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빌리은행의 장기연체 관련서류 파쇄 행사(사진=주빌리은행 홈페이지)
'국민행복'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2012년 대통령 선거 과정이나 당선 이후 활용한 대표적인 표어였다.
이 표어를 그대로 딴 국민행복기금은 박 전 대통령이 "18조 원의 재원을 조성해 빚을 갚지 못하고 있는 322만 명의 신용회복을 돕겠다"고 한 공약에 따라 설립됐다.
원금 1억 원이하면서 연체 기간 6개월 이상의 채권을 매입하거나 이관받아 채무자들과 상환 약정을 맺고 빚을 조금씩 갚게 하는 대신 원금을 30%~90%까지 감면하거나 최대 10년까지 분할 상환하도록 하는 방식으로 재기를 지원하는 역할을 해왔다.
국민행복기금은 2013년 금융회사들로부터 연체 채권 10.6조 원을 새로 사들이고 2014년엔 참여정부 시절 조성된 '한마음 금융' 등 배드뱅크들이 갖고 있던 오래된 연체 채권 17.4조 원을 넘겨 받았다.
이 연체 채권 28조 원에 물린 채무자는 288만 명으로 금융위원회 집계를 보면 지금까지 이 가운데 21.2%인 61만 명이 채무 6.8조 원에 대해 원금을 평균 54% 감면받거나 장기 분할 상환하는 채무 조정을 받았다.
이 기금은 또 고금리 대출을 저금리의 은행대출로 바꿔주는 '바꿔드림론'을 2013년 4월부터 올해 9월까지 9,901억 원 공급해 8만 2천 명의 이자부담을 낮춰준 것으로 집계됐다.
이 채무조정기구는 그러나 이런 성과에도 불구하고 ‘국민불행’기금, '은행행복' 기금이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국민행복기금의 채무 조정은 돈을 조금이라도 갚겠다는 상환 약정을 해야만 받을 수 있기 때문에 월소득이 50만 원이하로 중위 소득(최저생계비)의 30%에 불과한 경우에도 상환 약정을 맺어야 한다.
이 때문에 채무조정 비율이 20% 정도에 머물고 있고 아예 약정조차 맺지 못한 채무자가 지난 9월말 현재 101만 명에 달한다.
기금 측은 약정을 통해 상환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는 채권에 대해선 채권추심전문 회사에 위탁을 하거나 직접 소송을 하는 방식으로 회수를 추진해 왔다.
더불어민주당 박용진 의원이 금융당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의하면 2013년 5월부터 올해 7월까지 이 기금이 회수한 대출 연체금은 1조 3천억 원대에 이르고 채권추심회사에 준 수수료만 1천 8백억 원대다.
같은 당 제윤경 의원은 지난 10월 27일 자산관리공사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국민행복기금이 채권의 추심이나 소멸 시효 연장을 위해 그동안 제기한 소송이 35만 7천 건에 달하고 여기 든 비용 650억 원의 99.7%를 채무자에게 물렸다"고 밝혔다.
국민행복기금은 또 2013년에 금융회사들의 연체 채권 10.6조 원 어치를 사들이면서 이 중 80%인 8.6억 원 어치에 대해선 ‘사후 정산’ 방식으로 인수했다.
'사후 정산' 방식은 시장 가격보다 낮은 가격에 인수하되 채권회수금이 이 가격보다 많으면 초과한 회수금은 돌려주는 것이어서 채무자가 빚을 갚으면 금융회사의 주머니로 들어가는 구조다.
이 기금이 '본업'인 채무 조정에는 소극적이면서 금융회사 배만 불리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이런 실정때문에 시민 후원금으로 취약계층의 장기소액연체채권을 사들여 소각하는 운동을 벌이고 있는 주빌리 은행은 지난 6월에 ‘국민행복기금의 완전한 청산을 문재인 정부에 촉구한다’는 논평을 내놨다.
주빌리은행은 이 논평에서 국민행복기금에 대해 "겉으로는 서민을 위한 채무 감면을 위한 정책으로 포장했지만 실제로는 서민 대상 약탈적 추심사업"이라고 비판했다.
또 이 기금은 은행들이 주주로 참여한 상법상 주식회사라는 점을 지적하며 "은행의 빛 독촉사업을 정부 돈으로 해주는 꼴"이며 "뿐만 아니라 사후정산 조건부로 (채권을) 매입해 초과이익을 배당해 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이런 비판에 따라 지난 29일 금융위원회는 정부 합동으로 발표한 '장기소액연체자 지원대책'에서 국민행복기금의 운영을 개선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이 기금이 보유한 채권 중에서 채무자가 약정을 통해 정상적으로 갚고 있는 채권(약정 채권)은 자산관리공사에 일괄적으로 팔아 넘기도록 하고 이 때 발생하는 채권 매각대금을 금융회사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도록 요청하겠다고 밝혔다.
금융위는 앞으로 발생하는 대출회수금은 서민금융지원을 위한 재원으로 활용하겠다는 방침이다.
또 국민행복기금에 남아 있는 잔여 채무자에 대해서도 상환능력이 없는 경우 원금을 90%까지 감면하는 등 적극적인 채무 정리를 추진하겠다고 금융위는 밝혔다.
이런 대책으로 연체 채권을 털어내면 국민행복기금도 자연스럽게 소멸될 수 있을 것으로 금융위는 보고 있다.
그러나 시민사회단체들에서는 이 기금의 소멸을 기다리지 말고 빨리 청산해야 한다며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을 촉구하고 있다.
금융정의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 등 시민사회단체는 지난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에 제출한 가계부채 관련 의견서에서 "저소득·저신용·다중채무자의 부채 탕감을 위한 '가계부채 탕감기금'을 조성하고, 국민행복기금을 흡수·이관해야 한다"고 건의했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