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새해를 맞아 지난 2일 나란히 내놓은 KBS 고대영 사장과 MBC 최승호 사장의 신년사에는 현재 두 조직이 처한 상황이 오롯이 담겨 있다. 공영방송이 맞닥뜨린 위기를 두고 고대영 사장이 '책임 떠넘기기' 식 태도를 보인 반면, 최승호 사장은 '자성'을 통한 도약을 강조해 극명한 인식 차이를 보이기도 했다.
먼저 KBS 고대영 사장은 신년사에서 "작년 한 해는 우리 사회가 몹시 혼란한 시기였습니다. 그 사이에서 공영방송 KBS는 나름 공정하고 객관적인 보도를 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라고 자평하면서 급변하는 미디어시장에 대한 진단을 이어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노력이 무색하게 미디어 시장은 다양해진 매체들과 채널들에게 보다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더 이상 TV를 보지 않는다'는 말이 결코 과언이 아닐 만큼 과거, 우리의 주요 고객이었던 시청자들은 이제 온라인과 모바일을 통해서 정보와 재미를 취득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일각에서는 '지상파 무용론', 나아가 '공영방송 무용론'을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러한 공영방송의 위기에는 MBC 최승호 사장 역시 비슷한 문제의식을 나타냈다. 그는 "MBC는 엄혹한 현실에 직면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라며 글을 이어갔다.
"아시다시피 지상파 광고시장은 날로 축소되고 있고, 그 공백을 메꿔주던 콘텐츠 유통 수익은 원하는 만큼 오르지 않고 있습니다. 지난해 MBC는 큰 규모의 적자를 냈습니다. 게다가 올해는 평창 동계 올림픽과 월드컵 등 세계적인 스포츠 이벤트가 있어서 중계권료 등 비용이 많이 들어갈 상황입니다. 따라서 올해도 상당한 규모의 적자가 예상됩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있어서 두 사장은 공통적으로 '미래를 위한 투자' '과감한 투자'를 해법으로 내놨다. 그런데 고대영 사장의 경우 해법을 제시하는 와중에 자신의 업적을 자찬하는 모습을 보임으로써 그 진정성이 손상되는 흐름을 보인다.
고 사장은 "이상 말씀드린 현안들을 차질 없이 진행해나가는 데에는 상당한 비용이 들어갈 전망"이라며 "취임 이후, 많은 오해와 질타에도 불구하고 경영관리 고도화를 통해 줄곧 회사의 군살을 제거해 12월말 기준으로 기업예금이 1,169억에 이르렀습니다"라고 전했다.
"이는 KBS가 미래로 나아가는 데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매해 경영난에 시달리면서도 이 돈을 모아온 것은 미래를 위해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였습니다. 단지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자는 뜻은 결코 아닙니다."
이와 달리 최 사장은 과감한 투자에 앞서 최우선 과제로 "시청자의 신뢰를 다시 찾는 것"을 제시하며 "어떤 권력에도 멈칫 거리지 않고 정중하고 겸손하면서도 정확한 질문을 던지는 MBC가 되어야 합니다"라고 강조했다.
"불편부당, 공정성, 진실 이런 화두는 우리가 놓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만으로도 부족합니다. 우리는 시민에게 정직해야 합니다. 우리가 취재한 것을 가감 없이 보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고, 만약 우리가 보도한 것에 오류가 있으면 지체 없이 사실을 밝히고 필요하면 사과해야 합니다. 오류가 있는데도 적당히 넘어가려 하면 그때부터 시민들은 우리를 다시 불신할 것입니다."
최 사장은 신뢰 회복을 밑거름으로 "콘텐츠를 살리기 위해 과감하게 투자하는 것" "디지털 시대에 필요한 개혁을 해나가는 일" "지역 계열사와 자회사 그리고 MBC 콘텐츠를 함께 만드는 창작자들과 상생 협력 체제를 구축하는 것"을 발전 방향으로 내놨다.
◇ "돌아오라" 파업 중인 노조에 비난 화살 VS "함께 가자" 조직원들에 신뢰 보장그간 공영방송 KBS의 신뢰를 무너뜨린 주범으로 지목돼 안팎으로 퇴진 요구에 직면해 있는 고대영 사장은, "저는 결코 자리에 연연하지 않습니다. 다만, 법과 원칙에 의거하지 않은 채 저의 거취가 타의에 의해 결정된다면 그것은 다시 한 번 KBS 역사에 오점을 남기게 될 것"이라며 퇴진 거부 의사를 명확히 했다.
그는 사장 퇴진과 KBS 정상화를 외치며 122일째 파업 중인 전국언론노동조합 KBS본부(본부장 성재호)에게 화살을 돌리면서 "국민의 시청권을 볼모로 잡아 파업이나 제작 거부를 강행하는 행위는 언론인으로서 또 공영방송인으로서의 사명을 스스로 저버리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상황에서 이득을 본 주체는 노측도, 사측도 아닙니다. 바로 우리의 경쟁자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우리의 경쟁력을 스스로 떨어트리고 있는 것입니다. 저는 사측을 대표하여 여전히 복귀하고 있지 않은 일부 직원들에게 하루라도 빨리 일터로 돌아오기를 간곡하게 요청합니다. 올해부터는 현장에서 다시 함께 뛸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반면 MBC 최승호 사장은 조직원들에 대한 신뢰를 내비치며 "함께 큰 꿈을 꾸고 실천해나갑시다"라고 독려해 고 사장의 태도와 극명한 대조를 이뤘다.
"우리는 또 스스로 각자의 부문에서 망가진 공영방송 MBC를 고치기 시작했습니다. 그 자발성에 힘입어 프로그램들도 조금씩 회복되고 있습니다.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파업 기간에 구성원들이 스스로 만든 반성 프로그램들이 방송됐고 드디어 지난 26일에는 MBC가 국민에게 내놓아도 부끄럽지 않은 뉴스를 다시 방송하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저에게는 큰 감격이었습니다."
최 사장은 "저희 경영진은 이미 약속한 대로 MBC 구성원들에게 실패할 자유를 드리겠습니다. 여러분이 가진 창의력을 마음껏 발휘해 큰 꿈을 꾸십시오"라며 "MBC의 미래는 당장의 매출이나 이익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MBC 구성원들이 얼마나 큰 꿈을 꾸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 함께 큰 꿈을 꾸고 실천해나갑시다"라고 당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