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혜광고등학교 3학년 재학 당시 박종철 열사가 급우들과 찍은 사진.오른쪽 두번째 안경을 쓰고 웃고 있는 사람이 박 열사,가운데에는 박 열사의 절친인 변종준씨(사진=변종준씨 제공)
"영화 '1987'은 지금 젊은 세대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또 저런 세상이 올 수도 있다는 걸 경고한다고 봅니다"
영화 '1987'이 흥행을 이어 가면서 영화의 주인공인 박종철 열사의 인간적인 면모에도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박 열사는 독재정권의 모진 고문에 맞설 정도로 신념이 강했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오리털 파카를 길거리 걸인에게 벗어줄 정도로 마음이 따뜻했던 청년으로 기억됐다. 학력고사를 마친 뒤 여학생들과 가진 미팅에서 유머 감각을 자랑하던 지극히 평범한 청년이기도 했다.
박 열사의 고교시절 단짝 친구인 변종준씨는 최근 CBS 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박 열사의 인간적인 면모 등 30년 동안 가슴 속에 묻어 뒀던 이러저러한 일화를 공개하면서 젊은 세대에게 당부를 했다.
그가 가장 강조한 것은 지금 젊은 세대들이 보기에 실제 저런 시절이 있었을까 하고 의아해할 수 있지만 그들이 정신을 차리지 않으면 저런 세상이 또 올 수 있다는 걸 알아야 한다는 것.
변 씨는 박 열사와 부산 혜광 고등학교 28기 동기생으로, 당시 3학년과 재수 시절, 그리고 대학 재학 중 ‘절친’으로 지냈으며, 박 열사가 숨지기 3일 전에 서울에서 만난 친구이다.
또 박 열사가 숨진 이후에는 박 열사 부친(박정기씨)등 가족을 가장 가까이서 지켜온 장본인이다.
그는 인터뷰에서 "박 열사와는 고교 3학년 때 단짝이 되면서 시쳇말로 죽고 못 사는 '절친'으로 지냈다"고 밝혔다.
"당시 종철이는 뚝심이 대단했다. 공부를 해야 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뒤에는 화장실 가는 시간만 빼고 오로지 공부에 몰두했다"고 말했다.
변 씨는 또 "박 열사는 항상 방긋 웃는 스타일이어서 교우관계의 폭,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었다"며 "공부 그룹과 별난 그룹 등 이쪽저쪽을 가리지 않고 모든 친구들과 원만하게 지냈다"고 회고했다.
“좋은 대학에 갔으니 공부만 할 줄 아는 범생이로 생각할 수도 있지만 실제 종철이는 그렇지 않았다. 공부 잘하는 친구들만 아니라 술·담배 하는 별난 그룹들과도 터놓고 잘 어울리는 친구였다”는 것이다.
그리고 어려운 친구와 이웃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남다르고 유머감각도 뛰어났다며 두 가지 일화를 소개했다.
하나는 박 열사가 한번은 당시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오리털 파카를 입고 등교하자 모든 친구들이 '와 좋다'고 했지만 하굣길에 길거리에서 걸인을 보자 거리낌 없이 파카를 벗어 주었다는 것이다.
또 학력고사 뒤 누나의 주선으로 참석한 미팅에서 여학생들이 '취미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담배 연기로 도나쓰 만드는 겁니다"라며 실제 시연을 해서 좌중이 웃음 도가니에 빠진 적도 있었다고 했다.
자신이 박 열사 친구라는 이유로 경찰의 감시를 받은 사실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 종철이가 우리 집에 오면 서부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전화를 걸어와 "박종철씨 집에 놀러왔죠?'라거나 "그 친구 그 집에 오래 있으면 안되는거 알죠?"라며 협박(?)도 했다"고 밝혔다.
변 씨는 특히 박 열사 추모비 건립과 관련해서는 우여곡절을 겼었다며 어려웠던 과거를 설명했다.
