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오후 4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홀에서 레드벨벳의 첫 단독 콘서트 '레드 룸'(Red Room)의 마지막 공연이 열렸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레드벨벳 웬디, 예리, 조이, 아이린, 슬기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근래 본 가장 신나는 공연이었다. '대세' 걸그룹 레드벨벳(아이린·슬기·웬디·조이·예리)은 20일 오후 4시 서울 송파구 방이동 올림픽홀에서 열린 첫 단독 콘서트 '레드 룸'(Red Room)의 마지막 공연에서 그야말로 '남은 힘'을 모두 쏟아부었다.
공연 말미 알게 된 '레드벨벳 흥을 돋구자!'라는 구호는 더할 것도 뺄 것도 없이 레드벨벳에게 꼭 어울리는 말이었다. 지난 1일 데뷔 3주년을 갓 지난 레드벨벳은 물 만난 고기처럼 2시간 30분 여의 공연을 가뿐하게 마쳤다.
◇ 분명한 콘셉트 : 레드벨벳의 방에 놀러오세요!'레드 룸'이라는 콘서트 제목은 지난 18일부터 3일 간 이어진 레드벨벳 단독 콘서트를 관통한다. 예리가 집 안 곳곳에서 목격되는 수상한 존재(아이린·슬기·웬디·조이)를 목격하는 영상으로 문을 연 콘서트는 오프닝부터 평범하지 않았다.
다른 사람 눈에는 보이지 않는 존재를 혼자만 보는 예리의 시점을 강조하고, 예리 방문을 두드리는 위협적인 소리를 곁들인 연출은 단연 돋보였다. '아이스크림 케이크'(Ice Cream Cake), '덤덤'(Dumb Dumb), '러시안 룰렛'(Russian Roulette) 등 주요 활동곡에서 일관되게 가져온 특유의 기괴함을 담아냈기 때문이다.
멤버들이 위에 올라가서 노래를 부르거나, 노래를 마치고 나서 안으로 들어가는 등 침대를 주로 활용하는 전반부를 지나면, '공간'은 점점 확장된다. 네일을 하고 머리 손질과 메이크업을 받는 미용실이었다가, 둥그렇게 앉아 캠프파이어를 하는 바닷가가 되는 식이다. "제법 넓죠? 돈을 좀 많이 썼어요"라는 예리의 능청스러운 설명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예리의 집에서 다섯 멤버들이 즐거운 시간을 보낸다는 콘셉트는 나름대로의 스토리텔링도 가지고 있다. 초반에 어쩐지 미심쩍은 불청객으로 그려지던 네 멤버들이 예리와 가까워지는 과정이 차근차근 진행된다.
왼쪽부터 레드벨벳 슬기, 아이린, 웬디, 예리, 조이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예리는 성에 갇힌 라푼젤처럼 긴 밧줄을 스스로 내밀어 네 멤버들을 방에 들이고, 셀카를 찍고 수다를 떨고 웃으면서 밤새도록 시간을 보낸다. 이후에는 같은 미용실에 앉아 서로에게 귓속말을 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다는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고, 급기야 다섯 명은 한 침대에서 잠들기도 한다.
아기자기하고 소녀다운 방을 구현하고, 드라이기, 큰 손거울, 꼬불꼬불한 전화줄이 있는 전화기, 미용실용 잡지 등 상황에 맞는 소품을 적극 활용하면서 동화스러운 분위기를 꽤 자연스럽게 이끌고 가는 점도 매력이다.
◇ 좋은 노래 : 2시간을 꽉 채운 '노래 부자'들 레드벨벳은 2014년 8월 1일 싱글 '행복'(Happiness)으로 데뷔한 이후 미니앨범 5장, 정규 1장 등을 발매하며 꾸준히 활동해 왔다. '행복', '아이스크림 케이크', '덤덤', '러시안 룰렛', '루키', '빨간 맛' 등 대중에게도 친숙한 타이틀곡뿐 아니라 그간 잘 선보이지 못했던 다채로운 수록곡까지 더해져 2시간 넘는 공연을 가득 채웠다.
