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조덕제가 7일 오후 종로구 종로 2가에 위치한 피앤티스퀘어에서 여배우 성추행 논란과 관련 입장을 밝히는 기자회견을 갖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자료사진)
배우 조덕제와 여배우 A를 둘러싼 성추행 법적 공방이 점차 진흙탕 여론전으로 변질되고 있는 모양새다. 특히 사건의 피해자인 여배우 A에 대한 무분별한 보도와 인신공격이 정도를 넘어섰다는 지적이다. 새로운 의혹들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지만 이것이 과연 여론전을 통해 풀릴 수 있을지도 미지수다.
지난해 12월 1심에서 조덕제가 무죄 판결을 받은 이후, 여배우 A 측은 영화계 내 촬영이라는 명목 아래 이뤄지는 성추행 및 성폭력을 근절해야 한다는 입장의 기자회견을 열었고, 관련 단체들이 모여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이후 지난달 2심에서 조덕제가 유죄 판결을 받자 환영 기자회견을 열어 해당 사건이 영화계 내 연기적 관행으로 치부될 수 있는 성추행 문제에 경종을 울렸다고 밝혔다.
바로 이 시기, 여배우 A와 재판 중인 상대 남배우가 조덕제라는 것이 알려졌다. 조덕제는 언론 매체를 통해 자신의 실명을 공개했고 억울함을 표명하며 반격에 나섰다. 한 차례 가진 기자회견에서 조덕제가 주장한 바는 분명했다. 추행이 성립되는 강제성과 고의성을 부인하고, 사전 합의되지 않은 장면이었다는 여배우 A의 주장을 정면 반박했다.
조덕제는 전혀 추행을 의도해 연기한 적이 없으며 여배우 A 또한 사전에 이 같은 방식으로 촬영이 이뤄질 것을 인지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촬영 직후에도 여배우 A는
성적 수치심을 느낀 바에 대해 언급이 없었다고 이야기했다. 그러면서 영화 현장의 특수성이 반영되지 않은 재판 결과에 유감을 표했다.
최진봉 성공회대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일적으로 '갑을' 권력관계가 얽혀 있는 특수한 상황을 무시할 수 없다. 일반적인 상황도 아니고 일하다가 발생한 상황인데 여배우 입장에서는 즉각적으로 대응하지 못했을 가능성이 높다"며 "성추행이나 성폭력 사건에서 가해자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과 비슷한 맥락이다. 그러면 왜 당시에는 아무말 없이 자신을 따라왔느냐는 거다. 여성이 자신을 따라왔다고 해도, 그것이 합의되지 않은 추행이나 관계를 해도 좋다는 뜻은 아니다. 아직 여성의 성적 자기결정권에 대한 인식이 높지 않은 사회적 분위기를 방증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 영화계 전문인들 진상조사 가능성?현 시점에서 조덕제는 영화계 내 전문인들이 다시 한 번 사건을 판단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실제 영화계 내에서도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뿐이지 의견을 한 번 청취해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여론이 존재한다. 이런 영화인들의 여론을 반영한 영화진흥위원회 관계자가 조덕제와 접촉했지만 '비공개 만남' 조건이 지켜지지 않아 불발로 돌아간 상태다.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성춘일 변호사는 "증거 등의 확인절차는 2심에서 거의 끝나기 때문에 사실 대법원 상고심은 2심 판결과 거의 달라지지 않는 게 대부분이다. 여론에 많은 영향을 받느냐고 한다면 생각보다 그렇지 않다"고 대법원 상고심의 일반적인 속성을 밝혔다.
다만 대법원이 2심의 심리가 미진하다고 판단한다면 영화계 전문인들의 의견을 청취할 수도 있다. 법원에서는 어디까지나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관점에서 판단을 내리기
때문에 이런 절차를 거칠 가능성도 있다는 것이다.
성 변호사는 "법원에 계류 중인 사건은 국회의원들도 건드리지 않기 때문에 특정 단체에서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리지 않는 이상 조사는 힘드리라 본다. 조덕제 씨 입장에서는 대법원 판결 전에 영화계 전문인들의 진상 조사 결과가 나와야 아마 법정에서도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다. 그러니 계속해서 영화계에 조사를 촉구하며 여론을 움직이는 것"이라고 조덕제가 진상 조사를 촉구하는 이유를 분석했다.
영화계 내 성폭력 근절을 위해 11개 단체들이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유원정 기자/자료사진)
◇ 사법부는 유죄, 여론은 무죄?연예인이라는 직업적 특성상 법원의 심판보다 사회적 심판이 더 유효하게 작용하는 것 역시 무시할 수 없다. 법정 공방으로까지 번지지 않고, 무혐의 처리가 났지만 성추문에 휩싸였던 대다수 연예인들은 쉽게 복귀하지 못한다. 사건 조사 과정에서 밝혀진 사실만으로도 이미 대중의 외면을 받기 때문이다.
