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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희생자 父 "아들 떠난 3년, 지옥보다 무서운 시간들"

전북

    세월호 희생자 父 "아들 떠난 3년, 지옥보다 무서운 시간들"

    • 2017-04-15 06:00

    단원고 2학년 고 천인호 군 아버지의 회한 "조금 더 너그러웠더라면"

    "천인호 아빠 왔다" 천명구 씨가 세월호 희생자인 단원고 2학년 생 아들을 그리며 추모 리본에 적은 짧은 글에서 긴 슬픔이 느껴진다. (사진=천명구 씨 제공)

     

    "제가 아파트 16층에 살고 있는데요. 가끔 베란다에 서서 '여기서 떨어지면 어떨까' 생각해도 전혀 무섭지 않을 때가 있어요. 우리 아들도 아픔을 겪었는데, 아버지가 이런 것쯤이야."

    전북 익산에 사는 천명구(52) 씨는 종종 멍해지곤 한다. 그런 시간은 3년이 다 되간다.

    단원고 2학년 5반 고 천인호 군. 아들의 시간은 2014년 4월 16일 이후 멈췄다.

    그날 이후 하루하루는 "지옥보다 더 무서운 형벌이었다"고 천 씨는 말했다.

    아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눈 때를 머릿속에서 지우고 싶을 때도 많다.

    "우리 아들이 그 하얀 포에 씌워서 나왔을 때, 그걸 본 순간. 지금도 그 생각만 하면 가슴이 무너져요. 제 가슴 속 큰 상처가 우리 아들이라니 정말 너무하죠."

    깜깜한 배 안에서 아들이 얼마나 무서웠을지.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면 천 씨는 몸서리를 친다. 자다가도 벌떡벌떡 일어난다.

    천 씨는 아직 아들을 보내지 않았다. 아들이 어렸을 때 홀로 익산에 내려와 일을 시작한 천 씨는 아들과 함께 한 시간이 적은 게 가슴 속 죄로 남아있다.

    그래서 한 달에 대여섯 번 아들이 잠들어 있는 안산으로 향한다. 생전에 아버지를 보러 자주 익산을 찾은 아들처럼 천 씨도 아들에게 간다. 이제 해줄 수 있는 게 그것 밖에 없기 때문이다.

    조금 더 너그러운 아버지였다면 어땠을까하는 생각도 천 씨를 괴롭힌다.

    아들이 컴퓨터 게임을 하는 모습을 볼 때마다 화를 냈다. 그러지 말았더라면, 게임 CD를 사달라는 아들의 응석을 한 번쯤 받아줬더라면. 천 씨는 회한의 한숨을 토해냈다.

    천 씨는 "돈 열심히 벌어서 아들에게 조그마한 가게라도 마련해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아버지의 꿈은 이제 정말 꿈이 되고 말았다. 오늘도 어제처럼 천 씨는 치솟는 슬픔을 우겨넣으며 자신을 붙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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