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절-4, 2, 3, 1_인견, 합성사, 아크릴물감_194x97cm_2016. 도판=소피스 갤러리 제공.
직조 추상화가 차승언의 개인전 '성자 헬렌'전의 작품들은 직조가 주는 정갈함과 입체감 효과로 인해 명경지수의 일렁임을 보는 느낌이다. 실의 짜여짐에서 나오는 결은 정갈함을 낳고, 실의 미세한 결을 따라 색상과 형태가 구획되어지는 특성은 그 이미지를 때로는 두드러지게, 때로는 은은하게 드러내 보인다. 41점이 전시된 소피스 갤러리의 1,2관, 사무실 등 3개의 넓직한 전시장은 금강산 상팔담을 대하듯 시원시원하고 담박한 느낌의 직조의 계곡에 크고 작은 아름다운 소(沼)들이 굽이굽이 펼쳐진다. 조화와 균형, 리듬감 넘치는 패턴으로 평정 속 생동감을 준다.
차 작가의 직조 추상 작업은 '유의미한 추상이라는 무엇인가'를 찾기 위한 길 위에 있다. 흔히 개별 미술 작품은 그 자체로 완성의 의미를 갖는다. 차 작가는 직조라는 표현 매체로 추상 작업을 해오고 있다. 그는 그간의 직조 작업과 이번 전시 작품에 대해 완성의 이미를 두기 보다 추상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의미를 찾아가는 과정으로 본다. 그래서 작가에게 출품작들에 대한 만족이 있을 수 없고 큰 의미를 부여하지도 않는다.
갑작스런 규칙-K_면사, 합성사, 염료_65x91cm, 73x91cm_2017. 도판=소피스 갤러리 제공.
이번 전시 역시 전시 제목 '성자 헬렌'이 말해 주듯 추상화가 이성자(1919~2009), 헬렌 프랑켄탈러(1928~2011) 추상 회화 작품을 참조해 직조로 표현한 것들이다. 두 작가의 1960년대 초반 작품을 통해 그 시기 서양과 동양의 추상 작품은 어떻게 표현되는가, 그리고 차 작가의 직조 방법으로는 어떻게 구현할 수 있는가 파고드는 과정으로 볼 수 있다. 이성자 작가에게서는 왕골처럼 표면을 도드라지게 하는 방식을, 그리고 헬렌에게서는 염료가 잘 스미고 이질감 없이 베어드는 방식을 차 작가의 작업에 적용하였다.
이러한 작업 과정이 작가에게 주는 만족은 어떤 것일까? 그는 "물질을 만들어내며, 이미지를 같이 만들어가는 재미가 있다. 직조는 조각 같기도 하다. 가로실, 세로실이 쌓이면서 천이라는 물질이 만들어진다. 미세하게 깎아나가는 조각작업과 같다. 염색하거나 다른 색실을 사용해 물질과 이미지를 동시에 만들어내는 것이다."
골드 인동초문에 리처드 디테일_면사, 합성사, 아크릴 물감_146x97cm_2017. 도판=소피스 갤러리 제공.
차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고 나면 만족하는가'라는 물음에 의외의 답을 했다. 그는 "완성된 작품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왜 그러는 건지 자문해 보는데 아직 답을 못하겠다. 작품이 만들어지면 뒤로 흘려보내고 지나가게 된다"고 했다. 엄청나 공력이 드는 직조라는 작업을 통해 작품을 완성하고도, 그 작업 과정에서 만족을 느낄 뿐 완성품에 대해 만족이나 애착을 두지 않는 건 왜일까? 그건 직조 추상의 본질 발견이라는 궁극의 목표를 아직 이루지 못했기 때문이리라. 그는 내년에 직조 화가 애니 앨버스의 작품을 연구하기 위해 '죠셉과 애니 앨버스 재단' 레지던스에 머물 계획이다. 차 작가에게 유의미한 추상은 언제쯤 다가올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