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의 속사정이 궁금하다. 뉴스의 행간을 속 시원히 짚어 줍니다. [Why뉴스]는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를 통해 들을 수 있습니다. [편집자 주]김현정의>
■ 방송 : 권영철의 Why뉴스
■ 채널 : 표준 FM 98.1 (07:30~09:00)
■ 진행 : 김현정 앵커
■ 대담 : 권영철 CBS 선임기자
박근혜 대통령은 대리인을 통해 헌법재판소에 제출한 답변서에서 "대통령의 국정수행 총량 대비 최순실 등의 관여비율을 계량화한다면 1% 미만이 된다"고 주장했다.
국정수행 과정에서 최씨의 의견을 듣고 이를 국정에 일부 반영했더라도 이는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정도의 일'이라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그래서 오늘 [Why뉴스]에서는 '박 대통령은 왜 최순실 관여는 1% 미만이라고 할까?' 라는 주제로 그 속사정을 알아보고자 한다.
박근혜 대통령 측 대리인 이중환 변호사를 비롯한 대리인단이 지난 16일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민원실에 탄핵사유에 대한 반박 입장을 담은 답변서를 제출하고 있다. (사진=황진환 기자)
▶ 1% 미만이지만 관여는 인정한 것이냐?= 관여를 인정하려는 취지는 아니었지만 결과적으로 최순실씨의 국정관여를 인정하는 셈이 됐다.
박 대통령의 대리인인 이중환 변호사에게 어떤 취지로 '1%미만'이라고 표현했나? 라고 물었더니 "국정농단이 아니라 국정 전체 중 최순실의 의견을 들은 관여 부분은 최대로 잡아도 1%미만이라는 취지"라고 답변했다.
1% 미만을 관여했다고 시인하는 게 아니고 '알기 쉽게 수치로 계량을 하더라도 1%도 안 될 만큼 미미한 정도로 최순실의 의견을 들은 것'이라는 취지라는 설명이다.
그렇지만 결과적으로는 1%미만이지만 국정에 관여했다는 걸 인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헌법학자인 서강대 임지봉 교수도 "이는 대통령이 중대한 위헌행위를 했음을 답변서에서 스스로 자백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최순실 씨와 박근혜 대통령 (사진=자료사진)
▶ 1% 미만은 괜찮다는 건지 뭔지? 비선라인의 국정관여는 1건이라도 안 되는 것 아닌가?= 그렇다. 민간인의 국정관여는 있어서도 안 되고 있을 수도 없는 일이다.
대통령 법률대리인들은 국정수행 과정에서 최씨의 의견을 듣고 이를 국정에 일부 반영했더라도 이는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지만 그 자체가 문제라는 얘기다.
(사진=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임지봉 교수 페이스북 캡처)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임지봉 교수는 "1%가 아니라 0.001%라도 국민이 대통령으로 선출하지 않은 최순실씨가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개입했고 대통령이 그것을 허용했다면 대통령 자신이 헌법 제1조와 헌법 제67조를 위반했다고 자백한 것"이라고 밝혔다.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조국 교수는 "(박 대통령 변호인단이) 1% 판단기준을 제시하지 않고 있지만, 양적 기준일 가능성이 많다"면서 "박근혜 결재사안 중 1% 미만을 정부 1년 예산 400조 원을 기준으로 하자면, 1% 관여는 4조 원 관여로 어마어마한 액수"라고 지적했다.
대통령 탄핵심판 소추위원 대리인단의 한 변호사도 "0.001%라도 국정에 관여하면 탄핵사유가 되는 것"이라면서 "1%다 몇 %다 라는게 중요한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사진=전여옥 전 한나라당 의원 페이스북 캡처)
전여옥 전 의원은 "'국정개입 1% 미만'이라는 것은 '나는 1원도 챙긴 것이 없다'는 것과 같은 선상에 있다"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변호인단이 머리를 서로 맞대고 의논한 결과 나온 결론일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국정개입 1% 미만만 해도 아무 직책도 없는 보통사람 최순실이 했다면 엄청난 것"이라고 질타했다.
대통령이 수행하는 국정의 총량을 계량화 하는 건 불가능할 정도로 엄청나게 많다. 국정 전 분야를 망라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산만 해도 1년에 400조원 규모에 이르니까 4년간 1500조원에 이르는 규모가 된다.
▶ 그래도 '1%미만'이라는 수치로 표현할 때는 그 근거가 있을 것 아닌가?= 특별한 근거가 있는 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박 대통령 대리인들이 헌재에 낸 답변서 12쪽 <2. 헌법 위배 행위 부분> 중 "최순실 등이 국가 정책 및 고위 공직 인사에 광범위하게 관여했거나 좌지우지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고 입증된 바도 없다. 그 과정에서 최순실이 사익을 추구했더라도, 피청구인(박 대통령)은 개인적 이득을 취한 바 없고, 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인식하지 못하였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로 별도 설명을 붙였는데 "언론에 제기된 의혹 대부분은 '미르-K재단,최순실 이권 사업' 등에 국한되어 있는 바, 이는 피청구인이 대통령으로서 수행한 국정 전체의 극히 일부분(대통령의 국정수행 총량 대비 최순실 등의 관여비율을 계량화한다면 1% 미만이 되고, 그 비율도 소추기관인 국회에서 입증해야할 것입니다)에 불과하고, 피청구인은 최순실의 이권 개입을 전혀 알지 못한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박 대통령 대리인은 "피청구인(박 대통령을 의미)이 국정 수행 과정에서 지인의 의견을 들어 일부 반영했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회통념상 허용될 수 있는 일(White House Bubble)" 이라는 것이다.
