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가 지난 4일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들의 질의를 받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지난 4일 열린 유영민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에 대한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뜬금없는 '진화론이냐 창조론이냐' 논쟁이 일었다. 이는 과학계 내부의 복잡다단한 논쟁을 종교와 과학의 대립으로 변질·단순화시켜, 후보자에게 흠집을 내려는 의도가 다분했다는 비판을 낳고 있다.
유영민 장관 후보자는 이날 '창조과학에 대한 입장을 밝혀달라'는 국민의당 최명길 의원의 말에 "창조과학은 비과학, 반과학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답했다.
창조과학은 신이 모든 생물종을 만들어졌다는 것이 과학·역사적인 사실로 입증됐다는 주장으로, 과학계는 물론 주류 신학계에서도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이어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 출신 국민의당 오세정 의원은 "창조과학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진화론에 대한 입장은 어떠냐"고 질문했다. 진화론의 대척점에 '창조론'이 아닌 '창조과학'을 둠으로써 논점을 흐린 셈이다. 유 후보자는 "여러 의견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으나, 장관 후보자로서 입장을 밝히는 것이 적절치 않은 것 같다"고 대응했다.
이에 오 의원이 재차 답변을 요구했으나 유 후보자는 "미래부 장관 후보로서 답변을 하는 것이 또 다른 논란을 일으킬 수 있다"며 답변을 거부했고, 오 의원은 "교과서에도 진화론이 실려 있는데 가르치면 안 되는 것이냐. 과학기술을 책임지는 부처의 장관이 이런 답변을 한 것은 굉장히 의외"라고 말했다.
결국 유 후보자는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김성수 의원이 입장 표명을 요구한 뒤에야 "(앞선 질문이) 진화론과 창조론 중 어느 것을 믿느냐는 것으로 내용을 오해했다. 종교적으로나 과학적으로나 굉장히 예민한 문제여서 그렇게 답했다"며 "진화론만 질문하신다고 하면, 과학적 근거에 기반하고 있다는 점에 대해 전적으로 동의한다. 교과서에 실리는 것에 반대가 없다"고 밝혔다.
이를 접한 한 신학자는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창조과학'과 '창조론'은 엄연히 다르다"고 해당 국회의원들의 질문에 의구심을 표하며 글을 이었다.
"저는 개인적으로 창조론자이지만 창조과학에는 많은 의구심을 가지고 있는 일인입니다. 제가 보기에는 이 청문회장에서 그 차이를 구분할 수 있었던 분은 유영민 후보자 한 분이었던 것 같군요. 그나저나 반드시 과학은 진화론 위에 서 있어야 한다는 생각도 일종의 맹신이고 또 다른 형태의 종교가 될 수도 있는데 말입니다. 오늘 청문회의 이 장면은 얼핏 보면 갈릴레오 갈릴레이에게 천동설을 인정하라고 강요했던 17세기 종교재판의 패러디 같기도 하군요."
또 다른 페이스북 사용자는 "'진화론과 창조론 중 어느 것을 믿느냐?'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인사청문회에서 나온 질문이다. 그것도 서울대 자연과학대 학장 출신의 입에서 말이다"라고 운을 뗐다.
"진화론, 창조론은 모두 이론이다. 즉 다른 이론이 나와 뒤집을 수 있다면 새로운 이론이 주효하게 된다는 뜻이다. 지동설이 천동설을 뒤집었듯이 상대성이론의 근간인 빛의 속도를 초월하는 물질이 나오면 상대성이론은 부정되거나 사장되어야 한다. 어느 이론을 믿느냐? 질문이 참으로 개탄스럽다. 종교를 이용해 정치적 수단으로 삼으려는 정치인답다. 그분이야 말로 과학을 논할 자격이 없다."
◇ "진화론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논쟁거리 다분해"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맹성렬 교수(사진=자료사진/노컷뉴스)
스스로를 '사이비 비주류 과학자'라 칭하지만, SCI(과학기술인용색인)급 논문 50여 편을 발표하고 국제특허 30여 건을 출원하면서 명성을 쌓은 우석대 전기전자공학과 맹성렬 교수는, 6일 CBS노컷뉴스에 "사실 진화론 역시 문제가 있는 부분이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 '론'으로 남아 있지 않나"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국민의당 의원들의 질문은) 학문적인 체계 안에서 창조론과 진화론의 논쟁 프레임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이렇듯 논쟁을 만들려는 프레임에서 벗어나려면 유 후보자가 한 쪽을 버리고 단순하게 갔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아 논란이 된 것이다. 진화론도 종류가 다양하다. 예를 들어 (책 '이기적 유전자'로 유명한) 리처드 도킨스처럼 아주 극단적인 주장을 하는 이들이 있다. 진화론도 잘 들여다보면 처음에 다윈이 주창한 이후로 꾸준히 변해 왔다. '신다윈주의'가 그 하나다."
맹 교수는 "결국 진화론도 계속 진화하고 있다"며 "유 후보자가 대답을 흐린 데는 아마도 최근 양자론을 접목시킨 '지적 설계론'을 주장하는 학자들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고 추론했다.
"진화론의 근간을 이루는 자연선택설에는 큰 문제점이 있다, 확률적으로 우리가 알고 이해하는 것보다 훨씬 많은 우연에 우연에 우연을 거듭해야만, 거의 기적적인 가정을 해야만 (생명 현상이) 풀린다는 것이다.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 가운데에도 소위 주류가 아닌 쪽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는 "대표적인 예가 아인슈타인의 후계자로 꼽히는 물리학자 파울리"라며 말을 이었다.
"파울리의 가장 큰 업적이 '배타원리'인데, 우주에 어떠한 규칙이 있어 우연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고 보는 것이다. 결국 우연에 우연을 거듭한 결과가 아니라, 무언가 지적이고 오묘한 설계에 바탕을 두고 모든 것이 진행된다는 이야기다. '조셉슨 효과'로 노벨상을 탄 조셉슨의 경우도 사실상 '지적 설계론'을 지지한다. 생명체가 완전한 우연에 의해 진화되고 있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맹 교수는 "과학계에서는 진화론의 경우 여전히 주류 생물학자들의 입김이 센데, 주로 물리학자들이 이에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도 번역서로 나온 폴 데이비스의 '우주의 청사진'을 참고하면 좋을 것"이라고 전했다.
이어 "생명 현상을 단순히 진화론 프레임이 아니라, 양자역학적인 프레임 등 얼마든지 다른 관점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가 본격적으로 나온 것이 불과 10년 안팎"이라며 "이는 아주 따끈따끈한 이슈로서 흥미로운 논쟁거리로 부각되고 있고, 그래야만 할 때라고 본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