탑배너 닫기

노컷뉴스

유시민의 주례사…"나 이거 잘해서 안 쫓겨나요"

문화 일반

    유시민의 주례사…"나 이거 잘해서 안 쫓겨나요"

    "사랑이 있던 자리를 친숙함에게 빼앗기면 안 돼요"

    작가 유시민(사진=JTBC 제공)

     

    한 온라인 커뮤니티에 소개된 작가 유시민의 주례사가 누리꾼들 사이에서 폭넓게 회자되고 있다.

    지난 1일 MLB파크에 '후기 유시민의 주례사'라는 글을 올린 한 누리꾼은 "주말에 후배 결혼식에 다녀왔는데요. 주례가 무려 유시민 선생이었습니다"라며 "후배가 정의당 의원보좌관 일을 했었고, 신부도 정의당 당직자인지라, 그 인연으로 주례로 모신 듯 하더군요"라고 운을 뗐다.

    "평소 같았으면 부조금 내고 신랑 또는 신부에게 인사하고 바로 밥 먹으러 갔을 텐데요. 오직 주례사를 듣기 위해 와이프와 함께 앞좌석에 자리를 잡고 앉았습니다(그러고보니 결혼식 가서 주례사 다 들어본 게 거의 몇 년 만인듯 합니다). 기대대로 쉽고 명징한 문장으로 구성된 주례사였는데, 그 중 인상적이었던 부분을 불펜(게시판)에도 올려볼까 합니다."

    해당 누리꾼에 따르면, 이날 유시민은 "두 사람 오래 준비해 왔고, 또 서로 잘 아는 부부이기는 하지만, 그래도 먼저 혼인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서 몇 가지 팁을 드릴까 합니다"라며 주례사를 시작했다.

    "첫 번째는 '있는 그대로 사랑하라'. 노회찬 의원님 어록인데요. 혼인 생활을 가리켜서 '차이를 다루는 예술이다', 이렇게 늘 말씀하십니다. 제가 약간 보충할께요. '혼인 생활은 차이와 더불어 변화를 다루는 예술이다.' 서로 잘 알고 사랑해서 부부가 되었지만, 함께 잠들고 또 아침에 함께 눈 뜨고 하다보면 연애할 때는 안 보이던 것을 보게 될 수 있습니다. 또 살다보면 그 전에 없던 게 생길 수도 있고, 바뀌기도 합니다."

    유시민은 "그럴 때 좋은 점만 보고 사랑하는데, 그건 누구나 다 하는 겁니다. 부부는 안 그런 것까지도 개성으로 인정하고, 감싸 안고, 포용하고, 변해가는 모습까지도 받아들여주고, 그러니까 부부죠"라며 "좋은 거 좋아해 주고 안 좋은 거 싫어하는 건 그냥 남들끼리 사는 거죠. 이런 차이와 변화에 대해서, 그걸 꼭 나쁘다고 생각하지 말구요. 그것까지도 껴안아 주십시오"라고 당부했다.

    ◇ "결혼 생활은 끊임없는 투쟁…되게 고리타분하지만 '역지사지'"

    (사진=MLB파크 화면 갈무리)

     

    유시민은 "두 번째는 오늘처럼 몸과 마음이 다 매력 있는 연인이 될 수 있도록 서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라며 "부부가 된 후에도 사랑을 표현하는 일을 멈추지 말아야 해요"라고 전했다.

    "연애할 때는 뭐 이벤트도 하고, 잘해보려고 하다가, 부부가 되고 나면 내 사람, 혼인 신고하면 '지가 어디 가겠어?' '말 안 해도 내 마음 알지?', 이거 안 돼요. 우리 마음이라는 것은 안 보이기 때문에 어떤 형태로든 표현하지 않으면 없는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부부는 생물학적 유전자를 공유하지 않는 가족입니다. 늘 사랑을 확인해야 해요. 남편은 되도록 멋진 남자여야 되고요, 아내는 매력 있는 여자여야 해요."

    이어 "살다보면 친숙해지는데, 친숙함도 좋지만, 사랑이 있던 자리를 친숙함에게 빼앗기면 안 돼요"라며 "그래서 결혼생활은 끊임없는 투쟁이라고도 할 수 있어요"라고 덧붙였다.

    "친숙함과의 투쟁. 두 사람이 서로 언젠지는 모르지만, 호감의 눈빛을 처음으로 맞추었던 순간, 그리고 그런 것들을 서로 알게 했던 순간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거 없이는 오늘 이 자리가 없으니까요. 그 때를 잊지 말고 늘 그런 눈빛, 그런 마음, 그런 감정을 매일 매일 들게 할 수 있도록 서로에게 멋진 연인으로 남으시기 바랍니다."

    유시민은 "세 번째는, 되게 고리타분한 주례사의 주제인데요, 역지사지.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는 겁니다"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살다보면 다투는 날이 오게 돼요. 안 오면 제일 좋지만, 올 수도 있죠. 또는 오게 됩니다. 그럴 때, 그 문제를 이야기하기 전에, 먼저 입장을 바꿔놓고 생각하는 시간을 꼭 가지기 바랍니다. 바꿔놓고 생각하면 '왜 저러지?' 하던 것이 '뭐 그럴 수도 있겠네', 이렇게 될 수 있어요. '뭐 그럴 수도 있겠네' 하고 한번 생각하고 대화를 하면, 훨씬 부드러워지죠."

    특히 "그래서 무슨 문제가 있을 때는 대화를 해야 하는데, 곧바로 대화를 시작하지 말고 한번 입장을 바꿔서 아내의 입장에서, 남편의 입장에서 한번 생각해본 다음에 대화를 시작하는 겁니다"라며 "그러면 싸울 일도 줄어들고요. 싸움이 열정으로 가지 않겠고요. 빨리 끝날 수 있습니다. 나 이거 잘해서 쫓겨나지 않고, 30년째 남편으로서 잘 살고 있습니다. 참고하시기 바랍니다"라고 강조했다.

    이 글을 올린 누리꾼은 "일차적으로는 신랑과 신부에게 하시는 말씀이셨지만, 결혼 3년차인 저희 부부에게도 느끼게 하는 바가 많은 이야기더군요. 저와 와이프 모두,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끄덕하면서 들었습니다"라며 "담론을 다루는 지식인의 모습에만 익숙해 있다가, 결혼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하시는 모습이 새로우면서도 재미있었습니다"라고 전했다.

    이 시각 주요뉴스


    실시간 랭킹 뉴스

    노컷영상

    노컷포토

    오늘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