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5월 28일 지하철 2호선 구의역. 그저 열심히 일했을 뿐인 19살 청년이 이곳에서 숨을 거뒀다. 김 군의 죽음에 시민들은 슬퍼했고, 책임 당국은 재발 방지를 위한 수많은 공약을 쏟아냈다. 그 후 약 10개월. 과연 비정규직 청년 노동자를 잊지 않고, 시민과 노동자의 안전을 지키겠다는 약속은 지켜지고 있을까? CBS노컷뉴스가 구의역 사고 이후를 추적했다. [편집자주]
박원순 서울시장.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사고 이후, 남겨진 김군들이 그나마 희망을 가졌던 것은 박원순 서울시장의 약속 때문이었다. 시장은 이들을 '정규직 수준'으로 고용하고, 그에 맞춰 연봉도 3300만원 수준으로 설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어 지난 1월에는 "약속한 바가 다 이뤄젔다"며 이들의 실질 보수가 21%가 올랐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그러나 남겨진 김군들은 오히려 시장의 약속에 배신당했다고 토로한다.
CBS노컷뉴스는 서울메트로 소속 안전업무직 일부 직원들의 실제 월급 명세서를 입수했다. 분석한 자료들에 따르면 이들 중에는 하청업체 소속일 때보다 서울메트로에서 월급이 더 낮아진 직원도 있다.
검수업무직 사원의 급여 명세표 (사진=직원 제공)
◇ 원래 받던 금액에서 50만 원 이상 줄기도열차 검수 업무를 맡은 A 씨는 이직 전 하청업체에서 월 216만원 상당을 받았다. 기본급에 각종 수당을 모두 합한 금액이었다. 그러나 서울메트로 이직 직후에는 그보다 줄어든 200여만원, 그 다음 달에는 더 줄어든 162만원을 받았다. 해가 바뀐 지난 1월과 2월에는 200여만원(설 상여 제외)을 받았다. 70만원인 설 상여금을 더한다고 해도 그 시기만 반짝 월급이 올랐을 뿐, 이직 후 월급 평균을 낼 경우 당초 하청업체에서 받았던 월급보다 작아진다.
또 다른 직원 B 씨도 마찬가지다. B 씨의 하청업체 시절 월급은 월 210여만원. 그러나 이직 직후에는 180만원으로 떨어졌고 그 다음 달에는 200만원, 그리고는 50만원이나 줄어든 160만원을 받았다. 지난 1월과 2월에는 조금 오른 199만원(설 상여금 제외)을 받았다. 역시 평균을 내면 원래 받던 금액보다 적다.
임금이 오른 경우도 '약속'이었던 연봉 3300만원에는 못 미쳤다. C 씨는 하청업체에서 150만원 상당을 받다 이직 후 178만원을 받았고, 지난 1월부터 200만원 상당을 받기 시작했다. 세금과 대출금 등을 빼면 통장에 들어오는 돈은 180만원 수준이다.
신설된 '안전업무직'에 새로 채용된 직원들도 비슷한 조건이었다. 서울메트로 측은 스크린도어 유지보수직의 연봉은 3100만원 정도가 된다고 했다.
하지만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직원 D 씨가 CBS노컷뉴스에 제공한 연봉표에 따르면, 기본급에 직무수당, 상여수당, 효도휴가비, 월동비 등을 모두 긁어 더해도 2600만원 수준에 불과하다.
당장 서울시에서 "안전업무 타 직군 중 월급이 가장 많이 올랐다"고 발표한 은성PSD의 경우도 직원들의 말은 달랐다. 늘어난 업무 시간과 비교하면 임금 상승폭이 결코 크지 않다는 것이다.
은성PSD의 경우 근무는 주간, 야간, 심야 파트로 나눠졌다. 따라서 직원들마다 주간만 하거나, 야간만 하거나, 심야만 하는 구조였다. 그러나 서울메트로에서는 주·야간 근무가 합쳐졌고 이에 따라 근무 시간은 늘었지만 그에 준하는 수준으로 월급이 오르진 않았다는 얘기다.
◇ '실질임금' 올랐다는 서울시그럼에도 '연봉 3300만원 수준 설계'라는 약속이 지켜졌다고 주장한 서울시. 이는 어떻게 나온 결과일까?
서울시 관계자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안전업무직 5개 분야 중 한 분야인 모터카 운전 분야의 연봉을 3300만원에 이르도록 설계했다"고 말했다.
안전업무직 5개 분야에는 시민 안전과 관련된 스크린도어 유지보수, 전동차 검수 등 5개 직군이 들어간다. 서울시의 주장처럼 연봉 3300만원이 되는 모터카 분야는 지하철 운행이 끝난 후 선로 점검과 청소를 하는 분야로, 야간에 근무를 해 수당이 가장 많은 직군이다.
서울시 측은 "해당 분야의 연봉은 3300만원이고, 다른 분야는 3100만원에서 3200만원으로 설계했다"며 "시장은 발표 당시 연봉 3300만원 '수준'으로 하겠다고 했지, 연봉 3300만원으로 맞추겠다고는 하지 않았다"며 발표 당시와 다르게 말을 바꿨다.
하지만 당시 보도자료는 '5개 모든 분야의 연봉을 3300만원으로 설계하겠다'는 말과 다르지 않다.
(자료=서울시 제공)
서울시는 5개 분야 직원들의 실질 임금이 2800만원 수준이라면서 평균을 낼 경우 월급이 올랐다는 입장이다. 일부 직원들의 월급이 오히려 줄어든 점은 인정하지만, 이 부분은 차후에 평가급(성과급)과 수당 등이 지급되면 연봉이 더 올라가 해결된다는 것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직원들의 월급 명세서를 입수해보니 오히려 월급이 줄기도 했는데, 어떻게 약속이 지켜진 거냐"는 질문에 "아직까지는 초기 약속한 수준까지 안 되는 게 맞다"면서도 "그래도 성과급과 복지포인트 등이 반영 되면 월급이 더 오를테니 모니터링을 더 해봐야한다"고 말했다.
◇ "정규직인 줄 알았지만…"이같은 상황은 고용 문제가 여전히 풀리지 않았기 때문에 발생한 것이다. 이들의 신분은 정규직이 아닌 무기계약직에 불과하다.
박 시장은 처음 이들을 '안전업무직'으로 고용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하며 이들이 '정규직에 준하는 조건'으로 채용될 것이라고 발표한 바 있다.
그러나 '안전업무직'은 서울메트로가 비정규직 대우로 단순 노무직을 맡겼던 기존 '업무직'에서 '안전'이라는 이름을 단 분야가 추가된 것에 불과하다. 따라서 취업규직부터 비정규직, 즉 업무직의 취업규직이 적용됐고 기본급부터 호봉 간 임금 격차까지 정규직과 차이가 있다.
민주노총 소속 배현의 공인노무사에 따르면, 정규직 신분은 호봉이 오를 때마다 직급도 같이 올라 임금 상승폭이 크지만, 무기계약직은 1년 근속시 겨우 5200원(노사 합의 후 5500원)이 오르는 식이다.
배 노무사는 "서울시는 안전업무직과 정규직간 임금격차가 8.7% 수준에 그친다고 했지만, 당장 기본급만을 비교해도 10% 이상 차이가 난다"며 "일을 하면 할수록 안전업무직이 겪는 상대적 박탈감은 늘어날 수밖에 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서울시의 지난해 발표 자료를 보면, 직영화로 절감되는 예산이 47억원이라고 나오는데 직원들의 처우가 그만큼 좋아졌는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