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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폐성장애인 차승훈 씨에게 마음이 가닿기까지

책/학술

    자폐성장애인 차승훈 씨에게 마음이 가닿기까지

    '마음의 속도'

     

    빛의 속도가 가장 빠른 속도를 뜻한다면 어쩌면 이것은 가장 느린, 마음의 속도가 아닐까요. 수천 번, 수만 번을 반복한 후에야 비로소 상대의 마음에 가닿는 말, 그 말들에는 말보다 더한 것들, 말로는 차마 표현할 수 없는 것들이 담겨 있기에 이렇게나 늦게 닿는지도 모릅니다. -139쪽

    '마음의 속도'는 자폐인, 장애인이 아닌 차승훈이라는 한 사람을 알아가는 과정이다. 그리하여 장애인이라는 이름표를 붙이기 전에 그 사람의 이름을 먼저 보는 것이 중요하다는 걸 깨닫게 해준다. 그 사람의 이름을 먼저 보면 그는 수많은 장애인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고유의 개성을 지닌 한 사람으로서 장애 역시 독특한 개성 중 하나라는 걸 알게 된다.

    그의 이름은 차승훈. 올해 스물다섯, 건장한 청년이다. 하지만 그에게는 비밀이 있다. 발달장애 2급의 자폐성장애인. 자폐성장애란 타인과 소통이 되지 않으면서 지능 저하가 동반되는 장애다. 그래서 스물다섯 승훈 씨의 지능은 지금 일곱 살에 멈춰 있다.

    그럼에도 승훈 씨는 누구보다 평범하고도 행복한 사람이다. 일을 할 수 있고 일을 해서 번 돈으로 맛있는 것을 사먹을 수도, 선물을 할 수도 있다.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 혼자 갈 수도 있다. 그리고 그가 어떤 사람이건 변함 없이 그를 지켜 주고 사랑해 주는 가족들과 그를 아끼는 많은 어른들과 친구들도 있다. 바로 우리들처럼 말이다.

    엄마는 언제나 그에게“승훈이는 멋져. 멋진 사람이야. 최고야.”라고 말해 주신다. 그래서 승훈 씨는 처음 만나는 사람에게 자신을 소개할 때 꼭 이렇게 말한다.“안녕하세요, 저는 멋진 남자 차승훈입니다”라고.

    자폐성장애인이 타인의 도움 없이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확률은 1% 남짓! 처음부터 세상 누구도, 심지어 엄마조차도 승훈 씨가 지금의 모습으로 살 수 있으리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런 그가 사람들을 만나고, 인사를 나누고, 혼자서 길을 걷고 버스를 타고 지하철을 타고, 일을 하고, 요리를 하는 것까지, 절로 된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래서 그를 어린 시절부터 지켜봐온 이들은, 그리고 자폐성장애인이 자립해서 살아가기가 얼마나 힘든지 아는 이들은 이건 기적이라고까지 말하기도 한다.

    승훈 씨가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 법을 익히는 데는 평범한 사람들보다 수십 배, 수백 배의 노력과 시간이 필요했 다. 그리고 승훈 씨와 세상의 연결지점에는 평생 승훈 씨를 돌보고 지켜 주고 또 가르친 엄마가 있었다. 엄마와 승훈 씨가 눈을 맞추기까지, 또“엄마”라고 부를 수 있기까지, 짧게는 10년, 길게는 20년의 시간이 걸렸다.

    사람의 마음과 마음은 어떤 속도로 전해지는 걸까? 승훈 씨에게 전해진 엄마의 마음은 얼마만큼의 속도였을까? 어쩌면 그 속도는 세상에서 가장 느린 속도가 아니었을까? 그런데 마음의 속도는 빠를수록 좋을까, 아니면 느려도 괜찮은 걸까?

    우리는 누구나 자신만의 크고 작은 장애와 함께 살아간다. 그것에 비관하거나 함몰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것을 이겨내거나, 또는 잘 달래가며 함께 살아갈 수도 있다. 물론 혼자만의 힘으로는 버겁다. 승훈 씨처럼 엄마와 가족, 친구와 이웃들의 사랑과 지지가 있다면 조금 수월해질 수 있다. 우리에게 사랑과 지지가 필요한 이유도 바로 그 때문이다. 조금 다르다고 해서, 조금 늦다고 해서, 조금 특별하다고 해서, 조금 모자라다고 해서 그 문을 닫아버리는 세상은 결코 좋은 세상이 아니다. 그리고 승훈 씨 같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인 우리도 언제고 약자가 될 수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런 좋은 세상이어야 한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우리 모두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니까.

