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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학자 강수돌 "대선주자들, '덫'에 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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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제학자 강수돌 "대선주자들, '덫'에 걸렸다"

    [선택 길라잡이 ②] "표 경쟁의 덫에서 빠져나와 촛불민심 경청하는 자세 필요하다"

    '모든 국민은 자신들의 수준에 맞는 정부를 가진다'고 했습니다. 조기대선을 한 달여 앞에 둔 지금, 그 어느때보다 절실하게 다가오는 말입니다. 한국 사회는 구속된 박근혜 전 대통령을 통해 지도자 검증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학습했습니다. 우리는 대선주자들의 어떠한 면에 주목해야 할까요. 길라잡이가 될 만한 각계 전문가들의 의견을 전합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대세 문재인에게, 심리학자 김태형이 건네는 '쓴약'
    ② 경제학자 강수돌 "대선주자들, '덫'에 걸렸다"
    <계속>

    헌법재판소의 탄핵인용으로 박근혜 전 대통령이 파면된 지난달 10일 오후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촛불집회에 참가한 시민들이 '촛불의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지금 우리는 박근혜·최순실 게이트를 겪으면서 철학과 소신을 지닌 대통령의 필요성을 온몸으로 절감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번뿐 아니라 그 이전에도, 가장 민주적인 대통령으로 평가받는 김대중·노무현 대통령 시절조차도 미흡한 점이 많았어요. 지도자의 철학과 소신에 일관성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때입니다."

    경제학자 강수돌(고려대 경영학부) 교수는 최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대통령의 일관된 철학과 소신을 강조했다. 그가 신간 '대통령의 철학'(이상북스)에서 '정의로운 나라를 위한 리더의 품격'을 차곡차곡 정리하고 공유하려 애쓴 이유도 여기에서 찾을 수 있다.

    강 교수는 이 책에서 먼저 '땅' '돈' '사람'에 대해 지도자가 지녀야 할 철학을 진단했다. "새로운 나라를 집에 비유했을 때 땅, 돈, 사람은 집을 짓는 데 필요한 기초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경제사학자이자 경제인류학자인 칼 폴라니(1886~1964)는 저서 '거대한 전환'을 통해 '상품화 되지 말아야 할 것들이 상품화 됨으로써 오늘날 경제·사회가 몹시 뒤틀렸다"고 지적합니다. 상품화 되지 말아야 할 것들은 바로 토지와 화폐와 노동, 그러니까 땅과 돈과 사람이에요. 이들 요소에 대해 어떠한 올바른 관점을 지녀야만 집을 제대로 짓고,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이 행복해질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제 입장을 책으로 정리했어요."

    "최소한 땅, 돈, 사람만은 상품으로 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 강 교수의 지론이다. "그것이 바람직한 사회의 근간을 이루는 탈상품화의 시작"이라는 이야기다.

    "땅, 즉 부동산 경제에 있어서 우리나라는 미국만큼이나 위기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빈부격차의 근본 원인이요, 물가인상의 주범이니까요.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것 때문에 고통받고 있지 않습니까. 돈 되는 상품으로서 땅의 개념이 아니라, 쾌적한 주거 개념으로 가야만 하는 이유죠. 특히나 가장 중요한 '밥상 살림'이라는 경제적 차원에서, 농민들이 땅을 갖고 안심하면서 경작할 수 있는 '경자유전의 원칙'이 바로 서야만 사회가 안정적이고 평등하게 갈 수 있습니다."

    그는 돈에 관한 철학을 이야기하면서 '돈'맥경화 현상의 폐해를 강하게 비판했다.

    "우리 몸이 건강하려면 몸속의 피가 원만하게 돌아야 하는 것처럼, 사회·경제 시스템이 건강하려면 돈이 원만하게 잘 흘러야 합니다. 하지만 지금은 (돈이) 한쪽으로 쏠려 있고, 그로 인해 다른 쪽은 텅 빈, 일종의 '돈'맥경화 현상이 발생하고 있어요. 이는 결국 비뚤어진 재벌 시스템 내지는 기득권 경제 환경과 무관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면 더불어 골고루 살 수 있을까'라는 관점에서 돈 문제를 새롭게 바라봐야만 할 때입니다."

