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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자의 기억법'은 어떻게 '원작영화' 한계 넘어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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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살인자의 기억법'은 어떻게 '원작영화' 한계 넘어섰나

    [노컷 리뷰] 원작의 기본틀은 유지…인물 설정은 새롭게

    이 기사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돼 있습니다. [편집자 주]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배우 설경구의, 설경구에 의한, 설경구를 위한.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을 한 문장으로 요약한다면 이만큼 적절한 말이 없다. 영화는 설경구가 가진 모든 잠재력을 끌어내는데 성공했다. 더 놀라운 지점은 원작 영화들이 어쩔 수 없이 가진 한계를 슬기롭게 돌파했다는 것이다.

    김영하 작가의 베스트셀러를 원작으로 했지만 영화는 일단 중심 캐릭터인 연쇄살인범 김병수(설경구 분)부터 그 성격이 달라졌다. 병수가 벌인 살인사건들에 그 나름대로의 이유를 부여하고, 병수가 딸 은희에게 가진 부성애를 극대화시켰다. 소설 속에서 소시오패스 살인마였던 병수와 달리 어느 정도의 인간미가 가미된 셈이다.

    '살인자의 기억법'이 다른 스릴러물과 차별성을 가지게 된 이유는 '알츠하이머' 소재의 힘이 컸다. 시간이 흐를 수록 병수의 기억은 끊임없이 왜곡에 왜곡을 거친다. 어느 것이 현실이고, 어느 것이 병수의 상상인지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다. 기억의 왜곡은 없는 사건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상상 속의 인물을 구현하기도 한다.

    유일한 단서는 병수가 가진 녹음기. 병수는 자신이 정상적으로 상황을 인지할 때, 이 녹음기에 자신이 의심하는 또 다른 살인자이자 경찰인 민태주(김남길 분)에 대한 진실을 심어 놓는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여기에서 영화는 소설과 또 한 번 다른 길을 걷는다. 소설 속 민태주는 진짜 살인자가 아닌, 병수가 저지른 과거의 살인사건들을 뒤쫓는 형사이지만 영화 속 민태주는 병수의 알츠하이머 증세를 이용해 은희를 죽이기 위해 접근하는 살인자다. 그는 어머니에게 학대 당한 트라우마로 무고한 여성들을 연쇄적으로 죽인다.

    젊은 살인범과 알츠하이머에 걸린 노인 살인범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고 옥죄어 들어가는 과정 속에서 영화는 성공적으로 긴장어린 몰입감을 확보한다. 얼핏 보면 '알츠하이머'라는 약점을 가진 병수가 패배할 것처럼 보이지만 그는 끈질긴 생명력과 본능적인 감각으로 민태주와의 대결을 포기하지 않는다.

    영화의 반전은 병수가 보여준 '부성애'에 있다. 그가 죽음을 불사하고 지켜내려던 은희가 친딸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피는 이어져 있지 않지만 '은희'는 그에게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게 한 소중한 존재였다. 병수는 자신을 두고 외도한 아내, 즉 은희의 모친을 죽이지만 은희를 딸로 받아들이면서 살인을 멈춘다.

    소설 속 병수는 알츠하이머로 모든 것을 왜곡시킨다. 생판 남인 자원봉사자 은희를 딸로 착각하고, 자신을 의심하는 형사 민태주를 또 다른 살인자라고 생각한다. 병수의 시점을 따라가는 독자들은 모든 일들이 병수가 걸린 알츠하이머 증상에 불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그러나 영화 속 병수는 현실과 망상의 경계 속을 힘겹게 넘나들며 혼란스러운 기억을 거슬러 올라가 진실을 추적한다. 얼핏 보면 민태주와의 싸움이라기보다는 기억을 잃어가는 병수 자신과의 절박한 싸움이다.

    설경구는 10㎏을 감량하며 어딘가 스산한 과거 연쇄살인범의 얼굴을 만들어냈다. 알츠하이머 증상이 나타날 때마다 떨리는 안면 근육과, 혼탁하면서도 형형한 눈빛은 병수 그 자체로 관객을 납득시킨다. 내레이션이 중심인 1인칭 연기는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며 괴로워하는 병수의 심리상태를 섬세하게 펼쳐놓는다. 원작과 전혀 다른 인물인 것은 차치하더라도 설경구는 '김병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빚어내 독보적인 기량을 보여준다.

    영화 '살인자의 기억법' 스틸컷. (사진=쇼박스 제공)

     

    살을 찌워 악역에 도전한 김남길은 천연덕스러우면서도 섬뜩하게 살인마 민태주 역을 소화해냈다. 온전히 정체를 드러내기 전까지 그는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들면서 관객들을 혼란스럽게 한다. 은희 역의 설현은 후반으로 갈수록 어두운 분위기를 살려내면서 스릴러 장르에서의 가능성을 증명해보였다.

    연출을 맡은 원신연 감독은 대나무숲, 병수의 집, 숲 속의 집 등 상징적이면서도 폐쇄된 공간을 다채롭게 이용해 비밀스러운 감각을 영화에 더했다. 현실과 완전히 유리된 것 같은 이들 공간 속에서 사건이 벌어지게 되면서 영화가 가진 비현실성을 설득력 있게 만들어낸다.

    원작 영화들이 대체로 흥행하지 못한 것과 달리, '살인자의 기억법'은 오히려 원작의 틀을 조금씩 벗어나 영화 그 자체로 인정받게 됐다. 큰 구조는 원작을 따르되, 인물
    설정을 자연스럽게 바꿔 역동적인 대결구도를 형성, 액션, 심리전 등 영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강점을 살렸다. 똑똑한 방식을 택한 '살인자의 기억법'이 어디까지 관객들의 호응을 얻을 수 있을지 지켜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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