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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 깬 '미투' 맞잡은 '위드유'…헬조선 '휘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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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침묵 깬 '미투' 맞잡은 '위드유'…헬조선 '휘청'

    [#미투, 괴물사회 비춘 거울] <하> '일상의 민주화' 이끄는 변두리 사람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약자의 목소리에 귀기울이는 세상은 보다 정의로운 길로 나아갔습니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성폭력을 증언하고 고발하는 '#미투'(#Me_Too) 운동이 들불처럼 번지는 이유겠죠. CBS노컷뉴스가 '#미투'라는 거울에 비친 대한민국의 자화상을 그려봤습니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상> 용기 낸 고백 '미투'… 2차 가해 않고 '위드유'하려면?
    <하> 침묵 깬 '미투' 맞잡은 '위드유'…헬조선 '휘청'

    (사진=자료사진/스마트이미지 제공)

     

    '미투' 운동은 그간 사회적 약자를 향한 무차별적인 폭력과 차별을 부추긴 한국 사회의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고 있다. 이는 용기를 낸 피해자들에게 지지와 연대를 다짐하는 '위드유'(#With_You) 운동과 어우러지면서 새로운 동력을 얻어가는 흐름이다.

    '미투' 운동의 확장성은 가히 폭발적이다. 오랜 기간 쌓이고 쌓여 온 성폭력 피해자들의 고통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이화여대 여성학과 김은실 교수는 "우리 사회는 너무나도 오랫동안 가부장제, 집단주의를 우선시 하면서 남성중심적인 집단이 추구하는 가치를 보존해 왔다"며 "그 과정에서 집단 내부 여성 등 약자들과 관련한 많은 문제점, 모순이 쌓여 왔음에도 그들의 고통은 외면 받았다"고 지적했다.

    "이른바 '대의'를 지키기 위해 약자들이 희생하는 것을 너무도 당연시 해 온 오랜 관행이 있다. 그 아래에서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고통 받았다. 그렇게 약자는 '나쁜 것' '문제 있는 존재'가 됐고, 누구나 강자를 꿈꾸도록 만들었다. 상대를 이겨야만 하고 1등을 욕망하도록 내몬 것이다."

    '미투' 운동은 무한경쟁 속에서 상대를 밟고 올라서도록 부추겨 온 한국 사회의 민낯을 오롯이 드러내고 있다.

    김은실 교수는 "절대다수인 약자로서 우리는 서로에게 '억울하면 출세해'라는 말로 상처 주도록 강요 받았다"며 "이러한 흐름은 지난 시기 보수화 된 정권 속에서 저항하는 몇몇 주체만이 주목 받는, 그 외 사람들에게는 굉장히 무관심했던 분위기와 맞물리면서 상식화 됐다"고 분석했다.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김현미 교수 역시 "우리 사회에는 사회화와 학습의 순기능을 찾아보기 힘들다"며 "좋은 시민을 키우는 사회화가 아니라, 자기보다 약한 자를 어떻게 제압할 것인가, 성적 대상화할 것인가에 매몰돼 있다"고 꼬집었다.

    그는 "성폭력 가해자는 당연히 법과 제도를 통해 사회적 처벌을 받아야 한다"면서도 "우리의 난제는 거리에서, 일상에서 익명의 사람들로부터 가해지는 무차별적인 성폭력이 만연해 있다는 사실"이라고 진단했다.

    "몇몇 일탈적인 개인은 자신이 저지른 특별한 과오로 인해 처벌 받을 것이다. 하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몰카'처럼 권력 관계로 묶여 있느냐, 서로 아느냐 모르느냐에 상관 없이 거리·대중교통 등 공공장소에서 만나는 익명의 타자들이 가하는 성적 위협과 폭행이다. 한국 사회는 성폭력에 대한 인식 변화를 꾀해야 한다는 시급한 문제에 당면해 있다."

    ◇ 정의로운 세상 향한 '미투'…누구도 자유로울 수 없다

    연극연출가 이윤택이 지난달 19일 서울 종로구 30스튜디오에서 성추문 논란에 대한 사과 기자회견을 연 가운데 한 극단 관계자가 피켓을 들고 있다. (사진=박종민 기자)

     

    '미투' 운동은 우리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 자명하다. 다만 그 과정은 그리 순탄치 않을 것이라는 데 우리의 과제가 있다.