"1992년 혜광 고등학교 28회 동기회를 중심으로 추모비 건립을 처음 추진할 때는 학교 측에서 "미쳤나?"는 답변이 돌아왔다"고 밝혔다.
그는 "박 열사를 기리는 추모사를 혜광고 공식행사에서 할 수 있었던 건 동기회발족 20년이 지난 2003년쯤이 처음이었고, 제가 처음으로 추모사를 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리고 이 때부터 박 열사 추모비 건립운동을 시작,10여일 이상의 침묵시위 끝에 결국 학교 측이 2003년 흉상 대신 추모비 건립에 동의해서 2004년 5월18일 추모비를 건립하기에 이르렀다.
박종철 열사의 친구 변종준씨.변씨는 지난 18일 부산CBS,노컷뉴스와 처음으로 인터뷰를 갖고 박 열사의 학창시절 성품과 영화에 대한 소감 등을 털어놓았다.그는 간간이 설움에 북받쳐 울음을 참느라 못해 말을 잇지 못했다(사진=부산CBS조선영기자)
변 씨는 영화 '1987'에 대한 소감을 묻자 한참을 망설이다, 울음을 꾹꾹 눌러 참더니 말문을 열었다.
"일단 이 영화가 어쩌면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종철이 부모님과 가족들한테는 망각의 시간을 다시 되돌리는 것이어서 잔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본 소회 같은 것은 없다"고 밝혔다.
그는 "지난해 12월에는 27일 혜광고 28회 동창회 주도로 동문들이 단체로 영화 '1987'을 관람할 때 반쯤 보고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다"고 회상했다.
변 씨는 마지막으로 '1987을 볼 청년세대에 대한 당부를 묻자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는 "지금 젊은 세대들이 소설 같은 이런 일이 정말 있었을까?'하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좀 느꼈으면 한다. 그들에게 이 영화가 정신 차리지 않으면 또 저런 세상이 올수도 있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밝혔다.
[다음은 인터뷰 내용의 발췌]
▲박종철 열사의 학창시설 “가슴 따뜻한 유머 있는 청년”
혜광고등학교 1,2학년 동안에는 박 열사와 인사정도를 나누는 데면데면한 관계였습니다. 그러다, 3학년 때 단짝이 되면서 시쳇말로 죽고 못 사는 '절친'으로 지냈습니다.
박종철 열사와 그의 단짝인 변종준씨의 부산혜광고등학교 졸업 앨범(사진=부산CBS조선영기자)
당시 박 열사는 공부도 열심히 했지만, 교우관계 역시 폭이 넓었습니다. 박 열사가 교실에서 공부를 할 때 1분도 자리를 뜬 적이 없었습니다. 점심 식사 때에도 암기과목 책을 들고 밥 한술 뜨고, 책을 보고, 또 밥 한술 뜨고 책을 보기를 반복했습니다. 점심시간 4~50분을 그렇게 보냈고, 화장실에 가거나 담배 피우는 시간을 빼면 오로지 공부에 몰입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서는 경우가 없었습니다. 뚝심이 대단했습니다.
당시 우리 반을 보면 공부 잘하는 그룹과 다소 장난 끼 많은 별난 그룹, 그리고 음악 하는 그룹 등으로 그룹 또는 진영이 형성됐습니다. 종철이는 모든 쪽과 원만하게 지냈습니다. 성격이 과묵하지만 때는 방긋 웃는 스타일 이어서 교우관계 스펙트럼이 굉장히 넓었습니다.
종철이는 특별히 어려운 사람을 생각하는 마음은 남달랐는데, 한번은 당시에는 좀처럼 보기 드문 오리털파카를 입고 등교하자 모든 친구들이 "와 좋다"고 했지만 하굣길에 걸인을 보자 거리낌 없이 입혀 주었습니다.
또 종철이 누님(박은숙씨)이 학력고사를 마친 뒤 미팅을 주선했는데, 그날 나온 여학생들이 "취미가 무엇입니까?"라고 질문을 하자, 방긋이 웃으며 "담배연기로 도나쓰 만드는 겁니다"라며 시연을 해 모두가 한바탕 웃음을 터트렸다는 일화도 있습니다. 종철이가 과묵하지만 때로는 유머감각까지 탁월했습니다.
