식에 가깝고요. 촛불은 저 같은 사람. 좀 요즘에는 아재라고 불리는데 저 같은 아재 세대들이 훨씬 더 공감을 할 수 있는 그런 어떻게 보면 민중봉기라든가. 시위라고 하면 횃불 정도는 들어야지라고 생각하는 분들도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이게 사소하게 보이는 갈등이지만 저는 조금 잘못하다가는 심각한 문제로 발전할 수 있는 차이가 있는 것 아니냐. 잘못하다가는 세대갈등의 문제가 될 수 있고 문화적 가치의 충돌을 일으킬 수 있는 거 아닌가라고 생각이 드는 거죠.
◇ 정관용> 그렇게까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세요?
◆ 이택광> 사소한 문제인데 이게 크다는 거죠. 왜냐하면 지금 촛불시위에 나온 많은 시민들을 스스로를 부르시는 분들이 어떻게 보면 굉장히 그런 운동권에 대한 혐오 또는 운동권들이 이 시위를 폭력화하면 안 된다. 과격분자다, 폭력분자다 이렇게 부르는 양상들이 있어요. 그게 어떻게 보면 사소하게 보이겠지만 사실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왜냐하면 지금 광화문에 모이는 시위에서 많은 분들은 몇 만이 모였다? 이것에 굉장히 관심이 많잖아요. 그리고 특히 언론들도 굉장히 관심이 많고.
◇ 정관용> 매번 기록 경신을 해야 돼, 이런 거.
◆ 이택광> 기록 경신을 해야 되고. 마치 1000만 관객이 드는 것처럼. 그런데 이게 바로 수의 정치를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촛불집회가 원칙적으로 바라는 것은 수의 정치입니다. 많이 모일수록 좋다. 그래서 평화시위로 가야 된다. 그리고 이것이 너무 많은 정치적 구호가 난무하면 안 되고 더 많은 사람을 불러내서 위력을 과시해야 된다, 이것이 기본 생각이잖아요. 그런데 그것이야말로 사실 자유민주주의의 수의 정치죠. 결국 이 촛불이 원하는 것은 자유민주주의라는 거예요.
◇ 정관용> 그렇죠, 최소한의 자유민주주의.
◆ 이택광> 그렇습니다. 그런데 횃불이라는 것은 여기에 비하면 상당히 이질적인 측면이 있다는 겁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자유민주주의보다는 조금 더 정치적 열정을 많이 동원할 수 있는. 한국은 지금까지 그런 정치적 열정을 동원하는 데 사용되었던 그런 범주가 뭐냐? 민족이에요. 그러니까 우파든 좌파든 진보든 보수든 결국 민족이라는 것을 호명하면서 이런 정치 열정을 동원했거든요. 국민이라고 불리는 것도 그렇지 않습니까? 많은 국민들이 여러 종류의 국민들이 있지만 국민들이 호소하는 것도 민족국가에 대한 어떤 기본적인 우리의 합의가 있기 때문에. 한국은 민족국가다. 그리고 한민족으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 이건 진보, 보수를 넘어서는 어떤 초월적 범주거든요. 그걸 통해서 동원해내는 게 횃불에 가깝다는 거죠. 그런데 사실 캔들비질이라고 보통 불리는 촛불집회는 거기에 비한다면 가족단위 또는 친구단위, 연인단위 또는 개인이 혼자서 나오기도 하고 그런 식으로 하면서 여러 가지 자기 자신의 어떤 내면, 또 자기 자신과의 사회관계 이런 걸 돌아보는 쪽에 가깝다는 거예요. 그래서 둘이 만약에 충돌했을 시에는 사소하게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이 문제를 푸는 것이 어떻게 보면 정치의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 정관용> 촛불과 횃불이 충돌할 수도 있다,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군요.
◆ 이택광> 실질적으로는 지금 탄핵이라든가 퇴진 이런 문제 때문에 충돌이 표면화 안 되고 있죠.
◇ 정관용> 제가 이렇게 한번 비유를 해 보면 어떨까요. 조금 아까 이런 말 썼습니다. 최근에 광화문 또 전국에 촛불 들고 오신 분들은 너무 과도한 정치적 슬로건 여기서 빼자. 과거 운동권 이런 것 여기서 좀 빠지자. 우리는 순수한 뜻으로 정말 소박한 자유민주주의를 원하는 것이다. 이렇게 목소리를 내는 시민들이 많이 있다, 아까 언급하셨잖아요. 저는 그걸 87년으로 비유해 보면 87년에 대통령 우리 손으로 좀 뽑게 해 달라. 직선제는 정말 최소한의 어떤 기본 권리 아니냐. 그렇게 해서 국민들이 모였고 그 앞에 독재권력도 무릎을 꿇지 않을 수 없었단 말이죠. 그런데 그 후에 벌어진 일을 보면 대통령 우리 손으로 뽑을 권리를 줬더니 결국은 정치권이 분열하고 국민들로 나눠지더라. 그거 아닙니까? 지금 그런 걸 얘기하시는 거예요?
