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정보원이 청와대에 특수활동비를 상납한 의혹과 관련해 박근혜 정부 전 국정원장 3명이 모두 검찰에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됐다. 왼쪽부터 남재준, 이병호, 이병기 전 국정원장. (사진=황진환 기자)
박근혜 정권 당시 국가정보원장 3명의 운명이 엇갈렸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를 받는 이들 가운데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은 구속됐고, 이병호 전 원장만 구속을 피했다.
이들의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을 담당한 서울중앙지법 권순호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17일 남재준‧이병기 전 원장에 대해 "범행을 의심할 상당한 이유가 있고 중요 부분에 관해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어 구속의 사유와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했다.
이들 두 명은 영장심사에서 "청와대가 돈을 달라고 요구했으나 범죄라고 생각하지 않는다"는 취지로 진술한 것으로 알려졌다.
남 전 원장은 또 "청와대가 먼저 달라고 하니 '청와대 돈 일수도 있겠다'고 생각해서 줬다"며 특활비 상납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법리적으로 범죄가 되지 않는다는 식으로 혐의를 부인한 것으로 전해졌다.
반면에 박근혜 전 대통령을 '윗선'으로 인정하며 수사에 협조적인 태도를 보인 이병호 전 원장의 구속영장은 기각됐다.
권 부장판사는 "주거와 가족, 수사 진척정도 및 증거관계 등을 종합하면 피의자에게 도망과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고 보기 어렵다"고 기각 이유를 밝혔다.
이 전 원장은 영장심사에서 "검찰 조사에서 누구에게 지시받았는지 말할 수 없다고 했지만 여기에선 이야기 하겠다"며 박 전 대통령을 지목했다고 알려졌다.
이들 3명의 전직 국정원장은 박근혜 정권 4년 동안 모두 40억원의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청와대에 상납한 혐의를 받고 있다.
이들은 개별적인 범죄 혐의도 받는다.
남 전 원장은 현대 측을 압박해 퇴직 경찰관 모임인 경우회에 20억원을 지원한 '관제데모' 혐의도 있다.
이병기 전 원장은 남 전 원장 재임 시절 월 5000만원이던 상납액을 월 1억원으로 늘리고, 이후 대통령 비서실장이 된 뒤에 국정월 특활비 상납 과정에 관여했다는 의심을 받는다.
이병호 전 원장에게는 '우병우라인'으로 지목된 추명호 전 국장을 통해 조윤선‧현기환 전 정무수석에게 월 500만원 상당의 특활비를 별도로 상납한 혐의도 적용됐다.
또 이 전 국정원장은 청와대가 지난해 4‧13 총선을 앞두고 실시한 '진박감별' 여론조사 비용 5억원을 대납한 혐의도 있다.
검찰은 이들의 혐의를 각각 추가로 수사하는 한편, 이병호 전 원장에 대한 구속영장 재청구를 검토할 전망이다. 또 이 과정에서 조윤선‧현기환 전 수석의 소환조사가 임박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검찰은 "나랏돈으로 제공한 뇌물을 사적으로 사용한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며 박 전 대통령을 겨누고 있다.
따라서 검찰이 조만간 박 전 대통령 상대로 특활비를 요구한 배경과 사용처를 확인하기 위한 직접수사에 나설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