학교에서 한번은 종철이가 뜨거운 물 주전자를 들고 갈 때, 한 선생님이 밀치는 바람에 허리부분을 데인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종철이는 부모님에게 알리지 않고, 선생님에게 찾아가 장난 끼 어린 모습으로 붉게 데인 곳을 보여 주며 "선생님, 약값 주시지예"라고 말해 선생님이 굉장히 미안했던 일화도 있습니다.
만약 이런 사실을 부모님에게 얘기했으면 문제가 생겼을 텐데, 스스로 선생님에게 찾아가 근심을 풀어드리면서 화해하고 속으로 삭이는 모습을 보인 것은 근본적으로 성품이 착했다는 증거로 봅니다.
▲경찰의 감시 “종철이가 부산 오면 정보과에서 전화오던 시절”
종철이는 저에게 단 한번도 학생운동을 한다는 말을 꺼낸 적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종철이가 우리 집에 오면 당시 서부경찰서 정보과 형사가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박종철씨 집에 놀러왔죠?”이렇게 묻곤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좀 놀라서 "아저씨 어딥니까?"라고 물으면 "서부경찰서 정보과입니다"라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그리곤 "그 친구 그 집에 오래 있으면 안 되는거 알죠?"라고 박 열사를 요주의 인물로 다뤘습니다. 그 때 저는 그 정보과 형사에게 "아저씨, 내가 알아서 합니다"하면서 전화를 끊어버렸습니다.
그 이후 종철이에게 "니, 마 뭐하노?"라고 물으면 "농활 갔다왔다"라는 답이 돌아왔고, "농활 갔다 오는데 왜 경찰이 전화 오노?"라고 물으면 "서울에는 농활 가면 경찰이 다 따라 온다"는 응답이 돌아왔습니다.
종철이가 당시 경찰에 붙잡혀 구류를 이틀 정도 살았다는 사실을 알았을 땐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그걸 정확하게 알았으면 "부모 등골 빼먹는 놈", "니 미친 놈"하며 별의별 욕을 다했을 것 같습니다. 제가 잘 몰랐던 것입니다.
우리는 당시 기타 하나씩 가지고 있었는데, 종철이는 늘 이상한 노래를 하나씩 들려줬습니다.'타는 목마름으로'와 '친구'등이 대표적인 노래였습니다. 그래서 "그게 뭐꼬?"라고 물으면 "농활 노래"라고 응답했습니다. 아무튼 당시에는 종철이 친구라는 이유로 저 역시 서슬퍼른 군사정권의 감시대상 이었던 셈입니다.
▲박종철 추모비 건립 “침묵 시위로 관철시킨 추모비”
종철이 추모비 건립은 정말로 우여곡절을 겪었습니다. 1992년 혜광고등학교 28회 동기회를 중심으로 추모비 건립을 추진했습니다. 28회는 박종철 동기들이었습니다. 동기회가 발족된 뒤 제가 처음으로 "기념사업을 하자. 흉상이라도 세우자"고 제안한 뒤 학교 측에 타진했으나 "미쳤나?"는 답변이 돌아왔습니다.
당시 군부독재가 막을 내리고 1993년 문민정부가 들어섰으나 분위기는 여전히 엄혹했습니다.
박 열사를 기리는 추모사를 혜광고 공식행사에서 할 수 있었던 건 동기회발족 20년이 지난 2003년쯤이 처음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으로 추모사를 했습니다. 학교 강당에서 선생님들과 재학생들, 졸업생들이 참석한 가운데 공식적으로 추모사를 한 셈입니다.
그리고, 이 때부터 박열사 추모비건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하지만 학교 측은 이 때에도 '우상숭배'라며 강하게 반대했습니다. 이에 혜광고 28회 동기와 후배 등이 매일 학교 앞에서 침묵시위를 벌였고, 총동창회도 가세했습니다. 10여일 이상 시위를 했습니다.
