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신의 서브' 정현이 22일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노바크 조코비치를 상대로 강력한 서브를 넣고 있다.(멜버른=대한테니스협회)
세계 테니스 차세대 선두 주자 정현(58위 · 삼성증권 후원)이 한국 테니스 역사를 새로 썼다. 메이저 대회 단식에서 역대 한국 선수 최초로 8강에 올랐다. 전 세계 랭킹 1위를 꺾고 이룬 결과라 더 값졌다.
정현은 22일 호주 멜버른에서 열린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총상금 5500만 호주 달러 · 약 463억 원) 남자 단식 16강전에서 노바크 조코비치(14위 · 세르비아)를 3-0(7-6<7-4> 7-5 7-6<7-3>)으로 완파했다.
한국 선수 최초의 메이저 대회 8강 진출이다. 지금까지 한국 선수의 최고 성적은 1981년 US오픈 여자 단식 이덕희(65 · 은퇴), 2000년과 2007년 US오픈 남자 단식 이형택(42 · 은퇴), 그리고 이번 대회 정현의 16강이었다.
정현이 한국 테니스의 역사 창조를 이룬 것이다. 앞서 정현은 한국 선수 최초로 호주오픈 16강 진출의 역사를 쓴 바 있다.
강자를 꺾은 결과라 더 의미가 있었다. 조코비치는 현재 14위지만 한때 세계 1위를 군림하며 '무결점의 사나이'로 꼽혔던 강자다. 2015년 윔블던과 US오픈, 2016년 호주오픈과 프랑스오픈까지 4회 연속 메이저 대회 정상에 올랐다.
사실 세계 주요 언론도 조코비치의 우세를 예상했다. 뉴욕 타임스는 "조코비치가 16강에서 위협적인 상대 정현과 상대한다"면서도 "조코비치가 정현을 꺾으면 8강에서 도미니크 팀(5위 · 오스트리아)과 만날 것"이라고 전망했고, 가디언도 조코비치가 로저 페데러(2위 · 스위스)와 4강에서 만날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정현이 이변을 일으킨 것이다.
특히 2년 전 패배를 깨끗하게 설욕했다. 2016년 호주오픈 당시 51위던 정현은 1회전에서 당시 1위 조코비치에 0-3(3-6 2-6 4-6) 완패를 안았다. 꼭 2년 만에 완벽한 복수를 한 셈이다.
정현이 22일 호주오픈 테니스 대회 남자 단식 노바크 조코비치와 16강전에서 자신의 주특기인 백핸드 스트로크를 날리고 있다.(멜버른=대한테니스협회)
조코비치는 긴 슬럼프 이후 이번 대회를 복귀 무대로 삼았지만 정현의 벽에 막혀 뜻을 이루지 못했다. 지난해 조코비치는 프랑스오픈과 윔블던 8강이 최고 성적일 만큼 부진에 시달렸다. 코치와 불화, 동기 부여 부족, 컨디션 난조 속에 시즌을 조기에 접고 재기를 노렸다.
절치부심한 끝에 호주오픈을 재기의 발판으로 낙점했지만 차세대 주자 정현을 넘지 못했다. 오른 팔꿈치 부상에서 완전히 낫지 않은 조코비치는 정현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첫 세트를 접전 끝에 따낸 게 컸다. 정현은 조코비치와 타이브레이크까지 가는 팽팽한 승부를 펼쳤다. 조코비치는 열세인 가운데서도 비디오 판독을 신청하며 4-6까지 따라붙는 의지를 보였다.
그러나 정현이 날카로운 백핸드 스트로크로 세트 포인트를 따내며 1세트를 가져갔다. 조코비치는 가까스로 포핸드로 막아봤지만 높이 뜨며 라인을 벗어났고, 정현은 주먹을 불끈 쥐며 자신감을 북돋웠다.
기세가 오른 정현은 2세트도 펄펄 날았다. 날카로운 포핸드 다운 더 라인과 백핸드, 여기에 재치있는 발리까지 살아나 연속 브레이크에 성공, 게임 스코어 3-0까지 달아났다. 조코비치도 5-5까지 만들며 추격했지만 성치 않은 몸으로 정현의 상승세를 막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조코비치도 전 세계 1위답게 놀라운 스트로크를 선보였다. 그러나 정현은 이를 뛰어넘는 포핸드와 백핸드를 수차례 선보이면서 조코비치는 질린 표정을 지었다. 그럼에도 조코비치는 벼랑에 몰린 3세트 두 팔을 벌려 관중 호응을 이끌며 거세게 반격했다.
그러나 정현은 침착하게 좌우 코너를 공략하며 무뎌진 조코비치를 지치게 만들었다. 게임스코어 6-5를 만든 뒤 주먹을 불끈 쥐며 포효하기도 했다. 1세트에 이어 다시 접어든 타이브레이크에서도 3-3으로 팽팽하게 맞선 가운데 정현은 끈질긴 백핸드와 절묘한 포핸드로 5-3으로 앞서가 승기를 잡았다.
정현은 24일 8강전에서 역시 팀을 3-2로 누르고 이변을 일으킨 테니스 샌드그렌(97위 · 미국)과 상대한다. 이런 상승세라면 한국인 최초의 4강 진출도 불가능한 게 아니다. 과연 정현의 역사 창조가 어디까지 이어질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