    중앙대 사회학과 이나영 교수는 "페미니즘적인 사고는 일종의 코페르니쿠스적인 전환을 요구한다. 우리가 너무나 당연시 여겨 왔던 모든 것이 틀릴 수 있다는 것을 알려 주기 때문"이라며 "모든 사람이 한꺼번에 변할 수는 없다. 아래로부터 변하는 과정에서 반발도 있고 저항도 있고 후퇴도 할 테지만, 다시 앞으로 나아가는 과정을 통해 우리 사회가 서서히 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우리 사회가 진정한 민주주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미투' 운동이 굉장히 중요한 분기점이라는 인식을 공유해야 한다. 특히 권력을 지닌 사람들이 이를 인지하고 인정하고 바꿀 수 있도록 앞장서야 한다. 일시적 후퇴는 겪더라도 전면 후퇴로 가지 않도록 위정자들의 사고 변화를 통한 법과 제도 보완이 요구된다."

    모순 가득한 한국 사회에 저항하는 '미투' 운동은 결국 정의(正義)와 연결된다. 그간 정의롭지 못한 사회를 등에 업고 범죄를 저질러 온 자는 '미투' 운동 과정에서 도덕적 책임을 지고 법적 처벌을 받을 것이다.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이 있다. 정의롭지 못한 사회에 동조하거나 묵인하면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의 책임 문제다.

    이나영 교수는 "'미투' 운동으로 드러나는 사건에서 우리 모두는 그러한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기여했다는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 안에서도 책임의 경중이 다르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부정의한 시스템 안에서 이익을 얻은 자, 예를 들어 남성 중심 사회면 남성, 백인 중심 사회면 백인, 자본주의 사회면 자본가다. 그들은 법적으로 직접적인 잘못을 저지르지는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부정의한 시스템에 가장 기여를 많이 했고, 본인도 혜택을 얻었기 때문에 보다 큰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다."

    이 교수는 "지금 미투 운동과 관련해 피해자와 가해자가 뚜렷하게 갈리는 사건이 많다. 가해자를 적절히 처벌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한 만큼, 피해자를 제대로 보호해야 한다는 문제 역시 중요하다"며 "모든 사람이 그 층위에 따라 각자의 책임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그것에 따라 개인의 일상이나 문화, 관념을 바꾸도록 노력해야 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 다음에 정부를 상대로 이러한 부정의한 시스템을 바꾸도록 압력을 넣어야 한다. 젠더 문제는 기본적으로 권력 관계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사회 성폭력은 특수한 조직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영역에 만연한 현상이다. 결국 남성 중심 사회에 대한 성찰이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 이후 집단별 특수성이 있기 때문에 그 차이를 세심하게 들여다보는 제도화 절차가 필요하다."

    ◇ '미투'로 꿈꾸는 평등 세상, 남녀 구분 넘어 모두와 직결된 '성찰'

    피해자들의 폭로로 성추행 가해자로 지목된 문화예술계 인사들. 왼쪽부터 시계방향으로 배우 조민기와 조재현, 연출가 오태석과 이윤택(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

     

    나와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기. '미투' 운동을 통한 성찰은 우리 사회가 보다 정의로운 공동체로 거듭나기 위한 매우 중요한 단계다. 이를 통해 '일상의 민주화'를 앞당길 수 있다는 이야기다.

    김은실 교수는 "'미투' 운동은 모두에게 더 나은 평등 사회로 나아가려면 당연히 거쳐야 하는 과정"이라며 "이는 우리 사회에서 너무나도 일상화 된 권력 관계에 대한 문제를 직시하는 것이기도 하다"고 평했다.

    이어 "사회적 약자·주변자들이 고통을 호소하는 지금, 이른바 권력자들은 그 목소리를 듣고 성찰해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다"며 "이와 함께 '미안해' '너와 함께하겠다'는 '위드유' 움직임이 동반돼야만 이러한 문제를 개선할 수 있는 법과 제도 마련이 뒤따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미투' 운동을 단순히 남녀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단편적인 문제로만 바라봐서는 한국 사회의 구조적 모순을 드러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미 교수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아가는 것은 일차적으로 젠더 정체성이다. 생물학적으로 가시화 된 남녀 차이는 최우선적인 구별짓기를 작동시키기 때문"이라며 "그러나 우리는 '젠더화'는 물론 특정 '계층'에 속해 있는 '한국인'이라는 복합적인 정체성을 지녔다. 이러한 정체성이 다양한 사회적 맥락 안에서 어떻게 작동하고, 권력을 발휘하고, 피해를 입히는지 다각적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역설했다.

    "'미투' 운동은 남녀 차별적인 불평등 구조를 아주 폭력적이고 실체적으로 드러내는 행위다. 이제 한국 사회가 시민 개념, 그러니까 참여 의식을 지닌 시민 개념을 강화하려면, 성은 물론 계급·인종·세대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결합된 열린 사유를 할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

    '미투' 운동이 일상의 민주화를 실현하는 데까지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력이 필요하다. 결국 극소수 권력자를 제외한, 노동자·여성·성소수자·장애인·이주민 등 절대다수인 사회적 약자들의 '미투' 운동을 향한 지지와 연대가 그 답일 것이다.