    마지막으로 사람에 대해서는 "누구나 동의하겠지만 사람을 목적으로 대해야지, 돈벌이에 활용하는 대상으로 여기면서 차별하고 억압해서는 안 된다"고 역설했다.

    "우리나라 헌법 10조에서도 모든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관점에서 교육도 일관성 있게 아이들이 행복한 교육이 돼야 하고, 어른이 돼서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경제 조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가장 기본적인 지도자의 철학이 되는 거죠."

    ◇ "A급에 들기 위한 유혈경쟁 '사다리꼴' 질서 깨고 '새 집' 지을 대통령 뽑아야"

    경제학자 강수돌 교수(왼쪽)와 그의 저서 '대통령의 철학' 표지(사진=강 교수·이상북스 제공)

     

    강 교수는 "어느 후보를 막론하고 모든 대선주자가 걸려들 수밖에 없는 덫이 있다"며 "그것은 바로 '표 경쟁의 덫'"이라고 지적했다.

    "표 경쟁의 덫에 갖히면 표를 벌기 위한 운동에 집중하기 때문에 본래 자기 신념을 저버리거나 상대를 지나치게 깎아내리는 일도 많이 해야만 합니다. 반면 어느 후보를 막론하고 양심에 기대어 생각하는 부분이 분명히 있을 수 있어요. 문제는 그러한 양심적이고 진심 어린 생각들을 얼마나 일관되게 이끌어 가느냐죠. 그러한 정책과 주체들이 모일 때 정치도 바뀔 수 있을 테니까요."

    그 연장선상에서 강 교수는 "촛불을 들고 광장에 나온 시민들은 표 경쟁을 하는 정치의 당사자가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광장에서 나온 수많은 이야기들은 진심과 양심에 바탕을 둔 미래지향적인 소망"이라며 말을 이었다.

    "이 점에서 저는 대선주자들이 촛불민심의 핵심을 경청하고, 그것을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펼쳐내고자 하는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고 싶어요. 표 경쟁의 덫에 갇힌 정치가들이 촛불민심을 수용하고 그것을 받아 안아 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합니다."

    그는 반드시 피해야 할 지도자의 모습으로 두 가지를 제안했다.

    "먼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서 뼈저리게 느꼈듯이, 국민이 위탁한 공적인 권력을 사유화하는 지도자입니다.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아니지만, (박 전 대통령이) 현직에 있을 때 이러저러한 권력망을 이용해 재단을 만든 뒤, 나중에 이사장으로 가려 한 것이 가장 대표적인 경우죠. 나머지 하나는 공적인 권력을 등에 업고 재벌과 공모하거나 재벌 품속에서 놀아나는 지도자예요."

    즉, "국가권력과 재벌자본의 결탁을 경계해야만 기득권 시스템인 '재벌-국가 복합체'를 극복하고, 모두가 적정한 수준에서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극소수의 그룹이 있고, 그 그룹 안에 들어가기 위해 피비린내 나는 경쟁을 벌이도록 부추기는 시스템이 작동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사다리꼴' 질서에서 A급에 들기 위한 처절한 유혈경쟁을 벌여서는 안 됩니다. 둥근 식탁에 모두가 둘러앉아서 웃으며 밥을 먹듯이 살아가는 사회, 다시 말해 '원탁형 사회' 모델이 절실한 때입니다."

    강 교수는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것은 '집 수리'가 아니라 '새 집'이라고 역설했다. 그러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대통령의 특징을 아래와 같이 설명했다.

    "사람, 땅, 돈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을 갖고, '노동' '복지' '교육' '농업' 분야에 대한 명확한 정책 비전을 지닌, 튼튼하고 멋진 집을 지을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여기에 '통일' '외교' 정책이라는 지붕을 튼튼하고 아름답게 올려야만 비도 안 새고 추위나 더위도 피할 수 있겠죠. 결국 우리는 국민 행복을 증진하는 데 있어서 개인적인 헌신뿐 아니라 일관성 있는 정책 비전, 그에 필요한 리더십과 팀워크를 꾸려갈 수 있는 포용력을 지닌 지도자를 선택해야 하는 과제 앞에 서 있습니다."

