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른미래당 김동철 원내대표(왼쪽)가 8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본청 앞에서 일명 '드루킹 사건' 특검수용을 요구하며 단식노숙농성인 자유한국당 김성태 원내대표를 방문해 대화를 하고 있다. (사진=윤창원 기자)
자유한국당과 바른미래당 등 이른바 '범(凡)보수' 진영은 지난해 5‧9 대선 패배 후 1년 동안 컴컴한 터널 속에서 빠져 나오지 못한 신세다.
암흑인 이유는 분열 때문이다. 옛 새누리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의 국회 탄핵 처리에 대한 찬반으로 분당됐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대선에서 패배했다. 한국당이 복당파(派)를 끌어안으며 몸집을 일부 불렸지만,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합당한 바른미래당의 중도-보수를 포용하지 못한 채 6‧13 지방선거 역시 분열 구도로 치를 판이다.
앞날은 불투명하다. 합리적 대안을 내기보다 발목을 잡는 인상을 주는 등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평가가 오히려 지배적이다. 내부적으론 양당이 완전히 궤멸해야 판을 새로 짤 수 있다는 평가가 나올 지경이고, 외부에서도 "아직 반성하지 않았다"는 차가운 시각이 다수다.
◇ 돌파구 없는 합종연횡…"또 탈당하고 싶다"는 복당파, "중도통합 후회한다"는 탈당파분열된 보수의 현 상황은 전적으로 탄핵의 여파다. 대선에 앞서 2017년 3월 10일 헌재가 인용한 탄핵소추안은 2016년 12월 9일 국회 본회의에서 처리됐다. 탄핵 처리를 주도했던 새누리당 의원들이 탈당해 창당한 바른정당은 한때 의석수가 32석에 달했었지만, 5월 대선을 전후해 두 차례 탈당 사태를 겪은 뒤 9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이들은 민주평화당으로 쪼개진 국민의당 의원 18명(민평당계 비례 3명 포함한 전체 의석은 21석)과 힘을 합쳐 지난 2월 13일 30석 규모로 출범했다. 보수와 진보 양 진영의 접점인 중도, 박 전 대통령 국정농단을 심판한 탄핵 등을 공통분모로 했다.
그러나 거듭된 합종연횡이 성공적이었느냐에 대해선 부정적 평가가 내려지고 있다. 지선에서 당선 가능성이 관측되는 광역단체장이 바른미래당에 없고, 한국당도 전통적 텃밭 TK(대구‧경북)에 국한되는 현상이 그 방증이다. 때문에 바른정당에서 한국당으로 돌아간 복당파, 한국당에 가지 않고 남아 국민의당과 결합한 탈당파 양측 모두에서 후회의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한국당의 복당파인 한 의원은 사석에서 "만약 지방선거 이후에도 홍준표 대표가 당권을 고수하면 또 다시 분당 가능성이 있다"고 엄포를 놨다. 함께 복당한 김성태(3선) 의원이 원내대표가 되는 등 기대를 걸었지만, 오히려 홍 대표에 동화되는 등 기대했던 보수의 변화하는 거리가 멀었다는 것이다.
국민의당과의 합당을 주도했던 바른미래당의 한 당직자도 최근 주변에 "괜히 통합한 것 같다"고 털어놨다고 한다. 중도와 합쳐 개혁보수의 불씨를 살리려 했지만, 시너지의 실패로 귀결됐다는 자평이다.
◇ 보수 안팎 공통 진단 "반성, 변화 없인 발전도 없다"
보수진영 안팎의 공통적 평가는 "보수가 반성하지 않기 때문에 미래 역시 기대하기 어렵다"는 비판적 진단이었다. 그간의 합종연횡을 감안하면 이리저리 당적을 옮겨 다니고 겉모습만 다르게 해봐야 바뀌는 것이 없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는 충고로 재해석할 수 있다.
송호근 서울대 석좌교수는 보수의 구태의연함을 '리액션 폴리틱스(reaction politics)'라는 개념으로 규정했다. 송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탄핵이 이뤄졌는데 그렇다면 보수의 통치 양식을 근본적으로 바꾸라는 얘기였는데, 바뀐 것이 거의 안 보인다. 성찰 없이 새로운 체제를 맞이했다"며 지난 1년 보수진영의 움직임을 평가했다.
송 교수는 "야당으로서 보수당이 해왔던 양식은 그냥 잘못을 지적하고, 비난하고 그렇기에 보수가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에 대한 비전이나 아니면 목적지가 잘 보이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국당이든 바른미래당이든 관행적인 야당의 역할인 리액션(반작용)을 무비판적으로 답습했을 뿐 변화를 보여주지 못했다는 것이다.
진보학자로 분류되는 손호철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명예교수는 반공주의와 영남 지역 기반을 보수진영의 자기 혁신을 가로막는 구조적 요인으로 꼽았다. 색깔론에 경도된 우(右)편향된 유권자 층과 대구‧경북(TK) 지지 기반의 '묻지마' 표심이 오히려 독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보수진영 내부에서도 리더십의 교체 등 인적 쇄신 없이 예전 인물들이 여전히 당직을 독차지하고 있는 데 대한 답답함이 끓는 분위기다. 원로인사인 박관용 한국당 상임고문은 "제대로 된 지도자가 없다. (당내) 3분의 2가 되는 초‧재선 의원들은 야당 경험도 없다"고 했다. 소장파는 비판 없이 무기력하고, 중진들은 '웰빙 정당' 이미지에서 탈피하지 못하고 있다는 지적이다.{RELNEWS:righ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