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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영화=실패? 성평등 혁명 절실한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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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 영화=실패? 성평등 혁명 절실한 이유"

    대학진학 남녀 비율 50 대 50이지만 현장서는 95 대 5로 하락
    "혁명적 성평등 정책 없이 산업 내 성불평등은 더욱 극심해질 뿐"
    "'과소대표'된 여성 영화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나야"

    (사진=서울국제여성영화제 제공) 확대이미지

     

    "영화계 내 성평등을 위해서는 여성 영화인들의 연대가 필요합니다." (영화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 홍지영 감독)

    지금 영화계는 여성 영화의 부재라는 문제에 직면해있다. 극장가에 남성 서사와 남성 영웅, 남성 주인공들은 가득하지만 어디에도 여성을 위한 이야기는 없다.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여성 관객들은 영화 속에서 지워진 여성들과 도구로 쓰이는 여성 캐릭터들에 반기를 들지만 여전히 영화산업 내 여성 영화에 대한 시각은 냉담하기만 하다. 상업적 성공의 사례가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렇다면 과연 이것은 여성 감독들 개인의 재량 문제일까. 영화계 내에 만연한 '여성 감독의 영화는 남성 감독의 영화보다 상업적 퀄리티가 떨어진다'는 시각이 옳은 것일까.

    주유신 영화진흥위원회(이하 영진위) 위원과 홍지영 감독, 김선아 단국대학교 교수 등 여성 영화인들은 지난 5일 서울 마포구 이화여자대학교 ECC 극장에서 개최된 제20회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컨퍼런스에서 스크린과 스크린 밖 여성 영화인들을 향한 차별을 진단하고, 성평등 방안을 논의했다.

    ◇ 카메라 뒤 불평등 ↑…성평등 정책은 '부재'

    한국 영화산업은 세계 어느 국가보다 가장 대중적인 문화 산업이다. 국민 1인당 1년에 영화 네 편을 관람하는 나라는 한국을 제외하면 미국 정도다. 그만큼 폭넓은 연령대의 관객 의식에 영향을 미치는 문화 산업이라는 이야기다.

    그러나 스크린 위 여성 영화의 절대적인 부족과 더불어 남성 영화들의 여성 해석은 갈수록 불평등과 고정관념을 심화시키고 있다. 2011년부터 2017년까지 100만 이상 흥행 영화 중 여성주연영화는 최저 10%~최고 29%에 불과했다. 여성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는 확률을 따질 수 없을 정도로 무의미하다. 6년 간 해마다 오직 0~2명 만의 여성 감독들이 영화를 만들었다.

    주유신 영진위 위원은 보고서를 통해 "한국 영화의 평균 제작비가 증가하면서 남성 중심의 액션, 범죄, 모험 등의 소재가 영화로 집중 제작되고 있다. 현재 한국 영화에는 여성 스토리의 절대 부족으로 극장에서 관객들이 수용하는 이야기와 관점에서 젠더 불균형이 심각하다. 특히 남성은 지배적, 능동적, 여성은 수동적, 의존적 젠더 스테레오타입을 반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처럼 여성 주연 및 감독의 저조한 참여 비율은 제작현장까지 그대로 이어진다. 2013~2017년까지 한국 상업영화 중 여성 핵심 스태프들의 참여 편수 통계 비율에서 감독은 4.3~9.8%, 제작자는 17.5~35.4%, 작가는 18.1~31.4%, 촬영은 1.5~4.8%에 불과했다.

    영화 현장에서 일하기를 꿈꾸는 여성 학생들도 이런 성별 불균형 문제에 직면해있다. 현재 대학 영화 관련 학과 재학생들의 남녀성비는 50 대 50이지만 단편영화 제작 및 영화제 상영에서 70 대 30으로, 독립영화 및 저예산 장편영화에서 88 대 12로, 마지막 상업영화에서는 95 대 5로 하락한다.

    주 위원은 "여성적 이야기와 시선은 보편성과 흥행성이 없다는 선입견 때문에 여성 영화가 제작되지 않고, 영화계 내에서 남성들의 위주인 근력을 필요로 하는 일은 숙련도가 높은 노동이라고 평가받지만 여성들이 주로 활약하는 주의력, 집중력, 인내력이 요구되는 직무는 숙련도가 낮다고 평가받는다"면서 "이로 인해 여성직군 종사자의 실질 임금은 남성 종사자의 40% 이하 수준이며 이들은 영화계 내에서 쉽게 성희롱과 성폭력에 노출되면서 현장을 떠나게 된다"고 통계가 보여주는 영화계 현장의 불평등을 지적했다.

    그렇다면 정말로 여성 감독의 영화들은 남성 감독들의 영화만큼 상업적 성공을 거두지 못해 도태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그렇지 않다. 2013~2017년 극장 개봉작 편당 동원 관객수를 살펴보면 1명의 여성 감독(약 14만2천만 명)이 1명의 남성 감독(약 12만9천만 명)보다 약 1만3천 명 더 많은 관객을 동원했다.

