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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회/정당

    [르포]"새누리와 합치면 죽여버려야제"

    호남에서 잠잠한 '녹색바람'…문재인·안희정은 화두, 안철수는 '갸우뚱'

    사진 = CBS노컷뉴스 박지환 기자

     

    "새누리(자유한국당)나 바른이랑 합치면 죽여버려야제. 국민의당 야그는 잘 안한당께."

    국민의당 경선 최종후보 선출을 열흘 남짓 앞둔 23일 광주 북구 본촌동. 느긋하게 점심식사를 마친 택시기사들이 식당 앞에 속속 모여들었다. 자연스럽게 차기 대통령 후보 얘기를 쏟아내던 기사들의 입에서는 더불어민주당 소속 대선주자 하마평 일색이었다.

    "문재인은 괜스레 밉지만 대통령 가능성이 젤로 크제", "안희정이가 요새 대세드만", "이재명이가 젤로 시원허지".

    한마디씩 꺼내는 기사들에게 "국민의당은요?"라고 불쑥 물었다. 기사들 중 한 명이 실눈을 뜨며 기자를 바라보다 "국민의당이 뭐요?"라고 반응했다. "아니 민주당 말고 국민의당도 후보 경선 중이잖아요"라는 물음에는 "우리는 국민의당 야그는 별로 안하는디"라는 답이 돌아왔다.

    개인택시를 십년 가까이 몰았다는 이모(58)씨는 "솔직하게 국민의당은 안보인다"며 "민주당이 이제 대세 아니냐"고 되물었다. 이씨는 "사실 택시 타는 손님들도 정치 얘기는 잘 안하는데 술마신 양반들은 가끔 한다"며 "그런데 대부분 민주당 얘기"라고 말했다.

    옆에 있던 최모(57)씨도 "지난해에는 국민의당을 뽑아줬어. 근데 지금은 뭐 하는게 없잖아"라고 거들었다. 최씨는 홱 돌아서 "난 안희정이 좋드만"이라며 다른 동료기사를 쳐다봤다.

    지난해 4.13 총선 당시 38석을 석권한 국민의당은 호남이 없었다면 원내 제3당의 반열에 오르지 못했다. 현정부의 실정과 집권여당에 실망한 호남 민심은 민주당 대신 안철수와 박지원으로 대변되는 국민의당에 몰표를 줬다. 지역구 25석 중 23석을 호남에서 싹쓸이했고 안 전 대표와 김성식 의원만 서울에서 당선됐다. 당 지지율은 26.74%로 제1야당인 민주당의 25.54%를 넘어서는 데도 호남과 출향민들의 공이 컸다.

    하지만 1년이 채 지나지 않아 분위기는 많이 바뀌어 있었다. 리얼미터가 23일 전남일보 등 전국 지방지 7개 의뢰로 당 지지율을 조사해 발표한 결과, 광주·전남에서 민주당 지지율은 53.1%, 국민의당은 28.8%로 두 배 가까이 차이가 났다.

    지난해말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국면에서 민주당보다 적극적이지 않았다는 감정의 앙금도 툭툭 묻어났다.

    "구 여권에서 국민의당에 같이 하자는 신호를 좀 보내는 것 같다"는 말에 이씨는 "새누리랑 합치면 죽여버려야제"라며 강한 반감을 드러냈다.

     

    자유한국당으로 당명을 개정했지만 아직까지는 원래 이름에 익숙한 듯 최씨 역시 "새누리나 바른(정당)이나 똑같응께 안되어야"라고 말한 뒤 귀찮다는 듯 허우적거리며 가버렸다.

    다소 섣부르지만 최근 바른정당 김무성 의원을 중심으로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지사, 국민의당 안 전 대표 등이 대선 본선 직전 반문(반문재인) 빅텐트를 쳐서 중도보수 대연합을 꾸릴 수 있다는 정치권 안팎의 전망에는 아예 관심조차 없었다.

