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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악녀' 김옥빈이 액션 배우로 살아남은 법

    [노컷 인터뷰 ①] "남자들끼리 하는 액션 구현…95% 분량 스스로 해내"

    배우 김옥빈이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악녀'는 김옥빈의, 김옥빈에 의한, 김옥빈을 위한 영화다. 한국 영화에서 새로운 액션의 가능성을 제시한 이 영화에서 김옥빈은 최정예 킬러 숙희 역을 맡아 단독 주연으로 활약했다. 숙희 캐릭터의 전형성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이 액션에 김옥빈이 쏟아낸 열정만큼은 이의를 제기할 여지가 없다.

    "숙희 감정선을 하나로 통합시키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그래서 정신적인 고통이 함께 왔던 것 같아요. 다른 액션 영화도 찾아보고 그랬죠. 타인을 무자비하게 살육하는 캐릭터가 가지는 인간적 감정이 매치가 잘 안됐어요. 그냥 액션이라는 게 허구고, 판타지라고 편하게 생각하니까 되더라고요."

    준비 과정에서 '킬빌'부터 '레지던트 이블' 시리즈까지, 여성이 주인공으로 활약하는 액션 영화라면 가리지 않고 전부 찾아 봤다. 노하우는 여기에서 끝이 아니다. 김옥빈은 성장 과정에서 권총, 장검, 단검, 도끼 등 다채로운 무기가 낯설지 않을 정도로 운동을 꾸준히 했다고.

    "어릴 때부터 유독 홍콩 액션 영화를 좋아했어요. 느와르 장르의 분위기도 좋아했고요. 시골에 살아서 할 게 운동밖에 없으니까 태권도, 합기도, 무에타이, 복싱 등 많이 배웠거든요. 사실 그게 다 배우의 재산인데 쓸 곳이 없어서 답답했어요. 그렇지만 악녀라는 영화를 만나서 갈증을 풀어낸 느낌이에요."

    처음에 김옥빈은 여성의 신체적 특징을 살린 민첩하고 재빠른 액션 장면 위주로 가지 않을까 생각했었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정병길 감독은 남성끼리 붙는 느낌의 거친 합을 원했다고 한다. 어쨌든 김옥빈은 아주 위험한 몇 장면을 제외하고는 95% 정도에 달하는 액션 분량을 스스로 소화해냈다.

    "여성의 장점을 살리거나 특화된 느낌이 아니라 남자들끼리 하는 액션이더라고요. 감독님도 여기서 하고 싶은 걸 다 풀려고 하는 구나 느꼈죠. (웃음) 1인칭 오프닝 시퀀스에서 시점 전환되기 전 장면, 버스를 뒤집거나, 직접 유리창을 뚫고 들어가거나 오토바이타고 한강을 나르는 장면. 이런 거 제외하고는 제가 거의 다했어요. 얼굴 나오는 건 다른 사람 쓸 수가 없으니 무조건 저일 수밖에 없고요. 그런 장면이 많아서 감독님한테 너무한다고 그랬어요. (웃음) 안전 장치를 잘했기 때문에 위험하지 않았고, 두려움은 별로 없었어요."

    영화 '악녀' 스틸컷. (사진=NEW 제공)

     

    '액션'은 결국 '몸으로 하는 대화'다. 홀로 낯선 장르의 영화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친한 사이인 배우 신하균이 마지막 촬영을 마쳤을 때는 외로운 마음에 붙잡기도 했다고 한다.

    "혼자 무엇인가 이끈다는 느낌이 좀 외롭더라고요. 현장에 나가면 동료 배우도 없고, 저 혼자 촬영하면서 상대와 감정을 주고 받는 것도 없이 혼자 대사하고 그랬으니까요. (신)하균 오빠는 워낙 저랑 어릴 때부터 동료라서 제가 너무 의지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빨리 자기 분량 끝내고 가길래 마지막에는 막 붙잡았어요. 난 무슨 재미로 촬영하냐고. 그랬더니 '성준이 있잖아' 이러더라고요."

