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법 개정에 반대하는 노동계 반응에 대해 대기업 정규직 편들기란 비판도 나오지만, 실제로 산입범위 확대로 피해를 보는 이들은 주로 저임금 노동자들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산입범위 확대 반대 노조, 대기업 정규직 편들기인가?
국회는 지난달 최저임금 산입범위를 확대하는 최저임금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당시 국회는 산입범위를 확대하면 고액연봉 노동자들의 과도한 혜택을 줄일 수 있는 반면, 연봉 2500만원 미만 저임금 노동자들은 피해가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번 산입범위 확대안의 골자는 일정 수준 이상의 상여금과 수당을 단계적으로 최저임금 안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으로, 상여금과 수당을 많이 받을수록 최저임금 포함분이 늘어난다.
장시간 노동 관행이 흔한 한국 사회에서는 연장 수당 등의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고용주가 앞장서서 기본급을 최저임금만 지급하고, 각종 상여금과 수당으로 이를 보충하는 복잡한 임금체계가 자리잡은 지 오래다.
그런데 최근 최저임금이 급격히 오르면서 두 가지 우려가 제기됐다. 우선 최저임금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지급해도 최저임금을 계산할 때 사용되는 기본급이 워낙 낮아 최저임금을 위반하는 경우가 발생할 수 있다는 점이다.
또 저임금 노동자들이 주로 일하는 영세·중소사업장은 임금 지급 능력이 부족해 최저임금 인상에 대응하지 못하고 법 위반을 선택할 가능성이 높은 반면, 대기업 정규직들은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독차지해 노동시장 내 격차만 커질 수 있다는 비판도 나왔다.
산입범위를 확대해서 위와 같은 최저임금 인상의 걸림돌을 제거해야 앞으로 최저임금을 손쉽게 인상할 수 있고, 결국 실제 최저임금 인상이 절실한 저임금 노동자들에게 유리하다는 것이 국회의 주장이다.
이러한 국회와 경영계의 명분 탓에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대하는 노동계에 대해서도 일각에서는 "대기업 정규직 밥그릇만 지킨다"는 비난까지 나온다.
물론 한국 노조는 주로 대규모 사업장의 정규직을 중심으로 조직된 것이 사실이다. 지난해 12월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2016년 전국 노동조합 조직현황'을 보면 300명 이상 사업장의 노조 조직률은 55.1%에 달하지만, 30~299인은 3.5%, 30인 미만 사업장은 0.2%에 불과했다.
하지만 오히려 높은 노조 조직률 덕분에 이번 산입범위 확대는 대기업 정규직에게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할 수 있다.
어차피 대기업 정규직은 법 개정과 관계없이 노조가 단체협상으로 임금을 정하므로, 만약 상여금·수당 일부가 최저임금에 산입되더라도 교섭력을 가진 대기업 노조는 그만큼 상여금과 수당을 인상하도록 압박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정말 노동계가 대기업 정규직들의 밥그릇을 지킬 의도 뿐이라면 오히려 산입범위 확대 논란을 쟁점으로 부각시키기보다는 각자 노조가 조직된 사업장에서 단협 준비에 주력하는 편이 훨씬 유리한 셈이다.
◇산입범위 직격타는 연봉 3천만원 내외 저소득 노동자오히려 당장 산입범위 확대에 가장 큰 영향을 받을 이들은 노조가 없는 중소사업장에 일하면서도, 상여금·수당을 일정 수준 이상 받는 연봉 2500~3500만원 수준의 저임금 노동자들이다.
이들은 앞으로 최저임금이 올라도 상여금과 수당에서 인상분이 먼저 깎일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자신들을 지킬 노조가 없어 사측의 요구에 대응하기도 어렵다.
실제로 지난달 29일 고용노동부가 최저임금 산입범위 개편으로 인한 영향을 분석한 결과를 살펴보면 우선 연소득 2500만원 이하 노동자 중에서도 기존보다 소득이 더 줄어드는 '기대이익 감소' 노동자가 최대 21만 6천명으로 추정됐다.