    광주 서구 화정동에 있는 한 카페에서 커피를 즐기던 30대 여성들도 국민의당에 반감을 드러냈다.

    김모(37 여)씨는 "솔직히 박지원이 하는 게 뭐가 있냐"며 대뜸 냉소를 머금었다. 김씨는 "우리도 뉴스를 다 보니까 안다. 박지원이 민주당 욕하는 것 말고는 하는 게 없다"고 말했다. 또 "국민의당의 존재감이 언제부터인가 (광주에서) 없어졌다"며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과 합치면 여기서는 국민의당을 모두 떠난다. 그나마 있는 존재감도 사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옆에 있던 친구 손모(여)씨도 "2012년과 비교하면 안철수 지지자들도 주변에 많이 줄어들은 건 확실하다"며 "얘 말처럼 주변에서 국민의당 얘기를 별로 안 한다"고 말했다.

    손씨는 또 "어른들도 지난해 총선에서 (국민의당에) 표를 괜히 줬다고 한마디씩 한다"며 "한국당이나 바른정당과 합치면 지금 국민의당 의원들에게 다시는 호남에서 표를 안 줄 것"이라고 잘라말했다.

    다만 안철수 전 대표에 대한 신뢰는 조금 감지됐다. 광산구 송정동에서 작은 구멍가게를 하는 정모(62)는 "난 5년 전에 안철수 찍으려고 했는데 안 나와서 문재인 욕을 엄청했다"며 "이번에도 안철수를 찍겠다. 때가 안묻은 정치인 같다"고 말했다.

    그는 "손학규가 와서 국민의당이 뜰 줄 알았는데 그것도 아닌 것 같다"며 "그냥 안철수로 밀고 나가야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현재 국민의당의 집권 가능성에 대해 정씨는 "혼자만은 안된다. 다른 당이랑 합해야 한다. 근데 민주당으로는 도로 못들어가지. 나왔는데 다시 들어가면 '꼬붕'이 되잖아"라고 말했다.

    "자유한국당이나 바른정당과 함께 해야하냐"고 묻자 한참 생각하다가 "차라리 새누리랑 합쳐도 돼. 안철수가 대통령만 된다믄. 단 꼴통들이 나간 새누리"라고 차분하게 말했다.

    옆에 있던 주민은 "뭣할라고 갸네랑 합쳐"라며 정씨를 타박했다. 그는 "합치든 말든 관심은 없다"면서도 "그래도 합치믄 큰일 나제"라고 말했다.

    민주당 대선주자 지지도를 모두 더하면 60%가 넘는 상황에서 국민의당은 다른 정치세력과의 연대 등 활로를 모색해야하지만, 박근혜 정부 국정농단의 주역인 한국당.바른정당과 함께 할 수 없다는 안철수 전 대표의 뜻이 워낙 강한 상태다. 하지만 안 전 대표의 '자강론'이 강고할수록 '연대론' 움직임도 솔솔 나온다.

    지난 15일 주승용 원내대표가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 원내대표와 전격 회동해 개헌 국민투표 카드를 꺼내든 것도 '자강론'의 한계를 뛰어넘어 제3지대 후보 선출을 위한 사전포석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개헌을 매개로 민주당을 탈당한 김종인 전 비상대책위 대표를 내심 겨냥했지만 바른정당은 물론 친박(친박근혜) 인사가 청산된 한국당과의 연대 가능성도 닫지 않았다.

    하지만 산토끼를 잡으려다 집토끼 마저 놓치는 딜레마가 문제다. 대선 승리를 위해선 국민의당 입장에서는 호남의 절대적 지지를 기반으로 당 최종후보 중심으로 외연확장에 나서야 하지만 지난해 초 호남에서 거세게 불던 '녹색바람'은 기대조차 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최종 후보가 뽑히는 다음달 4일 이후에는 다른 당들도 후보 선출이 끝나는 만큼 연대론의 불씨가 재점화될 수 있지만 호남민심을 중심에 넣고 사고할 수 밖에 없는 국민의당으로서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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