◆ 이택광> 그렇죠, 저도 그게 우려스러운 거죠. 사실 이렇게 수의 정치를 많이 해서 결국 지금 대통령을 퇴진시킨다 또는 탄핵을 시키더라도 결국 그러한 공통의 목표가 사라지면 이 모순이 격화될 수가 있죠. 드러나게 되고 우리가 익히 봐 왔던 가장 우려하는 분열의 상황을 맞이할 수가 있고요. 이 문제를 잘 해결해야 되는 것이 제가 볼 때는 차후에 누가 이렇게 이 문제에 대해서 굉장히 관심을 기울일지는 모르겠지만 정치권의 책임이라는 겁니다. 이 문제를 소홀하게 보면 안 된다. 지금은 어떻게 보면 횃불도 있고 촛불도 있고 공존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어떻게 보면 횃불과 촛불이라는 것이 질이 다르기 때문에 전혀 다른 질적 차이를 갖고 있기 때문에 이 문제를 정치가 잘 해결해야 된다는 거죠.
◇ 정관용> 이택광 교수는 촛불은 개인의 합, 이렇게 보시는 거고.
◆ 이택광> 지금의 체제의 어떤 특징들을 보여주는 재연이죠.
◇ 정관용> 그리고 횃불은 뭔가 그것보다는 강한 정치적 지향, 이런 게 담겨 있을 수밖에 없다고 보시는 거고.
◆ 이택광> 이념적일 수밖에 없다는 거죠, 횃불이라는 것은. 그래서 이 둘은 사실 조화를 이뤄야 된다고 봅니다. 저는 이 둘이 다르기 때문에 각기 놀아야 된다는 뜻이 아니라 이 둘이 사실은 조화를 이뤄야지만 우리가 원하는 정치. 또 우리가 원하는 나라가 만들어지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드는 거죠.
◇ 정관용> 좀 더 쉽게 표현하면 박근혜 이후 대한민국을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준비하고 만들어갈 것이냐라는 질문 아닙니까, 간단히 말하면. 또 그 질문에 대한 답은 또 서로 다를 수 있다, 이거 아닙니까?
◆ 이택광> 다를 수 있지만 힘을 합쳐야 할 부분은 합쳐야 됩니다. 대표적인 게 저는 이미 과거에 2002년도 노무현 정권의 탄생시기에 이미 한 번의 시험을 우리는 거쳤다고 봅니다. 월드컵과 또 기존에 있던 민주화세력이라고 불리는 세력들이 연합을 해서 노무현 정권을 탄생시켰는데. 그러한 기회가 한 번 더 올 거라는 거죠. 탄핵이나 퇴진이 되고 나면. 그다음에 이 문제를 우리는 한번 시험을 했기 때문에 답을 알고 있지만 그 답과 다른 답을 해야 되지 않을까라는생각이 든다는 거예요. 그것에 준비가 돼 있는가. 그것을 정치권에 물어야 되고 우리 스스로도 물어봐야 되는 거 아닌가 생각이 드는 거죠.
◇ 정관용> 하긴 뭐 당장 몇 달 있으면 어쨌든 대통령 선거는 더 빨리 이루어질 것 아닙니까?
◆ 이택광> 열차는 출발했습니다.
◇ 정관용> 대통령 선거 이루어질 때 모든 국민이 지금 95% 이렇게 박근혜 대통령을 비판하지만 95%가 한 정당을 지지하는 이건 또 바람직한 것도 아니잖아요.
◆ 이택광> 바람직하지 않죠.
◇ 정관용> 그러니까요.
◆ 이택광> 하지만 대의라는 것은 있어야죠.
◇ 정관용> 그리고 그 대선에서 무엇을 중심으로 경쟁구도를 짜야 되는지 이런 거죠.
◆ 이택광> 그러니까 밥상을 차려놨는데 먹는 방식들은 사실 정치권에서 결정을 해야 되는 거죠. 순서도 정해야 되고. 어떤 방식으로 상을 차려야 될 것인가도 정해야 되는 거죠. 그러니까 이미 다 차려져 있는 것을 먹겠다라는 것이 아니라 차리는 데 같이 동참할 필요가 있지 않은가 이런 생각이 들고요. 그게 지금 현재 하나처럼 보이는 여러 가지 요구와 또 여러 가지 어떤 생각들을 하나로 모아낼 수 있는 대의를 정치권이 만들어내야 된다는 것이 제 요지입니다.
◇ 정관용> 어찌 보면 87년에 최초로 우리가 자유민주주의의 가장 기본 권리라고 할 수 있는 대통령 직선 그거 하나 얻어냈잖아요. 그리고 지금 세월이 30년이 흘렀는데 다시 자유민주의 기본이 지켜지고 있느냐, 이런 말 또 하고 있는 거 아닙니까?
