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14일 MP3 기술을 개발한 이 연구소와 기술 실시권을 갖고 있던 테크니컬러(구 톰슨 멀티미디어) 간 MP3 특허와 소프트웨어 사용권 계약이 끝났다고 밝혔다. MP3가 태어난지 30년 만이다.
(사진=스마트이미지)
1979년 소니가 최초로 출시한 휴대용 오디오 레코드 '워크맨'은 2013년 1월 단종될 때까지 30년간 오디오 역사의 한 획을 그었다. 2000년대 들어 PC 산업이 최고조에 이르고 대용량의 파일을 쉽게 휴대할 수 있는 MP3 플레이어가 등장하자 카세트 테이프는 빠르게 사라진다. 아날로그 대신 디지털 음원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1987년 미국 AT&T 벨 연구소, 프랑스 톰슨사와 독일 프라운호퍼 집적회로 연구소에서 개발한 MP3(MPEG Audio Layer-3)는 비디오 압축 표준인 MPEG-1의 오디오 규격으로 개발된 손실압축 포맷이다. PCM 오디오 데이터를 사람이 듣는데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수준만을 표현한 무난한 음원 파일이라고 할 수 있다.
1998년 한국에서 개발된 최초의 MP3 플레이어 '엠피맨(mpman-F10)은 큰 주목을 받지 못했다. 당시만 해도 MP3는 파일은 PC 공간에서만 위력을 발휘했을 뿐 휴대용 MP3 기기는 존재하지 않았다. 디지털캐스트라는 이름 없는 중소기업은 추가 투자에 실패하며 우여곡절 끝에 재미교포 사업가에게 특허를 넘기게 된다. 쟁쟁한 기업들이 줄도산의 나락에 빠진 IMF 외환위기 영향도 컸다. 이후 미국에서 재탄생한 MP3 플레이어는 엄청난 인기를 끌고 국내 기업인 아이리버(레인콤)의 탄생에도 영향을 미친다.
세계 MP3 플레이어 시장은 한국 기업들이 휩쓸었다. 뛰어난 디자인과 대용량 메모리 탑재 제품을 잇따라 내놓으며 2000년대 초반까지 점유율 세계 1위를 놓치지 않았다. 원천기술을 가진 디지털캐스트의 특허권을 놓고 국내 업체들이 분쟁을 벌이는 사이 MP3는 쏟아져 나왔다. 하지만 오래가지 않았다. 맥 컴퓨터를 만들던 애플이 2005년 MP3 플레이어 '아이팟 나노'를 출시하면서다.
한국을 비롯한 세계 시장은 여전히 아이리버 등 한국산 제품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지만 아이팟 나노 출현 이후 북미와 유럽, 그리고 일본 시장에서는 한국산 MP3 플레이어가 빠르게 자취를 감추기 시작했고, 한국 업체들은 도산하거나 사업부문을 매각하기 시작했다. 2007년 애플이 MP3 플레이어인 아이팟과 휴대폰을 결합한 터치 디스플레이 '아이폰'을 출시하면서 MP3 시장은 요동 치기 시작한다.
한국은 불법복제·공유 등의 문제로 이미 MP3 음원 서비스가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휴대폰으로 쉽게 MP3 음원을 내려받아 음악을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MP3 플레이어 탄생 이후 디지털 콘텐츠 소비형태를 혁신적으로 바꾸어 놓은 계기가 된다.
축음기가 등장한지 120년이 흐른 지금, 아이폰 탄생 10년이 되는 2017년 MP3는 공식적으로 상업적 종말을 선고 받았다. 여전히 MP3 파일을 사용하고 공유하고 생산하는 일은 계속되지만 기술이 발전하면서 과도한 '손실음원'은 메인 스트림 시장에서 퇴보하고 있다. MP3 기술이 개발된지 20년 만이다.
프라운호퍼 연구소는 공식 성명을 통해 "지난 20년 동안 MP3를 오디오 코덱의 표준으로 만드는 데 커다란 도움을 준 라이선스 사용자 모두에게 감사한다"면서 "스트리밍 서비스나 TV, 라디오 방송 등 최신 미디어 서비스 대부분이 AAC나 MPEG-H와 같은 최신 ISO-MPEG 코덱을 사용한다. 이들 코덱은 MP3보다 더 낮은 비트율로 더 높은 음질과 더 많은 기능을 제공하고 있다"고 밝혔다.
AAC는 MPEG-4 규격에서 채택한 새로운 오디오 코덱으로 MP3보다 효율적이면서 음질은 CD의 원본 수준의 음질을 제공한다. 높은 음 분해 능력을 통해 최대 96kHz(CD음질 44.1kHz)까지 샘플링을 할 수 있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프리미엄 오디오 시장도 크게 재편되는 추세다.
이미 CD 음질 수준의 음원 서비스를 하고 있는 스포티파이(Ogg)와 애플뮤직(AAC) 등 국내외 스트리밍 음원 업체들도 최근 무손실(Loseless) 음원까지 서비스를 확대하고 있다.
테이프, CD와 함께 MP3의 설자리도 계속해서 좁아지고 있지만 인류의 디지털 소비 행태를 혁신적으로 바꾼 공로와 함께 인류 역사의 한 페이지에 남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