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일은 세월호 참사 발생 1000일이 되는 날입니다. 304명의 귀한 목숨을 한순간에 앗아간 사건의 진실은 여전히 세월호와 함께 깊은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습니다. CBS노컷뉴스는 세월호 참사가 빚어낸 한국 사회의 깊은 상흔을 치유할 기록을 다듬어 가는 '416기억저장소'를 조명합니다. [편집자주]
416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이 경기 안산시 고잔동에 있는 416기억전시관의 전시공간 한가운데 앉아 있다. (사진=뉴스앤조이 제공)
"이 다짐, 우리 도언이가 비록 멀리 있지만 매일매일 들을 것 같구나. 그 억울함, 엄마가 하나하나 풀어줄게. 도언아, 보고 싶다…."
세월호 참사 1000일을 사흘 앞둔 지난 6일, 세월호 참사 희생자·실종자·생존자 가족협의회 416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은 단원고 희생자인 딸 김도언 양 이야기 앞에서 결국 참았던 눈물을 보였다.
"단원고 416기억교실에 매일 가면서 도언이 책상에 앉아 항상 다짐해요. 도언이 희생이 헛되지 않도록 매일매일 움직이겠다고…. '엄마랑 같이 학교 가면 기분 좋고 발걸음도 가볍다'고 아이는 자주 말했죠. '엄마랑 항상 같이 있겠다'고, '영원히 같이 살고 싶다'고 얘기하곤했는데, 그 약속 지켜 주지 못해 항상 미안해요."
이 소장은 "참사 이후 1000일을 버텨 올 수 있던 데는 함께 촛불을 든 국민들 덕이 가장 컸다"고 전했다.
"사실 우리 유가족만으로는 견딜 수 없었을 거예요. 단원고라는 단체로 묶였지만 '유가족'이라는 단어가 때로는 (일부 국민들을 불편하게 만드는) 꼬리표처럼 여겨졌으니까요. 우리 옆에서 항상 웃으면 웃는 대로 울면 우는 대로 묵묵히 지켜봐 주신 시민들께 계셨죠. 지난해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안이 국회에서 통과되는 걸 지켜보면서 새삼 국민의 힘은 대단하다고 느꼈어요. 이 나라의 주인은 국민이라는 것을 느끼는 나날입니다."
'스스로 국민이 아닌 것처럼, 국민을 언급하면서 거리를 두는 것 같다'는 말에, 그는 감정이 북받치는 듯 "그렇죠"라고 답한 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정부가 우리 유가족들을 국민으로 여기지 않고 탄압해 왔으니까요. 유가족들을 다시 국민으로 일컬어지도록 해 준 분들이 옆에서 지지해 주시는 촛불 시민들이에요. 그들과 함께 움직이면서 유가족으로서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다시 느끼는, 그런 믿음을 얻고 있어요."
'지난해 말, 박 대통령의 비선 실세 최순실 등의 국정농단 사태가 터졌을 때 든 심정'을 묻자, 이 소장은 "416기억저장소장이 아니라 개인으로서 답하겠다"는 전제를 단 뒤 말을 이었다.
"먼저 우리 아이들 생각이 나더군요. 아이들도 대한민국의 국민이었잖아요. '아이들이 어떻게 이런 나라를 자랑스럽게 여기고 살았을까'라는 생각에 너무 마음이 아픕니다. 이 아까운 아이들이 너무나도 억울하게, 불쌍하게 희생됐다는…. 빨리 진실을 밝혀내 아이들 억울한 것 풀어 줘야겠다는 생각 밖에는 들지 않아요."
◇ "기억해 주세요… 그 기억으로 행동하고 진실 밝힐게요"
416기억저장소 이지성 소장(사진=뉴스앤조이 제공)
이 소장은 지난해 7월부터 소장직을 맡아 제2기 416기억저장소를 이끌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관련된 모든 기록을 수집하고 보존하는 곳이 416기억저장소"라고 그는 설명했다.
"세월호 참사 당시 5000만 국민들은 아이들이 서서히 수장돼 가는 장면을 생중계로 지켜봤습니다. 저장소의 자료들이 진실을 밝히고 다시는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대한민국을 바꾸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는 "수많은 시민, 활동가들로부터 헌정 받은 방대한 양의 자료를 세분화·목록화하기 위해 실무진이 애쓰고 있다"며 "그렇게 보관되는 자료는 시민들의 요청에 따라 활용될 수 있게끔, 다시 세상의 빛으로 돌려드리고 있다"고 말했다.
"2기 소장으로서 이 자료들을 통해 참사로 희생된 304명의 꿈이 대한민국과 전 세계를 밝히는 빛으로 다가갔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무엇보다 자료가 많이 활용될 수 있도록 애쓰는 이유죠. 그런 만큼 지금은 자료를 체계화하는 작업에 많은 공을 들이고 있어요."
416기억저장소와 416기억전시관은 아름다운재단의 후원으로 단원고 희생 학생들의 일상이 깃든 경기 안산시 고잔동에 둥지를 틀었다. 내부 인테리어 역시 새로운건축협의회의 도움으로 현재 모습을 갖췄다. 이 소장은 "이곳은 이전에도, 지금도 정부나 지자체 지원 없이 시민들의 자발적인 후원으로 운영중"이라고 전했다.
"시민 한 분 한 분이 마음을 보태 기록을 모으고 저장소를 운영한다는 데 큰 의미를 두고 있어요. 정부에서 진실을 은폐하려는 상황에서 국가 지원을 받아 운영한다면 힘들게 모은 기록마저 지워 버리려 할 테니 오히려 진실을 제대로 드러내지 못할 겁니다."
이 소장은 "세월호 희생자 한 명 한 명의 이름이 기억될 수 있도록 기억저장소를 꾸려나가겠다"며 "그 기억으로 행동하고 진실을 밝히겠다"고 강조했다.
"생존 학생들이 많이 힘들어 합니다. 이 아이들도 유가족처럼 평생 아픔을 안고 살아갈 거예요. 지금 다들 대학생이 된 만큼 대학 생활 마음껏 즐겼으면 해요. 그리고… 힘들겠지만 희생된 아이들을 위해 조금 더 노력해 주길 바랍니다. 세월호 참사를 떠올리면 먼저 마음이 아프시겠지만, 그럼에도 반드시 기억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국민 한 분 한 분 마음 모아 주시면 저희가 그 큰 마음 안고 큰 걸음으로 나아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