성공회대 최진봉 신문방송학과 교수는 "대법원 판결 결과와 상관없이 영화계 전문인들의 심판을 받겠다고 한 이유는 연예인이라는 직업적 특성도 작용했다고 본다. 법원에서 유죄 판결이 나와도 실제로는 '억울하다'는 입장을 견지하면서 대중에게 지지를받으면 활동을 계속할 수 있다"고 이야기했다.
이어 "아무리 영화계 전문인이 조사, 판단해도 성범죄 관련 혐의에서는 한계가 있다고 본다. 결국 성범죄의 유무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3자의 느낌이 아닌, 피해 당사자가 느끼는 성적 수치심이다. 상대방은 전혀 그럴 의도가 없었더라도 피해 당사자가 극심한 성적 수치심을 느낀다면 그것이 성추행이 되는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한 매체가 공개한 영화의 메이킹필름도 여론을 뒤바꿨다. 그 동안 중립적 위치에 있었던 연출자 장훈 감독을 사건의 중심으로 끌고 온 것이다. 장훈 감독은 해당 메이킹필름에서 조덕제에게 구체적인 워딩으로 '거친' 연기를 지시한다. 그러나 이 영상에는 사건의 주요 쟁점인 하의에 손을 넣었는지 여부는 나오지 않았다.
해당 메이킹필름은 이미 한 차례 법원에 증거로 제출된 바 있는 영상이다. 정밀한 분석이 이뤄졌지만 2심 재판부는 결국 조덕제에게 유죄 판결을 내렸다.
여배우 A 측의 변호사는 최근 이에 대해 "2심 재판부는 여배우가 인지하지 않은 상황에서 아무리 연기라고 해도 가슴이나 하체를 만진 행위를 추행이라고 봤고, 설사 조덕제가 감독의 지시를 따랐다 해도 얼굴 및 상체 부분에 집중된 촬영임을 조덕제가 인지하고 있어 그가 감독의 지시 범위를 넘어섰다고 봤다"고 법원의 판결 이유를 설명했다.
◇ 여배우 A 비방 기사 조작 의혹의 진실은?또 하나 여론을 뒤바꾼 요소는 다름아닌 여배우 A의 과거 행적에 대한 기사들이다. 여배우 A의 과거 행적을 문제 삼은 대중들이 그 증언을 '신뢰하기 어렵다'는 의견을 내놓고 있는 상황.
이에 앞서 우리는 2심 재판부의 조덕제 유죄 판결 이유를 살펴봐야 한다. 당시 재판부는 유죄 판결의 이유를 '여배우 A 증언의 일관성'으로 들었다. 여배우 A는 1심 재판부터 2심 재판까지 꾸준히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은 하체 추행이 어떻게 이뤄졌는지 '일관된' 이야기를 해왔다. 그런데 법정에서의 '일관성'은 똑같은 이야기를 반복적으로 주장하는 것과 다르다.
성 변호사는 "성폭력이나 성추행 사건의 경우, 피해 당사자 증언의 일관성이 중요하게 작용할 수밖에 없다. 만약 어떤 다른 의도를 가지고 거짓 고소를 했다면 인간이 기계가 아니기 때문에 이 진술이 계속해서 달라지게 된다. '일관성'을 인정했다는 것은 피해자 증언이 재판 진행 상황에 따라 바뀌지 않고, 여러 가지 증거에 비춰봤을 때 모순된 지점이 없게 납득이 된다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 과정에서 피해자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한 불필요한 인신 공격은 끊임없이 일어난다. 그러나 실제 재판에서 불리하게 작용하려면 이와 관련된 정확한 증거가 있어야 한다.
여배우 A의 경우에도 특정 언론 매체에서 최초 보도된 악의적 기사들로 형사 재판 중에 있다. 여배우 측은 '유명인인 백종원의 식당에 배탈이 났다며 600만 원을 요구하고, 대학 강의와 모델 활동에 제약이 생겨 따로 5천만 원의 손해가 났다고 주장했다'는 보도가 조덕제 측의 계획적인 비방이라고 이야기한다.
실제 해당 식당에서 식사 후, 병원에서 치료를 받아 그 비용을 청구한 적은 있지만 거액의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협박한 적은 없었다는 것이다.
해당 기사를 보도한 언론사 대표는 '피고인(기사를 작성한 기자)이 지인인 조덕제가 강제추행치상 등으로 형사재판을 받게 되자 조덕제를 돕기 위해 언론기관에 취업한 후 기사를 작성해 재판부에 증거로 제출하게 하려고 했다'고 진정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최진봉 교수는 "결국 이 같은 인신공격성, 가십성 기사들이 사건의 본질을 흐리는 촉매제가 된다. 현재 사건의 피해자인 여배우 A에 대한 최소한의 인권이 보호돼야 함에도 그런 윤리적 가치를 언론 매체들이 지키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만약 정말 조덕제 씨 쪽에서 유리한 여론을 조성하고 증언의 신빙성을 떨어뜨리기 위해 이런 기사를 조작했다면 그것은 지탄받아 마땅한 일"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