(사진=자료사진)
▶ 대리인들이 제출한 답변서가 오히려 대통령에게 불리하게 작용하는 것 아닌가?= 답변서를 읽어보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들이 많다. 고의적이지 아니면 헌법재판에 대한 식견이 부족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법조인들 사이에서도 이상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그래서 '트로이의 목마'가 있는 것 아니냐는 그런 얘기까지 나돌고 있다.
이상한 답변 중 '무죄추정의 원칙'을 주장한 것이(헌법 27조 4항) 가장 눈에 띤다.
탄핵은 민사소송이나 형사소송과 달리 헌법재판이다. 그래서 무죄추정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다는 게 전문가들의 일치된 분석이다.
판사출신의 중견 변호사는 "무죄추정은 피의자나 피고인에게 해당되는 것이고 탄핵 피청구인에게 인용되는 권리는 아니다. 그건 나중에 특검 조사 받을 때 주장할 수 있는 것"이라면서 "대통령의 대리인들이 법을 모르고 그런 답변서를 내서 갑갑하더라" 라고 말했다.
또 하나는 헌법상 연좌제 금지 조항(13조 3항)을 들었다는 점이다.
헌법 13조 3항은 "모든 국민은 자기의 행위가 아닌 친족의 행위로 인하여 불이익한 처우를 받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답변서에는 "최순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최순실의 행위에 대한 모든 책임을 피청구인의 헌법상 책임으로 구성한 것은 헌법상 연좌제 금지 조항의 정신에 위배된다"고 했다. 최순실씨가 박 대통령의 친족이라는 걸 인정하는 것일까?
물론 법리적으로는 '연좌제(緣坐制)'가 있고 '련좌제(連坐制)'가 있다. 잇닿을 련자의 련좌제는 "친족이 아니라 단순히 가까이 지내던 타인의 죄를 뒤집어 쓰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대리인들이 헌법 13조 3항을 구체적으로 밝혔으니까 박 대통령과 최순실씨가 친족이라고 밝힌 셈이 된다.
한가지를 더 추가하자면 대통령의 '항변권'을 주장한 것이다.
탄핵소추 과정에서 피 소추인에게 발언기회도 안 줬다는 말인데 이는 노무현 전 대통령 때도 니왔던 주장이다. 그런데 당시 헌재는 "국가기관과 개인간의 관계에서는 이런 기회를 줘야하지만 대통령 지위를 가진 사람을 탄핵하는 것이기 때문에 전혀 필요 없다"고 이미 결정한 바 있어서 의미가 없는 답변이다.
탄해소추안을 기초한 민주당 금태섭 의원은 "탄핵을 기각시킬 만큼 답변서가 나올 것으로는 안 봤지만 예상치 못한 날카로운 주장이나 최소한 심리를 지연시킬 만큼 장애가 되는 주장이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면서 "그렇지만 이 답변서는 거의 아무 의미 없는 답변서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 왜 이렇게 답변이 허술한 것이냐?= 변호인을 구하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한다.
청와대와 법률대리인들의 의견을 들어보니 헌법재판 경험이 있거나 법조계에서 능력이 있다고 평가를 받는 변호사들 대부분이 법률 대리인을 사양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사정에 정통한 여권관계자는 "어쨌건 역량있거나 명성이 있는 변호사들이 '뒤에서 돕겠다. 이름 내는 거는 좀 그렇다'면서 사양하고 있는 것으로 들었다"고 말했다.
답변서가 허술하다는 평가에 대해서는 "답변서는 변호인이 구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1주일만에 쓴 것"이라면서 "기본입장만 밝힌 것이고, 본격적인 답변서는 변호인단을 제대로 꾸려서 내부논의를 거쳐서 다시 제출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헌법재판소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탄핵심판이 빨라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데?= 그런 관측이 나오고 있다.
그 첫 번째 이유는 헌재의 움직임이 상당히 빠르기 때문이다. 헌재가 직권으로 특검과 검찰에 수사기록을 제출하라고 했다.
법조계에서는 이런 움직임으로 미뤄 헌재가 탄핵심판을 서두르고 있는 걸로 보고 있다.
한 중견 법조인은 "헌재의 행보를 보면 상당히 빨리 가고 있다"면서 "이미 특검과 검찰에 수사기록 내라고 했고 그게 직권주의"라고 말했다. 직권주의는 당사자가 아닌 재판관이 소송의 주도적 지위를 맡는 것을 의미한다.
두 번째는 헌법재판관이 9명일 때 탄핵심판을 해야 한다는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탄핵심판이 인용되기 위해서는 9명의 헌법재판관 중 6명이 찬성해야 하는데 8명일 때 6명이 찬성하는 것과는 비율이 다르다. 한 중견법조인은 "헌법재판관 1인의 비율을 국회의원으로 따지면 33석 이상"이라면서 "재판관이 9명일 때 탄핵심판을 결정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세 번째는 헌법재판소가 생기기 이전의 '탄핵심판법'에 기초하는 것이다.
탄핵심판법은 1965년 제정됐다. 1964년 국회를 통과했지만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해 국회에 재의를 요청했고, 국회가 탄핵사유를 헌법과 법률을 위배한 때로 한정해서 1965년에 다시 의결됐다.
이 탄핵심판법에 당초 탄핵심판을 90일 이내로 규정했다가 재의하면서 30일 이내로 해야 한다고 수정됐다. 헌법재판소가 만들어진 뒤 탄핵심판을 180일 이내로 해야한다고 규정이 바뀌었지만 이는 탄핵 외에 헌법소원이나 위헌심판제청 같은 일반 사건들과 통합해서 운영하다보니 그런것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