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 대선 가능성이 짙어지는 가운데 보수진영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마땅한 대선 주자도 없고 보수를 표방한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지지율은 좀처럼 오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두 당의 의원들은 심한 무기력증에 빠져있는 모양새다.
바른정단 최고위원회의.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바른정당, '보수개혁' 실험 기로에새누리당내 일부 의원들이 보수혁신과 개혁보수를 표방하며 바른정당을 만들 때 까지만 해도 괜찮았다. 새누리당에 남아 있는 일부 의원들이 곧 탈당해 합류할 가능성도 있었고, 대권에 도전한 반기문 전 유엔사무총장도 결국은 바른정당을 기반으로 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자신감이 있었다.
그러나 반 전 총장이 허무하게 대선무대에서 내려오기 시작하면서 바른정당도 침체의 늪에 빠져들었다. 유승민, 남경필 두 대선주자가 치고받고 경쟁하고 있지만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다. 바른정당 지지자들 사이에서 조차 앞서 두 사람보다 안희정 충남지사에 대한 지지율이 높다.
개혁입법 추진으로 수구적인 모습을 탈피하겠다고 다짐도 했지만 의원들의 사고가 기본적으로 보수여서 진보진영에서 요구해 왔던 개혁의제들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다. 선거연령 만 18세 인하,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 등 그나마 가능성을 열어놨던 법안들 조차 내부 이견에 다시 문을 닫고 있다.
당내에서는 탄핵심판을 계기로 침묵하던 '샤이 보수'와 '태극기 보수'의 지지가 유승민 의원 등 바른정당 후보들에게 올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하지만 자유한국당과의 차별성을 보여주지 않는 한 극보수층은 자유한국당에, 중도보수층도 안희정 충남지사나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에 뺏길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회의.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 자유한국당, 무기력 그 자체 새누리당은 박근혜.최순실 게이트가 터진 이후, 특히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탄핵안이 국회에서 가결된 이후 집단 무기력증에서 빠져 나오지 못하고 있다. 특히 말 깨나 하던 의원들이 탈당해 바른정당에 딴 살림을 차리면서 조금은 있었던 당내 논쟁조차 사라진지 오래다.
인명진 비대위원장이 의원들을 향해 하대하듯 호통을 쳐도 아무 저항도 못하는 게 자유한국당의 현실이다. 이러다보니 강경친박 의원들의 목소리가 마치 당 전체의 의견인양 울려퍼지고 있다. 분명히 이들과 생각이 다른 의원들이 있지만 다른 목소리를 낼 의지도, 용기도 없는 듯하다. 대선에 뛰어들거나 출마를 저울질하는 인사들이 많지만 왜 나오는지, 왜 나와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인명진 비대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의 투 톱을 중심으로 3정(三政)혁신 차원에서 민생이라는 이름으로 개혁과제들이 제시되곤 하지만 그 때뿐이고 반드시 관철시키겠다는 결기는 느껴지지 않는다. 야당이 주장하는 이른바 '개혁입법'을 '디스'하는 수단 정도에 불과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당 지지율이 10%를 넘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답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을 반대하는 골수 보수층에 있다. 하지만 골수 보수에 의존하는 한 대중정당으로서의 면모를 갖추는 데는 한계가 있다. 분권형대통령제를 내세워 개헌을 주장하고 나선 것도 권력에 숟가락 얹는 유일한 방법임을 깨달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 대선은 패스…내년 지방선거도 참패 가능성도
바른정당 이건 자유한국당 이건 간에 어느 쪽에서도 대선승리나 정권재창출을 얘기하지 않는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의 집권을 저지하기 위해 개헌을 고리리 연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있지만 현실 가능성에서는 의문이 많다. 이러다보니 집단 우울증에 걸린 듯 무기력하기 짝이 없는 말들이 난무하는 실정이다.
자유한국당의 한 의원은 "정말 앞이 캄캄하다. 동료의원들을 만나면 하는 이야기가 뭐 재미있는 것 없냐는 것이다. 우울증에 걸릴 것 같다"고 말을 했다. 다른 의원은 "기존 새누리당(자유한국당) 후보로는 한계가 명확하다. 필패 카드다"며 별 기대를 하지 않는다는 투로 얘기했다.
사정은 바른정당도 마찬가지다. 당의 한 관계자는 "어차피 이번 대선은 뒤집기 어려운 것 아니냐. 제3지대를 구축하려는 움직임도 있는데 된다고 해도 파급력이 있겠느냐"는 등 한탄조로 얘기를 이어갔다.
범여권에서는 대선은 고사하고 이대로 가면 내년 6월에 치러질 지방선거도 필패라는 위기감도 느껴진다. 간발의 차이로 승부가 갈리곤 했던 수도권은 물론이고 깃발만 꽂으면 됐던 TK 등 영남지방도 바른정당과 자유한국당이 합치거나 선거연대를 하지 않으면 어렵다는 인식이다.
물론 두 당 모두 지금은 잠시 떨어져 있지만 곧 다시 하나가 될 한 가족이라는 생각이 강하지만 감정 싸움으로 골이 깊어지면 통합이나 연대에 따른 시너지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다는 지적도 있다. 여권의 한 관계자는 "여당이라면 공공기관이나 유관기관에 자리라도 만들어주면서 경쟁자들을 정리할 수 있겠지만 야당이 되면 그럴 수도 없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