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슈퍼매치'는 역사상 가장 적은 1만3122명의 축구팬이 지켜보는 가운데 열렸다.(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1만3122명.
지난 8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수원 삼성과 FC서울의 KEB하나은행 K리그 클래식1 5라운드를 찾은 축구팬의 숫자다. 올 시즌 K리그1의 경기당 평균관중 7547명과 비교하면 거의 두 배에 가까운 많은 관중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경기는 K리그가 자랑하는 대표상품 ‘슈퍼매치’다. 매 경기 엄청난 축구팬을 경기장으로 불러모았던 K리그의 효자였다. K리그를 대표하는 라이벌 대결로 국제축구연맹(FIFA)도 공식 인정했을 정도로 유명세를 떨쳤다. 더욱이 지난 시즌까지 8시즌을 서울의 간판 공격수로 활약했던 외국인 선수 데얀의 수원 이적이라는 대형 이슈도 추가됐다.
하지만 2018년의 첫 슈퍼매치는 철저하게 실패작이었다. 1만3122명은 역대 슈퍼매치 역사상 최저 관중이다. 때아닌 추위와 전국을 덮친 미세먼지가 많은 축구팬의 발길을 돌리게 하는 이유가 됐다고는 하나 적은 관중이 모인 주된 이유는 아니다.
실제 경기는 양 팀 모두 패하지 않기 위해 다소 수비적인 경기 운영으로 일관했다. 전반에 원정팀 서울이, 후반에 홈팀 수원이 다소 공격적인 자세를 취했다고 하나 서정원 수원 감독과 황선홍 서울 감독이 서로가 수비적으로, 또 소극적으로 임했다고 지적할 만한 경기였다. 오히려 1만3122명의 유료관중이 큰 실망만 안고 돌아갈 만한 경기가 ‘슈퍼매치’에서 펼쳐졌다.
슈퍼매치라는 명성에 걸맞게 이날 경기장에는 양 팀 관계자는 물론, 23세 이하 축구대표팀 코칭스태프와 인천 유나이티드 소속 선수 문선민 등 여러 축구 관계자가 대거 현장을 찾았다. 하지만 먹을 것 많기로 소문이 자자했던 잔치는 예년만 못한 손님에게도 변변한 먹거리도 내놓지 못한 채 막을 내렸다.
현장에서 슈퍼매치를 지켜본 박문성 SBS 해설위원은 “그들에게 승패는 중요했지만 정작 팬은 중요하지 않았다”면서 “팬은 기본적으로 K리그가 존재하는 이유이자 운영원리다. 아무리 두 팀이 처한 상황이 어렵다고 해도 라이벌 경기를 찾는 팬을 생각했다면 그런 모습을 보여주긴 어려웠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박 해설위원은 “프로 스포츠가 아마추어 스포츠와 다른 것은 경기력이 아닌 일상에서 즐기는 팬의 존재"라며 “K리그를 대표하는 상징적인 경기라면 소비자에게 매력적인 상품이 되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K리그는 매우 심각한 위기다. 지금의 K리그는 과연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를 고민해야 한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려운 상황에서도 1만3122명의 축구팬이 찾았다고 위안하는 것보다 더 많은 축구팬을 모으기 위한 분명한 고민이 필요한 K리그의 현실이다.(사진=한국프로축구연맹)
K리그의 문제는 외부뿐 아니라 내부에서도 분명하게 바라보고 있었다.
서정원 수원 감독은 무기력한 0-0 무승부 이후 “슈퍼매치뿐 아니라 K리그의 팬이 감소하는 추세라 아쉽다”면서 “예전에는 슈퍼매치가 양 팀에 좋은 선수가 많아 경기력 면에서도 좋은 모습이 많았다. 이런 부분이 유지됐다면 상당히 좋았겠지만 이제는 두 팀 다 그런 부분에서 많이 퇴색했다”고 위축되어가는 슈퍼매치의 현실을 꼬집었다.
평소보다 크게 적은 슈퍼매치의 관중에 상당히 놀란 눈치의 황선홍 서울 감독도 ”경기를 하는 입장에서 조금 더 분발해야 하는데 팬들께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매해 줄어드는 관중으로 고민하는 K리그는 그나마 자신 있게 내놓았던 슈퍼매치마저 더는 흥행을 보장하지 않는다는 차가운 현실을 마주했다. 어쩌면 서정원 감독과 황선홍 감독은 슈퍼매치를 향한 싸늘해진 관심의 원인을 분명하게 알고 있다.
과거 슈퍼매치는 K리그를 대표하는 스타가 즐비한 두 팀이 그라운드 위에서 펼치는 ‘별들의 전’이었다. 하지만 수원과 서울 모두 화려한 선수 구성은 옛말이다. 바짝 허리띠를 졸라맨 탓에 이제 수원과 서울 소속 선수 가운데 축구대표팀에 발탁되는 선수를 찾기도 어려운 현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