타 공연에 비해 다소 길었지만 오프닝부터 정체성이 뚜렷했다. '레드 드레스'(Red Dress), '해필리 에버 애프터'(Happily Ever After)', '루키', '허프 앤 퍼프'(Huff n Puff), '레이디스 룸'(Lady's Room), '톡 투 미'(Talk To Me), '돈 츄 웨이트 노 모어'(Don't U Wait No More), '오 보이'(Oh Boy), '덤덤'까지 동화에서 콘셉트를 따 온 곡의 메들리로 통일성에 신경 쓴 흔적이 엿보인 까닭이다.
첫 콘서트를 맞은 멤버들의 설레고 들뜬 소감 이후에는 '바다가 들려', '주'(Zoo) 등 지난 7월 9일 발매된 5번째 미니앨범 '더 레드 서머'(The Red Summer)의 수록곡이 잇따라 나왔다.
이날 콘서트에 앞서 열린 기자간담회에서는 밝고 열정적인 '레드' 콘셉트로 주로 활동해, 여성스러움과 차분함을 강조한 '벨벳' 콘셉트를 자주 볼 수 없다는 아쉬움 섞인 질문이 나왔다. 이를 알고 있었다는 듯, 중반부에는 '벨벳' 콘셉트의 무대가 한데 엮여 나왔다.
레드벨벳 멤버들이 '벨벳' 콘셉트의 '비 내추럴'(Be Natural) 무대의상을 입고 있는 모습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웬디는 미니 4집 수록곡 '마지막 사랑'으로 솔로무대를 펼쳤고, 아이린·슬기·조이·예리는 2번째 싱글 '비 내추럴'(Be Natural)에 맞춰 각자 다른 장르의 솔로 댄스를 선보여 눈길을 끌었다. 레드벨벳은 '쿨 핫 스윗 러브'(Cool Hot Sweet Love), '오토매틱'(Automatic), '7월 7일' 등 안무보다는 보컬에 중점을 둔 정적인 노래들도 무리 없이 소화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공연 막바지는 미니 5집 수록곡 '유 베터 노'(You Better Know)를 제외하고 레드벨벳의 대표적인 히트곡 3곡으로 꾸려졌다. '아이스크림 케이크', '러시안 룰렛', '빨간 맛' 등 레드벨벳의 빛나는 '현재'를 만든 곡이었기에 무대의 열기는 더 고조됐다.
◇ 활기 : 생동감 넘치는 콘서트로 관객의 흥을 돋우다분명한 콘셉트와 좋은 노래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레드 룸' 공연을 완성시킨 건 멤버들의 '활기'였다. 레드벨벳은 건강한 에너지를 발산하며 무대를 휘저었다.
레드벨벳은 공연장의 여러 무대를 고루 활용했다. 당초 세트리스트에는 없었지만, 이번 앨범 수록곡 가운데 팬들에게 특히 큰 사랑을 받았고 멤버들도 꼭 공연하기를 원해 마지막에 들어갔다는 '주'는 2층 앞 무대에서 진행됐다.
뮤지컬 같은 구성의 몰입을 깨지 않기 위해 멤버들은 무대에서도 표정연기를 하는 데 집중하는가 하면, 몰아치는 진행에도 팬들과 좀 더 소통하기 위해 1~2층을 돌며 악수를 하고 눈을 맞췄으며, 매 무대에 열정을 쏟았다.
레드벨벳의 오프닝 무대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
모든 멤버들이 최선을 다했지만 이날 공연에서 가장 기분 좋은 기운을 뿜어냈던 멤버는 조이였다. 기자간담회 때부터 다양한 질문에 구체적인 답변을 내놨던 조이는, 자신이 느끼는 흥을 관객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했다.
팬들의 앵콜 요청이 쇄도하자 레드벨벳은 '쿨 월드'(Cool World), '행복' 두 곡을 들고 다시 무대에 등장했다. 레드벨벳을 세상에 나올 수 있게 해 준 데뷔곡 '행복' 무대는 엄청난 소리의 폭죽 등 그 어느 때보다 화려한 효과가 뒤따랐다.
