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조기탄핵 송박영신 10차 촛불집회에서 참가자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하늘엔 조각구름 떠 있고/ 강물엔 유람선이 떠 있고/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뚜렷한 사계절이 있기에/ 볼수록 정이 드는 산과 들/ 우리의 마음속에 이상이/ 끝없이 펼쳐지는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이렇게 우린/ 은혜로운 이 땅을 위해/ 이렇게 우린/ 이 강산을 노래 부르네/ 아아 우리 대한민국/ 아아 우리 조국/ 아아 영원토록/ 사랑하리라" - 정수라 '아 대한민국' 중에서
박사모(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 등 친박단체가 지난 31일 서울 대한문 앞에서 연,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맞불집회 현장에서는 주로 딱딱한 군가가 울려 퍼졌다. 그 와중에 익히 아는 가요가 한 곡 들려 왔으니, 바로 앞에서 소개한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이었다.
1980년대 전두환 군사독재 정권 때 만들어진 이 노래는, 당시 엄혹했던 시대상과는 달리 한국 사회를 이상향처럼 그리고 있다. "저마다 누려야 할 행복이 언제나 자유로운 곳"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얻을 수 있고 뜻하는 것은 무엇이건 될 수가 있어" 등의 가사를 보면 그 미화의 정도를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앞서 박사모 등은 지난달 17일 열린 맞불집회 당시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아름다운 강산'을 틀었다가, 신중현의 아들이자 유명 기타리스트인 신대철로부터 "박사모, 어버이(연합) 따위가 불러서는 안된다"는 비난을 샀다.
그 뒤로는, 정확히 말하면 신대철이 '아름다운 강산'에 담긴 의미를 명확히 밝힌 이후로 박사모 등은 이 노래를 멀리 했다. 이날 신대철은 자신의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아름다운강산이라는 노래는 나의 아버지가 74년에 작곡한 노래다. 이 노래를 만들게 된 사연이 있다"며 말을 이었다.
"당시 나의 아버지는 최고의 히트곡 작곡가였다. 그런데 어느날 청와대라고 하면서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증언에 의하면 청와대가 "각하(박정희)의 노래를 만들라"라는 내용의 강권을 행했다 한다. 즉 박정희의 찬양가를 만들라는 것이었다. 그러나 아버지는 그런 노래는 만들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러자 이후 공화당(5·16군사정변으로 집권한 세력이 만든 민주공화당)이라며 다시 전화가 왔었다고 한다. 역시 같은 내용 이었고 만약 만들지 않으면 다친다라는 협박도 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재차 거절했다."
지난 31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박근혜 즉각퇴진 조기탄핵 송박영신 10차 촛불집회에서 기타리스트 신대철이 공연을 펼치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신대철은 "이 곡(아름다운 강산)은 권력자를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없지만 아름다운 우리 대한민국을 찬양하는 노래는 만들 수 있다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며 "서슬퍼런 독재권력자 박정희의 강권을 거부하고 우리나라를 하나로 아우르는 노래를 만들었지만 이 곡 역시 금지곡이 되었다"고 전했다. 이 노래의 가사는 아래와 같다.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푼 내 마음/ 나뭇잎 푸르게 강물도 푸르게/ 아름다운 이곳에 네가 있고 내가 있네/ 손잡고 가보자 달려보자 저 광야로/ 우리들 모여서 말해보자 새 희망을/ 하늘은 파랗게 구름은 하얗게/ 실바람도 불어와 부푼 내마음/ (중략)/ 오늘도 너를 만나러 가야지 말해야지/ 먼 훗날에 너와 나 살고지고/ 영원한 이곳에/ 우리의 새꿈을/ 만들어 보고파/(후략)"지난 31일, 그러니까 맞불집회에서 '아 대한민국'이 들려온 날, 90만 시민이 운집한 가운데 열린 광화문광장 촛불집회에서는 신대철이 전인권 밴드와 함께한 '아름다운 강산', 신중현의 또 다른 노래 '미인'이 울려 퍼졌다. 록 음악과 꽹과리·장구·북 가락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신명나는 무대는 2016년의 마지막 날 광장을 가득 메운 시민들의 흥을 한껏 돋우었다.
이날 공연에 앞서 신대철은 "여러분, 음악계의 비선 실세 신대철입니다"라며 "오늘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하려고 합니다. 여러분, 좌절하셨죠? 실망하셨죠? 여러분이 느끼셨던 좌절감, 배신감, 실망감 그 모든 걸 오늘 이 '아름다운 강산'과 함께 다 날려 버립시다"라고 강조했다.
참고로 맞불집회 현장에서 쓰인 정수라의 '아 대한민국'과 흥미롭게도 제목은 같지만, 메시지는 180도 다른 노래가 있다. 바로 1980년대 민주화의 현장을 누볐던 '투사' 정태춘의 '아 대한민국'이다. 헌정사상 초유의 국정농단 사태를 부른, 여전히 변함없는 한국 사회 권력층의 민낯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는 그 가사를 아래에 전한다.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사랑과 순결이 넘쳐 흐르는 이 땅/ 새악시 하나 얻지 못해/ 농약을 마시는/ 참담한 농촌의 총각들은 말고/ 특급호텔 로비에 득시글거리는/ 매춘 관광의 호사한 창녀들과 함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기름진 음식과 술이 넘치는 이 땅/ 최저임금도 받지 못해/ 싸우다가 쫓겨난 힘 없는/ 공순이들은 말고/ 하룻밤 향락의 화대로/ 일천만원씩이나 뿌려대는/ 저 재벌의 아들과 함께/ 우린 모두 풍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만족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저들의 염려와 살뜰한 보살핌 아래/ 벌건 대낮에도 강도들에게/ 잔인하게 유린당하는/ 여자들은 말고/ 닭장 차에 방패와 쇠몽둥이를 싣고/ 신출귀몰하는/ 우리의 백골단과 함께/ 우린 모두 안전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평화롭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 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모두 행복하게 살고 있지 않나/ 아 우리의 땅/ 아 우리의 나라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양심과 정의가 넘쳐흐르는 이 땅/ 식민 독재와 맞서 싸우다/ 감옥에 갔거나 어디론가/ 사라져간 사람들은 말고/ 하루아침에 위대한/ 배신의 칼을 휘두르는/ 저 민주인사와 함께/ 우린 너무 착하게 살고 있지 않나/ 우린 바보같이 살고 있지 않나/ 아 대한민국/ 아 우리의 공화국우린 여기 함께 살고 있지 않나/ 거짓 민주자유의 구호가/ 넘쳐 흐르는 이 땅/ 고단한 민중의 역사/ 허리 잘려 찢겨진/상처로 아직도 우는데/ 군림하는 자들의 배부른 노래와/ 피의 채찍 아래/ 말은 무릎을 꺾고/ 우린 너무도 질기게 참고 살아 왔지/ 우린 너무 오래 참고 살아 왔어/ 아 대한민국/ 아 저들의 공화국/ 아 대한민국/ 아 대한민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