    이나영 교수는 "여성운동, 시민운동은 오랫동안 이주 여성·노동자 등의 권익을 위해 노력해 왔다. 이미 법과 제도로 승인된 시민 밖에 있는, 그러니까 시민의 범주에서 지워진 사회적 타자들은 여전히 커다란 폭력에 노출돼 있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성소수자도 마찬가지다. 그러한 정체성을 지닌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그들을 위한 정책이 나올 수 있다. 하지만 지금 우리 사회에는 이들 약자를 위한 정책이 없다. 이는 결국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하지도, 인정하지도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 "우리 모두 주변인이었다"…'헬조선' 직시하도록 만든 거울 '미투'

    강남역 여성 살해 사건 1주기인 지난해 5월 17일 서울 신논현역 인근에서 열린 추모 문화제에서 참가자들이 강남역 방면으로 행진하는 도중 묵념을 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

     

    우리 사회는 여전히 약자·소수자에 대한 감수성을 대폭 키우거나 확산시키지 못하고 있다. 문화 다양성에 관한 학습과 사회화 과정에 소홀해 온 우리 사회의 맹점이 여지없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김현미 교수는 "자신이 어떠한 존재이고, 다른 사람과 어떻게 서로 관계를 맺고 대우할 것인가에 관한 학습과 사회화는 또래집단·대중문화 등에서 큰 영향을 받는다"며 "문화 다양성을 키워줄 수 있는 성평등 교육, 미디어 가이드라인은 그래서 중요하다"고 전했다.

    이어 "하지만 이와 관련한 한국 사회의 여건은 여전히 미비하다. 성·인종 비하 금지 등을 담은 미디어 가이드라인의 경우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며 "문화 다양성을 강조하는 학습과 사회화 과정을 통해 여성뿐 아니라 성소수자, 인종, 계층 등에 대한 감수성을 어떻게 강화해 나가느냐가 관건"이라고 진단했다.

    '미투' 운동이 일상으로까지 확장되기 위해서는 이에 동참하는 사회적 약자들을 보호할 수 있는 시스템 마련도 우선돼야 한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한국 사회의 법과 제도가 약자들을 보호하는 데 무관심했다는 점을 다시금 확인하고 있다.

    김현미 교수는 "성폭력 피해 사실이 제때 알려지지 못하는 데는 법과 제도가 가로막고 있는 측면도 크다"며 "가해자가 피해자를 상대로 큰 비용이 드는 소송을 벌이는 식으로, 피해자들이 2, 3중의 가중처벌을 받도록 하는 구조 탓"이라고 지적했다.

    피해자가 피해 사실을 알리는 과정에서, 오히려 명예훼손죄로 처벌 받을 수 있도록 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가 대표적인 예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 이선경 변호사는 "유명한 가해자들은 그럴 가능성이 적지만, 상대적으로 덜 유명하거나 유명하지 않은 가해자들은 '미투' 운동이 잠잠해지면 피해자들을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로 고소할 것"이라며 "정치권에서 피해자들을 보호하겠다고는 하지만, 당장 피해자가 고소 당해 조사 받으러 갈 때 필요한 법률 지원도 마땅치 않은 상황"이라고 꼬집었다.

    이 변호사는 "정치권에서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 폐지 주장을 하면서도 정작 형법 개정 등 국회 통과 결정권을 쥔 국회의원들이 책임을 회피하고 있다"며 "물론 '사실 적시 명예훼손죄'는 공익 목적이라는 점이 입증되면 대부분 처벌 받지 않아 왔지만, 현행 법이 살아 있는 한 검찰과 법원이 그것을 적용하면 답이 없다"고 덧붙였다.

    마치 선명한 거울처럼, '미투' 운동은 '헬조선'이라 불리우는 모순 가득한 한국 사회를 직시하도록 만들고 있다. 그리고 아직 가야 할 길이 있다.

    김은실 교수는 "현재 유명한 사람들을 둘러싼 문제제기가 이뤄지고 있기에 많은 사람들이 공감하고 있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작은 회사·작업장 등 소규모 조직에서는 성폭력이 끊이지 않고 있다"며 "일상에 편재된 권력을 성찰하지 않고는, 문제 제기하는 사람들을 끊임없이 폄하하고 그들을 주변인으로 계속 머물도록 만드는 사회 분위기는 계속 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지금 이 흐름이 우리 사회에 대한 반성과 성찰로 이어짐으로써 작은 작업장과 같은 공간으로까지 '미투' 운동이 번질 수 있어야 한다"며 "권력이 어떻게 작동하는가에 대한 진단을 통해 피해를 규명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법과 제도적 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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