    ◇ "촛불광장 빚어낸 우리, 올바른 철학과 소신 지닌 지도자 가질 자격 충분"

    지난달 11일 오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20차 촛불집회 참가자들이 폭죽을 터뜨리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강 교수는 줄곧 수평적인 소통 질서에 뿌리내린 공동체 정신을 강조해 왔다. 이는 곧 '성장 중독 시스템'에서 벗어날 수 있는, 성찰할 줄 아는 사회로 귀결된다.

    "스웨덴의 언어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는 언어 연구를 위해 인도 북부 마을 라다크에 갔다가 놀라운 세상을 목격합니다. 그것이 저서 '오래된 미래'에 소개됐어요. 우리가 부러워하는 산업사회, 물질사회, 복지사회인 스웨덴의 언어학자는 동양의 비교적 가난한 산골마을에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모습에 '수천 년 전부터 내려오던 이것이야말로 전 세계인이 살아갈 미래의 대안'이라고 감탄합니다."

    그는 "사실 우리나라도 따지고 보면, 50, 60년 전만 해도 상대적으로 가난했지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살았다는 점에서 '오래된 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었다"며 "더불어 산다는 관점에서 보면 우리는 잃어버린 것이 참 많다"고 아쉬워했다.

    "지금도 우리네 농어촌을 보면 집집마다 경쟁하는 것이 아니라, 계 모임처럼 하나의 작은 경제 공동체를 이룬 모습이 남아 있어요. 제주 올레길을 걷다 보면 '해녀들이 공동으로 작업하는 곳이니 들어가지 마세요'라는 팻말을 접할 수 있잖아요. 한국 사회는 짧은 기간 재벌 중심의 경제 시스템으로 산업화를 추진하면서 혁혁할 만한 물질적인 성장을 이뤘어요. 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자연이 더불어 산다는 관점에서는 잃어버린 것이 참 많습니다. 제가 보기에 한국의 경제 성장 절정기는 1987년에서 외환위기 직전인 1997년까지예요. 그 무렵 1인당 국민소득이 2만 불 수준이었는데, 자꾸 '4만 불, 5만 불 가자'고 이야기할 것이 아닙니다. 2만 불 수준에서라도 수평적인 경제 공동체 관념을 더욱 확산하고 안착시킬 수 있는 새로운 아이디어가 필요합니다. 더이상 예전에 해 오던 대로 '허리띠 졸라매자'고 해서는 탈출구를 찾을 수 없어요."

    당장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조기대선을 두고 강 교수는 "대통령 한 명 뽑은 뒤 모든 일을 알아서 해달라는 우리의 태도는 더이상 안 된다"고 당부했다.

    "우리는 촛불광장을 경험했습니다. 그것이 지금 우리의 수준입니다. 우리는 그러한 높은 수준에 걸맞은 철학과 소신을 지닌 지도자를 가질 자격이 있어요. 정책의 일관성과 미래지향적인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 국가-재벌 시스템에 갖히지 않고 전체 국민의 행복을 추구하는 공동체를 꿈꾸는 지도자를 뽑아야 해요. 그런 대통령을 선출한 다음에도 끊임없이 채찍질하고, 광장에 모여 목소리를 내면서 건강한 비판도 할 수 있는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그는 끝으로 자신의 책 '대통령의 철학'에 대해, 시민들이 둘러앉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지금 한국 사회에 필요한 지도자를 뽑기 위해서는 활발한 토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믿음에서다.

    "제 경우 5명, 10명, 15명 정도 참여하는 인문학 모임 3곳을 꾸려가고 있습니다. 촛불광장을 보면서 이렇게 삼삼오오 둥그런 식탁에 둘러앉아 우리 공동체의 미래를 고민하는 자리가 필요하다고 절감했어요. 이러한 소모임을 전국적으로 많이 만들어 가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에 가깝게 다가가는 지름길이라고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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