    숙희의 인생을 뒤바꾼 남자들은 총 세 명이다. 첫 번째는 아버지, 두 번째는 숙희를 킬러로 키워낸 중상(신하균 분), 마지막이 국정원 요원 현수(성준 분)인데 극중 현수와 숙희는 설레는 사랑의 감정을 나눈다.

    "성준이는 굉장히 에너지 넘치는 친구고, 참 긍정적이면서도 엉뚱해요. 후배니까 '춥지는 않냐. 괜찮냐'라고 물어보면 '전 추워 본 적이 없다. 힘들어 본 적이 없다'고 그러면서 사람을 웃겨요. 애드리브도 많이 준비해와서 이렇게 해도 되는지 조언도 구하고, 감정적으로 맞지 않는 거 같다면서 전부 얘기를 해요. 두 번째 촬영이었나 자기 옷에 커피를 쏟았는데 캐릭터랑 어울리는 거 같다면서 그대로 두겠다고 그러더라고요. 귀여운 친구죠."

    '악녀'는 김옥빈에게 8년 만의 칸국제영화제(이하 칸영화제) 초청을 안긴 영화이기도 하다. 마침 올해 심사위원이었던 박찬욱 감독이 '악녀' 시사회에 참석했고, 김옥빈은 남다른 소회를 느꼈다. '악녀' 감독과 배우들보다 하루 먼저 도착해서 박찬욱 감독과 즐겁게 술자리를 가지기도 했단다.

    "이번에는 박찬욱 감독님이 다른 감독님과 멀리서 박수쳐주고 계시더라고요. (신)하균이도 왔으면 참 좋았겠다고 말씀하셨던 게 기억나네요. 아마 하균 오빠와 함께 보고 싶었던 것 같아요. 감독님이 심사위원으로, 제가 다른 작품의 영화 배우로 서게 되니까 느낌이 좀 말할 수 없을 정도로 이상했어요."

    배우 김옥빈이 서울 종로구 팔판동 한 카페에서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4박 5일의 칸영화제 일정에서 제일 아쉬운 것은 그가 좋아하는 배우 제시카 차스테인을 만나지 못한 일이다. 얘기를 들어보니 김옥빈은 단순히 '좋아한다'를 넘어서 제시카 차스테인의 모든 작품을 섭렵한 팬이었다.

    "박찬욱 감독님이 심사위원이니까 제시카 차스테인 보고 싶은데 어떻게 못 만나냐고
    물어봤어요. 그러니까 경쟁작 심사 때문에 관람하는데 거기 오라고 하더라고요. 문제는 제 짐이 도착을 안해서 갈 수가 없었어요. 너무 한이 됐죠. 일생일대의 기회였는데. 제 마음을 전달해달라고 했더니 뉴욕에 오면 차 한 잔하게 연락 달라고 번호를 전해주셨어요. 원래 한 사람에 꽂히면 다 모으고 찾아보는데 정말 작은 체구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이 너무 좋고, 여러 가지 얼굴이 있는 배우라고 생각해요. 그 힘이 정말 탄탄하더라고요."

    김옥빈에게 '악녀'의 장르는 성장 드라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물론 힘든 작업이었지만 고비를 한 번 넘기니 '적응'을 했다. 내심 같은 여성 배우들이 더욱 다양한 장르에서 활약하길 바라는 마음도 갖고 있다.

    "제게 '악녀'는 성장 드라마인 것 같아요. 혼자서 소화할 때는 어떻게 인내하고 집중해야 하는지 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육체적, 심리적 고통이 한꺼번에 왔는데 처음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가 끝나고나니 또 이런 상태가 와도 우습게 넘길 수 있겠더라고요. 이제 현장에 가면 저보다 나이 많은 분들이 5명 정도 밖에 안돼요. 서운하지 않다면 거짓말이지만 모범을 보여야 하는 그런 나이가 된 거죠. 경험도 쌓이고 하다 보니 오지랖도 넓어지고, 좀 더 지켜볼 수 있는 것 같아요. 여성 캐릭터도 액션 장르에 무리가 없다는 증명을 했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해냈다면 그 다음에 더 쉽게 나올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는 하고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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