    책 속으로

    만약 길에서 승훈 씨를 마주친다면, 또는 승훈 씨 같은 사람이 느닷없이 인사를 건네 온다면 너무 놀라지 마세요. 인사는 좋은 것이라고 배운 장애인 친구일지도 모르니까요. 그건 아마 인사를 하고 싶을 정도로 여러분의 인상이 참 좋다는 뜻일 테니까요. 그저 “네, 안녕하세요” 하고 인사를 받아 주시면 됩니다. 장담컨대, 그와 헤어져 가는 길에는 마음을 열어 낯선 이와 인사를 주고받는 여유를 되찾은 것만으로도, 부자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 겁니다. -30쪽

    자존감은 누가 베푸는 것이 아닙니다. 자존감이라는 것은 나도 어딘가에서는, 누군가에게는 필요한 존재라는 것을 스스로 깨달으며 저절로 자라나는 것이지요. 우리가 직업을 통해, 일을 통해 배우고 얻는 것 중에는 월급이나 소속감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부록처럼 따라오는 성취감과 자존감도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일을 하면서 우리는 돈도 벌지만 성취감도 느끼고 자존감도 얻습니다. 그건 승훈 씨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35쪽

    아직도 어떤 사람들은 장애인을 무섭다고, 더럽다고 생각합니다. 엄마는 그런 게 아니라는 걸 보여 주고 싶습니다. 세상의 편견을 통쾌하게 부숴 주고 싶습니다. 그런 엄마와 승훈 씨에게는 패션도 전략입니다. -59쪽

    일반학교에 보내건, 특수학교에 보내건 부모가 원하는 것은 같습니다. 아이가 아웃사이더나 외톨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사회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조금 더디고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이런 이들까지 끌어안는 것이 더 건강한 사회가 될 수 있는 길이 아닐까요.
    그러니 승훈 씨를 일반 학교에 보낸 건 세상을 향한 엄마 나름의 투쟁을 시작했다는 뜻이었습니다. 당신들만의 세상에 우리도 들어가게 해달라고 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는 뜻이었습니다. -88쪽

    관계는 한 쪽이 일방적으로 주고 다른 한 쪽은 받기만 하는 것으로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주고받는 것, 그것이 관계의 본질입니다. 도움만 받고 돌봄만 받던 승훈 씨가 요리라는 사소하고도 특별한 행위를 통해 반대로 남들에게 베푸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한 관계를 맺을 수가 있습니다. -106쪽

    누구도 혼자서 살 수는 없습니다. 아무리 아프고 힘겨워도 세상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려 살아야 합니다.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아야 합니다. 서로의 손을 잡고 온기를 느껴야 합니다. 그래서 엄마는 먼저 자신의 상처를 열어 보이기로 결심했던 겁니다. 벽을 허물어버리기로 결심했던 겁니다. 그래야 엄마도, 승훈 씨도 세상 속으로 들어갈 수 있으니까요. -125쪽

    폭풍우 속을 허술한 비닐우산 하나 쓰고 걷는 것만 같던 그 길고도 긴 시절을 지났을 때 어느 순간 우리는 깨닫습니다. ‘아, 내가 부모가 되었구나. 정말로 부모가 되었구나.’ 그리고 이런 사실도 알게 됩니다. 우리는 누구도 부모로 태어나지 않는다는 것을요. 부모는 되어가는 것이라는 사실을요. -195쪽

    조금 다르다고 해서, 조금 늦다고 해서, 조금 특별하다고 해서, 조금 모자라다고 해서 그 문을 닫아버리는 세상은 좋은 세상이 아닙니다. 그리고 승훈 씨 같은 장애인뿐만 아니라 비장애인인 우리도 언제고 약자가 될 수 있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그런 좋은 세상이기를 바랍니다. 장애인이건, 비장애인이건, 우리는 모두 이 세상에서 함께 살아가는 이웃들이니까요. -247쪽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는 이상하게 피식피식 웃게 됩니다. 행복하고 만족스러운 기분이 들어서입니다. 냇가에서 주운 아주 예쁜 돌들을 주머니가 늘어지도록 가득 집어넣고 온 기분입니다. -255쪽

    한수희 , 박미영 지음 | 마루비 | 256쪽 | 15,8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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