레드벨벳은 첫 단독 콘서트를 3일 간 무사히 치른 소감을 밝히며 수많은 이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웬디는 "첫 날은 첫 날이라서 떨렸고, 둘째날은 조금 즐겼지만 셋째날은 마지막날이라서 뭔가 조금 다른 느낌의 긴장감을 느꼈다"면서 "많은 분들이 없었다면 이 콘서트를 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한 "엄마아빠(20일 공연에는 웬디 부모님이 왔다)가 계시고 정말 좋은 스태프 분들과 우리 팬들이 있어서 저희가 여기까지 온 것 같다. 콘서트를 하면서 정말 무대에서 행복하다고 느낀 것 같다 더. 팬들로 꽉 찬 이런 큰 공연장에서 저희들이 무대를 딱 하니까 너무너무 행복하고 감사하다"고 말했다.
슬기는 "3일 동안 저희가 (공연을) 하면서 뭔가 되게 책임감이 생긴 것 같다. 여러분들을 책임져야겠다는 그런 책임감?"이라며 "제가 3일 동안 되게 열심히 살았구나 하는 느낌을 받게 해 주셔서 너무 감사드린다. 오늘 굉장히 행복한 날이다. 고맙다"고 밝혔다.
아이린은 "첫 콘서트라서 떨리기도 했지만 다 저희 레드벨벳을 응원해 주시러 온 분들이라 더 힘이 났고 더 행복했다, 3일 동안"이라며 "첫 콘서트라서 많이 서툴기도 했고 부족한 점도 있었는데 그래도 여러분들 생각하면서 열심히 했다. 오늘 저희도 너무너무 행복했으니까 저희 공연 본 여러분들도 행복했다는 감정이 들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또, "안 보이는 곳에서 (공연을 위해 노력)해 주시는 분들에게도 너무 감사드린다"고 덧붙였다.
예리는 "(오늘) 공연 시작할 때 침대에서 준비하고 있는데 이 순간을 기억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팬들과) 눈도 되게 마주치려고 노력을 많이 했고. 항상 콘서트를 하면 끝나고 나면 되게 많이 피곤한데 이상하게 잠이 안 온다. 이 공연에서 (제) 눈으로 본 장면들이 많이 생각나서"라며 "오늘 공연에서도 연습생 시작했던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지금까지 (기억들이) 쭈루룩 지나갔다. 앞으로도 이런 좋은, 제가 좋아하는 여러분들의 모습을 많이 같이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조이는 "저는 콘서트를 하면서 이번에 온 인연들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그냥 지나칠 수도 있는 사람들인데 한 마음 한 뜻으로 같은 공간에 모여 있다는 게 소름돋을 정도로 너무 감사하다. 다섯 명이서 무대에 있지만 무대를 꾸미기까지 정말 많은 분들이 고생하셨겠죠. 내가 인복이 좋구나 싶기도 하고. 제가 소속되어 있는 이 곳이 정말 행복한 곳이라고 느꼈다"고 밝혔다.
이어, "이번 기회가 저에게는 굉장히 소중했고 많이 와닿았기 때문에 너무너무 아쉽다"며 "열아홉살에 데뷔해서 제 스스로도 성장했다고 느껴요. 여러분들도 저희 기특하시죠? 네 앞으로도 더 성장하는 모습 보여드릴 테니까 계속 응원해 주시고 기대해주셨으면 좋겠어요. 알겠죠?"라고 말을 맺었다.
첫 단독 콘서트에서 3일 동안 총 1만 1천여 명의 관객을 동원해 성황을 이룬 레드벨벳은 오는 26일 일본 도쿄 아지노모토 스타디움에서 개최되는 '에이네이션 2017'에 참석해 무대를 펼칠 예정이다.
레드벨벳이 앵콜 무대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모습 (사진=SM엔터테인먼트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