극히 보수적으로 집계한 정부의 통계만으로도 2500만원 이하 저소득 노동자들의 피해가 없을 것이라는 국회의 호언장담이 거짓으로 드러난 셈이다.
더 나아가 최저임금 인상 혜택을 받게 되는 노동자들의 비율인 '최저임금 영향률' 추이를 노동자들의 소득에 따라 5분위로 나눠서 살펴보면 3분위 노동자 집단에서는 49.1%, 4분위 노동자 집단에서는 96%나 감소한다.
얼핏 이들은 분위상 평균보다 훨씬 높은 고임금 노동자로 보이지만, 3분위의 월 평균 임금은 월 평균 임금 200만 5천원, 4분위 월 평균 임금은 286만 1천원에 불과하다.
중소기업에 갓 취직한 청년층, 결혼·육아에 치여 경력이 단절됐다 살림에 보태기 위해 다시 취업시장의 문을 두드린 중년 여성, 퇴직 후 괜찮은 일자리를 찾은 고령층들이 주로 받는 임금 수준인 연봉 2500~3500만원을 고임금으로 보기는 어렵다.
공공운수노조 배동산 정책국장은 "학교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대표적인 임금 삭감 사례"라면서 "이들이 바로 연봉 1800~3000만원 수준을 받는 노동자들인데, 계산해보면 급식과 교통비, 상여금이 모조리 최저임금으로 날아갈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주장은 그저 가능성으로만 그칠 뿐, 실제로는 정부의 적극적인 홍보 등으로 임금이 동결되거나 삭감되는 사례가 적지는 않을까?
이에 대해 전국비정규직노조연대회의 오민규 정책위원은 "이미 지난해 2015년과 2016년 지자체 임금 실테를 조사한 결과 상여금·수당을 최저임금에 산입한 최저임금 위반 사례가 240여개 지자체 가운데 80여곳에 달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당시 불법인데도 임금을 줄이기 위해 상여금, 수당을 임금에 포함시켰는데, 이번 산입범위 확대로 기존에 일어났던 최저임금 위반, 삭감이 합법화까지 됐으니 앞으로는 최저임금이 올라도 총임금이 그대로 동결되거나 줄어드는 일이 비일비재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상여금·수당 없던 최하층 노동자도 안심 못해…임금삭감 꼼수 횡행할 것"이번 최저임금법 개정안의 핵심은 위의 내용대로 상여금과 수당을 최저임금에 포함시킨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얼핏 상여금·수당 없이 최저임금만 받는 최하층 노동자와는 무관해보인다.
하지만 실제 노동 현장에서는 이들 역시 임금 삭감의 압력을 피할 수 없을 가능성이 크다.
배 국장은 "예를 들어 최저임금만 지급하는 대신 점심은 구내식당에서 공짜로 먹이는 경우를 가정해보자"며 "기본급을 깎고, 식대를 지급한다. 대신 식사는 반드시 구내식당에서 먹도록 식사시간을 제한하거나 해서 돈을 내도록 하면 사실상 임금을 깎는 셈이다"라고 설명했다.
이 외에도 사측이 활용할 수 있는 꼼수는 이 외에도 무궁무진하다.
회사 셔틀버스를 무료 운행하는 대신 교통비를 지급하고 버스비를 받을 수도 있다. 영업직의 유류비를 영수증 청구·법인카드로 처리하는 대신 교통비로 처리하는 방법은 어떨까? 그동안 사용요금에서 정액 차감했던 인터넷·TV 설치기사의 휴대전화 통신요금을 급여화하는 꼼수도 있다.
더 나아가 비단 저임금 노동자 뿐 아니라 산입범위 확대로 최저임금 인상이 힘을 잃으면 전체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 동력도 약화된다는 지적도 나온다.
오 정책위원은 "최저임금은 최저임금과 무관한 사업장에서도 중요한 교섭 근거로 사용한다"며 "장애인·노약자를 위해 설치한 엘리베이터를 누구나 편리하게 이용하듯 최저임금의 임금 인상 선도기능은 모든 노동자들에 영향을 미치는 점을 감안하면 반드시 산입범위 확대를 막아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