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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어드십 코드' 망설이는 국민연금…여전히 '거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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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튜어드십 코드' 망설이는 국민연금…여전히 '거수기'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했더라면 삼성물산 합병 찬성 힘들었을 것"

     

    "국민연금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 합병 당시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했었더라면 합병 찬성은 힘들었을 것이다." 금융투자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은 잘못된 합병비율로 삼성물산의 가치가 손상된 것이란 평가가 있는 것이 사실이다. 당시 삼성물산의 최대주주인 국민연금으로서는 이를 당연히 반대했어야 한다는 의견이 많았지만 찬성에 손을 들었다. 추후 특검 수사 등을 통해 배후에 청와대 등의 외압이 작용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만약 국민연금이 '스튜어드십 코드'를 채택하고 있었더라면 이 원칙에 따라 의결권을 행사했을 것이고 그랬더라면 외압은 물론 논란이 되고 있는 합병도 성사되기 힘들었을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스튜어드십 코드란 '집사(스튜어드)에게 저택이나 집안 일을 충실히 관리해야 하는 의무가 있듯이, 연기금이나 자산운용사 등 주요 기관투자자들이 위탁받은 재산을 성실하게 관리하기 위해 준수해야 하는 기관투자자의 수탁자 책임에 관한 원칙'이다.

    수탁자의 책임이란 투자하는 대상 회사의 중장기적인 가치 향상과 지속가능한 성장을 추구함으로써 고객과 수익자의 중장기적인 이익을 도모할 책임을 의미한다.

    따라서 스튜어드십 코드의 원칙을 따를 경우 국민연금과 같은 기관투자자가 외압을 받아 회사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행위는 하기 힘들어진다.

    스튜어드십 코드 원칙 하에서 기관투자자의 활동 범위는 단순히 의결권 행사로 한정되지 않는다. 기업 경영전략과 성과, 위험관리, 지배구조 등 핵심 경영사항에 대한 점검과 이사회 등과의 협의를 포함하며 주주제안과 소송 참여 등 보다 적극적인 형태의 관여활동(engagement)을 포괄한다.

    그런 만큼 우리나라에서 지난해 12월에 스튜어드십 코드가 처음으로 제정됐을 때만해도 기관투자자의 적극적인 주주권 행사는 물론 금융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꿀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하지만 제정된 지 3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스튜어드십 코드는 시장에 별다른 반향을 불러일으키지 못하고 있다. 전체 3백여 기관투자자 가운데 스튜어드십 코드에 참여한 곳은 아직 한 군데도 없고 다만 10여 군데만이 앞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사를 밝혔을 뿐이다.

    이에 따라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이후 처음으로 열린 올해 3월 주총도 예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진행됐다.

    국내 대표적인 의결권 자문사들이 하나같이 반대 권고 의견을 냈던 신동빈 사내이사 재선임안이 롯데케미칼에서 무난히 통과되는 등 연기금을 포함한 기관투자자들은 올해도 거수기 역할을 충실히 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제정 후 3개월이 지났는데도 기관투자자들의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가 제로상태인 이유는 무엇인가.

    무엇보다 스튜어드십 코드가 처음으로 도입된 만큼 낯설어 준비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데다 주총 시즌과 겹쳤다는 점을 들 수 있다.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을 주도한 한국기업지배구조원의 송민경 연구위원은 “기관투자자 입장에서는 스튜어드십 코드 참여는 해본 적이 없는 일이다. 여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어떤 원칙을 지키고 안지키는지, 안지키면 왜 안지키는지 이유와 대안, 향후 계획을 기재해야 한다. 또 지킬 경우 어떻게 지키겠다는 내부 지침을 만들어 공개해야 하기 때문에 시일이 좀 걸린다. 또 이 업무를 담당해야 할 사람들이 주총시즌으로 바빠서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고 본다. 현실적으로 이해가 안가는 것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부가 아닌 민간주도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제정됐고, 투자업계의 큰 손인 국민연금이 아직 채택을 안했다는 점이다.

    정성엽 대신지배구조연구소 연구위원은 “스튜어드십 코드 제정 주체가 민간이다 보니까 구심력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제정됐고 제정 이후에 어떤 식으로 적용할지에 대해 애매한 부분이 많아 혼란 상황이 없지 않아 있다. 또 가장 중요한 국민연금이 아직까지 구체적으로 도입계획을 밝히지 않고 있는 점이 다른 기관투자자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라고 지적했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사무국장도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했을 때 채택을 자율로 맡겨놨고 이후 드라이브를 정부가 담당했어야 하는데 민간으로 넘겨서 동력이 약화된 측면이 있다. 여기에 자본시장의 대통령격인 국민연금이 눈치보면서 코드 채택을 않고 있는 점 등 세 가지가 맞물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지지부진한 상황을 맞고 있다”라고 분석했다.

    이는 이웃나라인 일본에서 정부 주도에 의해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급속도로 확산된 것과 크게 대조된다.

    “일본의 경우, 정부의 대규모 경제부흥계획의 한 꼭지에 기업지배구조개선이 들어가 있고 이를 위한 한 방편으로 기관투자자를 대상으로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이 추진됐다. 정부의 역점 사업인 만큼 총리 직속으로 위원회를 만들어 스튜어드십 코드를 제정하고 금융청(FSA)이 집행하고 관리하도록 했다. 이에 따라 도입 첫 해에 우리나라의 국민연금 격인 후생연금펀드(GPIF)가 바로 이 코드를 채택했고, GPIF가 수탁사를 정할 때 이 코드를 도입한 기관에 가산점을 준다고 하니까 코드 도입이 크게 확산됐다”라고 송민경 연구위원은 설명했다.

    금융위 주도로 추진하다 재계의 반발에 부딪쳐 민간이 주도해 제정했고 국민연금은 나몰라라고 하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과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다.

    재계의 반발에 부딪쳐 추진 주체를 민간으로 바꾼 것은 시장에서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에 대한 정부 의지를 의심하게 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이 점을 제외하고는 정부 주도가 아닌 민간 주도가 꼭 문제인 것은 아니다. 전세계적으로 민간협회에서 스튜어드십 코드를 만든 것이 정부 주도로 만든 것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부 주도에 의한 강제가 아니라 민간 자율적으로 스튜어드십 코드가 도입되고 확산됐을 때 선진화된 자본시장으로의 변화가 제대로 이뤄질 수 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튜어드십 코드 도입과 관련해 우리나라는 완전 자율적인 실험이다. 이것이 얼마나 실효를 거둘지 지켜봐야 할 것이다. 결국 우리가 앞으로 어떻게 하느냐에 달려있다고 본다”라고 송민경 연구위원은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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