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권남용 등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1일 오전 영장실질심사를 받기 위해 서울중앙지법에 출석하고 있다. 박종민기자
'법꾸라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비서관이 또 한 번 법망을 빠져나갔다.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우 전 수석에 대해 청구한 구속영장이 22일 기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우 전 수석의 신병을 확보해 국정농단 사태의 정점에 있는 박근혜 대통령을 향한 특검 수사 계획에도 일부 차질이 생겼다.
특검은 전날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직무유기, 특별감찰관법 위반,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률 위반(불출석) 혐의로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그는 문체부와 공정위, 외교부 공무원의 좌천성 인사에 개입하고 미르·K스포츠 재단 직원 채용과 관련해 민간인을 사찰한 혐의, '비선 실세' 최순실씨의 국정농단을 비호·묵인 의혹하고 이석수 특별감찰관의 정당한 감찰 활동을 방해하는 등 박근혜 정권을 좌지우지하며 국정농단에 깊이 관여한 의혹을 받고 있다.
특검은 우 전 수석이 민정수석의 지위를 이용해 월권행위를 했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우 전 수석은 전날 오전 서울중앙지법에 열린 영장 실질심사에서 "박근혜 대통령 지시에 따라서 공무를 수행했고 가교 역할만 했다"면서 "직권남용이나 직무유기로 볼 수 없다"는 논리를 펼친 것으로 전해졌다.
법원은 우 전 수석의 손을 들어줬다. 오민석 서울중앙지법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영장청구 범죄사실에 대한 소명의 정도와 그 법률적 평가에 관한 다툼의 여지 등에 비추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을 인정하기 어렵다"라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우 전 수석의 구속영장이 기각되면서 박 대통령이 이를 빌미로 자신의 무고함을 강조하며 특검의 무리한 수사를 비판하며 나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우 전 수석 구속영장에 적시되지 않은 피의사실은 물론 지난해 검찰도 실패한 아들의 운전병 복무 혜택, 가족회사 횡령 의혹과 같은 개인비리 규명도 차질을 빚게 됐다.
수사기간이 촉박한 상황에서 특검이 우 전 수석 혐의에 대한 추가적인 물증을 확보해 영장 재청구에 나서는 것은 상당히 어려울 전망이다.
황교안 대통령 권한대행 겸 국무총리가 수사기간 연장을 승인하지 않을 경우 특검 수사는 채 일주일도 남지 않게 된다.
특검은 지난 16일 황 권한대행에 수사 기간을 연장해달라는 내용의 공문을 보냈지만, 아직 대답을 받지 못했다. 이미 앞서 황 권한대행이 기간 연장에 부정적인 뜻을 내비친 바 있는 만큼 이제는 긍정적인 답변을 더 기대하기 힘들게 됐다.
우 전 수석을 불구속기소한 뒤 마무리 못한 수사를 검찰에 이첩할 경우, 그를 둘러싼 수많은 의혹을 밝히기란 더욱 쉽지 않을 전망이다.
우 전 수석이 팔짱을 낀 자세로 검찰 수사팀과 웃고 있는 모습이 공개돼 논란을 빚기도 했다. 이 장면이 상징하듯 검찰 내에는 제식구이자 '실세 선배'였던 우 전 수석을 제대로 수사하지 못할 것이란 우려가 크다.
우 전 수석을 불구속 상태로 재판에 넘기더라도 향후 법정에서 혐의 입증을 둘러싸고 치열한 공방이 예상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