당시 학교측에 '종철이가 선생님들의 자랑스런 제자 아니냐, 학교예산으로라도 동상을 세워줘야 하는 것 아니냐'고 항변했으나 반응이 없었습니다.
저는 침묵시위 현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시위현장에 가게 되면 학교 측에 입에 담기 어려운 욕을 할 것 같았기 때문이었습니다. 하지만 매일 매일 상황은 체크하고 있었죠. 학교 측은 시위가 계속되자 결국 2003년 흉상 대신 추모비 건립에 동의해서 2004년 5월18일 추모비를 건립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추모비 제막식에 저는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작지만 종철이를 추모할 수 있는 행적을 남기는데 만족했습니다. 만약 그날 추모비 제막식에 올라갔으면 눈물을 많이 흘렸을 겁니다.
▲영화 '1987'에 대한 소감 “종철이 가족과 저에게는 잔인한 영화”
일단 이 영화가 어쩌면 다름 사람들은 몰라도 저는 종철이 부모님과 가족들한테는 잔인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저는 영화를 본 소회 같은 것도 없어요. 영화가 개봉되기 전 모 동기에게 "나는 겁이 나서 그 영화 못 보겠다"고 했지요. 그 이후 누군가 영화장면을 얘기해 줘서 한번 봤는데 자막이 아웃될 때 까지 마지막까지 지켜봤습니다.
지난해 12월에는 27일 혜광고 28회 동창회 주도로 동문들이 단체로 영화 '1987'을 관람했습니다. 저는 영화를 반쯤 보고 눈물이 앞을 가려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영화를 보는 둥 마는 둥 눈물만 흘렸습니다. 영화가 끝났을 땐 친구들의 부축을 받아 영화관을 나왔습니다.
주변에서 영화가 잘 만들어졌다고 하는데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저는 생각나는 게 종철이가 그런 일을 당한 뒤 누님(박은숙씨)이 "우리 동생이 왜 죽었는지 함께 고민을 한번 해보자"는 말이 지금도 엄청난 무게로, 울림으로 남아 있습니다.
▲박 열사 가족과의 관계 “요양원에 계신 부친, 종철이 얘기만 나오면 정신 맑아져”
우리가 그냥 시쳇말로 신이 준 선물 중에 망각이라는 게 있어서 사는데, 종철이 가족들한테는 평생 동안 망각이라는 걸 가질 수 가 없었습니다. 제가 지난해 1월 14일 박종철 고문치사사건 30주년 때 아버님의 마지막 외출을 모셨습니다.
3곳을 다녔는데, 소민문화회관과 부산 서면 촛불집회, 그리고 동기들이 마련한 사진전과 음악회를 다녀왔습니다. 최근에도 몇 차례 찾아뵈었는데, 정신이 맑으셨다가 안 맑으셨다 하십니다. 하지만 종철이 얘기만 나오면 정신이 엄청 맑아 졌습니다. 가족들은 종철이 사건을 잊어야 하지만, 평생 잊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번에 이 영화는 정말로 가족입장에서 보면 정말 더 힘든 겁니다. 그걸 생각하면 또 눈물이 나고 재조명의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청년세대에 대한 당부 “종철이 덕분에 저 자신을 되돌아 봐”
저는 개인적으로는 종철이 덕분에 저 자신을 되돌아봅니다."그동안 잘 살아왔나?", "아, 앞으로 더 잘살아 야지"이런 생각이 앞섭니다. '영화 잘 만들었다'는 그런 감정 별로 없습니다. 영화를 보면서 '그날이 오면'을 따라 부르는데, 몸도 떨리고 감정도 북받쳐 오르고 그랬습니다. 저는 '지금 젊은 세대들이 소설 같은 이런 일이 정말 있었을까?'하는 것을 영화를 보면서 좀 느꼈으면 합니다. 그리고 이 영화는 젊은 세대들에게 정신 차리지 않으면 또 저런 세상이 올수도 있다는 걸 시사한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