◆ 이택광> 계속 반복되고 있는 거죠. 무한루프입니다. 이 루프를 벗어날 어떻게 보면 절호의 기회일 수도 있어요, 지금이. 지금 박근혜 정부라는 게 사실은 그 루프의 마지막 정점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여기서 박근혜 정부를 끊어내면 사실 우리는 과거와 결별할 수 있는 것이고 새로운 시대로 갈 수 있는 거 아닌가라는 나름대로 희망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가 여기서 시험을 잘 봐야 된다는 거죠.
◇ 정관용> 어떻게 보면 되겠어요, 뭘 준비하면 되겠어요?
◆ 이택광> 사실 기본적인 합의는 해야 되지 않을까 싶어요. 자유와 민주라는 기본적인 합의는 해야 되고 군부독재라든가 또는 지금 우리가 초기에 갖고 있던 경제 민주화라든가 복지국가라든가. 사실 박근혜 정부가 오게 된 이유도 그게 아니었습니까? 기본적으로 그게 대의죠. 그게 충실한 그런 정치. 그런 정치들에 대한 생각들을 지금부터라도 해서 정치권들이 그것과 관련된 답을 내놔야 되는 것이죠. 그리고 우리는 거기에 대해서 선택을 하면 되는 것이고 그런 문제가 저는 남아 있다고 보고. 여기에는 물론 국민의 힘, 국민의 생각들이 더 중심에 놓여져야 되는데. 이번에 탄핵 국면도 보시면 아시겠지만 정치권에서 이걸 결정하는 게 아니라 국민들이 압박을 한 거죠. 국민의 편에 선 정치인들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그런 교훈들을 줄 수 있을 것 같고요. 거기에 관련돼서 또 앞으로의 역사적인 여러 가지 과정들을 돌아볼 수 있는 그런 관점들이 생길 수 있다고 봅니다.
◇ 정관용> 맞아요. 이번에 최순실 국정농단 또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각종 개입. 그러면서 유신 때를 보는 것 같다는 말 많이 했잖아요. 그런 독재까지는 몰라도 권위주의적인 거라든지 그건 없애고 자유와 민주를 가장 기본에 놓고.
◆ 이택광> 박근혜 정부가 사실 그런 패러다임은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다는 걸 너무나 잘 보여준 그런 사례죠. 앞으로 또 그런 일을 한다는 것은 용납될 수 있는 거 아니겠어요, 기본적으로는.
◇ 정관용> 앞으로 대선이 됐건 뭐가 됐건 거기서는 자유와 민주라고 하는 기본. 또 탈권위주의라고 하는 기본. 이건 아주 최소한의 바탕에 깔고.
◆ 이택광> 합의를 하자는 거죠, 합의를 하고.
◇ 정관용> 그 위에 진짜 우리가 논의할 것은 지난 대선에서도 논의됐던 경제 민주화, 양극화 해소, 이런 거 아니냐.
◆ 이택광> 그러니까 방법론적인 다양성은 인정할 수 있어요. 그걸 달성하기 위한 여러 가지 방법론에 대한 토론들은 당연하게 있어야 되죠. 하지만 그런 대의에 대한 합의들을 좀 하고 지나가자는 거죠. 그걸 뒤집는 그런 행위들. 사실 이번 박근혜 정부가 보여준 그런 것들은 그걸 뒤집고자 하는 시도였지 않습니까? 그걸 뒤집는 것은 없애야 된다라는 거죠.
◇ 정관용> 그런데 선거 때만 말로만 그냥 안 그럴게, 민주화 할 거야. 이렇게 해놓고 권력 잡으면 돌아가버리면 어떡합니까?
◆ 이택광> 그때는 또 촛불시위를 해야 되죠. 참 슬픕니다마는 어쨌든. 그런데 그것도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예요, 사실은. 또 안 되면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해결을 하면 되는 것이고요. 그래서 이번에 하나 굉장히 바람직한 것은 공권력들이 어쨌든 물론 법의 어떤 명령이었겠지만 중립적 자세를 최소한 취하려고 한다는 것. 여러 가지 부족한 점이 많겠지만 그것만 해도 보십시오. 민주주의가 사실 굉장히 꽃을 피우잖아요. 그러니까 공권력만 최소한 중립을 지켜달라. 이 정도 요구를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어요.
◇ 정관용> 오늘은 촛불과 횃불, 촛불이 모이면 횃불된다 보통 그랬는데 의미하는 바는 상당히 다를 수 있다. 여기서 시작을 했는데 결국 제가 이해하는 바로는 이제 우리는 박근혜 이후 대한민국 고민해 봐야 되는 거 아니냐?
◆ 이택광> 그렇죠, 이제부터 고민해야 돼요. 거기에 횃불과 촛불이 함께 갈 수 있는 길을 찾았으면 좋겠다는 거죠.
◇ 정관용> 알겠습니다. 여기까지 듣죠. 수고하셨습니다.
◆ 이택광> 감사합니다.
◇ 정관용> 경희대학교 이택광 교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