    주 위원은 "영진위가 시행 중인 영화제작지원 사업에서 성인지적 관점이나 성평등적 지향은 전무하다. 지난해 최초로 성인지 통계를 실시했다"면서 "성평등 영화정책의 범위와 수위를 점차적으로 확대해 궁극적으로 남녀 종사자 50 대 50의 타깃을 달성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영진위, 서울국제여성영화제, 여성영화인모임 등 세 주체가 협력해 각기 역할 분담을 통해 성평등 정책을 주도적으로 추진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주 위원은 3단계 장기계획으로 ▲ 성평등 기반 조성 및 할당제 실시, ▲ 남녀 70 대 30 타깃 달성, ▲ 남녀 50 대 50 타깃 달성 등을 제시했고, 주체별 단기 계획으로는 각 단체의 성평등 환경 조성을 전제로 하되, 영진위는 성평등 영화정책 수립 및 추진을 주도하고, 서울국제여성영화제가 스크린 위를, 여성영화인모임이 카메라 뒤를 맡아 여성 서사 콘텐츠와 여성 제작 스태프 증가에 힘을 쏟아야 한다고 역설했다.

    CGV 목동 영화관의 풍경. (사진=황진환 기자/자료사진) 확대이미지

     

    ◇ 20~30년 걸리는 장기계획? 이제는 혁명적 변화 필요

    실제 대학교의 영화관련학과와 제작현장에서는 영진위보다 시급한 변화를 체감하고 있었다. 대학 영화 관련 학과의 50 대 50 성비가 의미하는 바는 다음과 같다. 영화계에 아직도 뿌리 깊은 편견과 달리 여성들의 영화적 재능과 가능성 또한 남성과 똑같거나 더 뛰어날 수 있다는 당연한 이야기다.

    그러나 아무리 그들이 남성들과 동등하게 졸업장을 받는다고 해도, 영화 산업에 종사하려고 하면 성차별적인 진입장벽이 이들의 발전과 성장을 가로막는다. 결국 '여성'이라는 성별만으로 출발부터 불이익이 시작되고, 이것이 여성 종사자 수를 하락시키며 이 같은 악순환이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모지은 감독은 "지금은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것이 아니라 중요한, 혁명적인 결정을 해야 한다. 영진위 차원에서 직접 지원하는 사업과 관련해 과감한 결정을 내려야 하지 않나 싶다"면서 "학과에서 반 이상이 여학생들인데 졸업하고 할 일이 없다. 실질적으로 연출부 뽑을 때? 여자를 안 뽑는다. 연출부가 총 5명이면 스크립터를 합쳐야 그나마 1~2명이다. 그 많은 학생들이 영화 산업에서 버틸 수가 없는 환경"이라고 영화계에 종사하고자 하는 여성들의 현실을 전했다.

    이어 "영진위 정책이 단계를 밟아 오는 동안, 불평등은 점점 더 심해지고 있다. 그래서 정책적 부분에서 빨리 발맞춰서 가야 된다는 생각이다. 이미 플랫폼은 50~60% 정도 갖춰져 있기 때문에 이 안에서 어떻게 찾아가느냐가 문제"라며 "구체적 방안을 하나 제시하자면 9인 위원회로 영진위가 돌아가고 있는데 성평등소위원회가 만들어졌으면 한다"고 바람을 이야기했다.

    대학현장에 있는 김선아 단국대학교 교수는 여성 영화의 상업적 성공에 대한 편견을 영화계 내부적으로 종식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며 향후 성평등 관련 소위원회 위원 구성에 대한 질문을 던졌다.

    김 교수는 "나 역시 여성이지만 한 때 여성 감독이 주로 하는 드라마 장르와 여성 이야기들은 상업적으로 성공하지 못한다는 편견에 빠져있었음을 고백한다. 학교에서도 대다수 남성 교수들의 지도 아래 여학생들의 여성에 대한 이야기는 어려운 고민을 맞이하는 게 현실"이라면서 "현재 여학생들의 관련 학부 진학률이 50%를 넘었다. 여성 영화인들의 역량이나 인력이 부족하거나 확보가 안된게 아니다. 결국 다시 퀄리티의 문제로 돌아가는데 여성 영화가 상업적이지 않다는 논리가 여성 영화는 퀄리티가 없다는 이야기와 같을 수 없다. 영화계 내 여성 종사자들은 이렇게 열악한 상황에 처해있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런 부분에 대한 혁명적 변화가 필요하다. 중견 영화인들이 그들의 길을 뚫어줘야 할 책임과 의무가 있고, 영진위가 성평등과 다양성에 대한 소위원회를 구성한다면 2030에도 열어줘야 한다. 이들 또한 수평적으로 우리 세대의 논의에 포함돼야 한다"며 "현재 국내에 관련 통계나 모니터링이 구체화되지 않았지만 이런 차원이 아니라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산업의 각 부문에 대한 섬세한 접근과 정책 개발이 강하게 일어나야 할 필요를 느낀다. 성평등소위원회 구성 방식에 있어서도 프랑스는 남녀동수제를 시행하고 있고, 영국은 위원들에게 무의식적 편견에 대해 교육한다"고 조언했다.

    이혜경 성평등문화정책위원회 위원장 또한 이날 토론회에 참석해 의견을 더했다. 그는 올해 문화체육관광부 정책 주요 과제에 '성평등 문화의 구현'이라는 문구가 간신히 들어간 사연을 이야기했다.

    이 위원장은 "김대중 정부 때부터 성평등을 위한 성정책관이 여러 부처에 신설됐지만 공무원들은 거의 수행하지 않았다. 그들은 '젠더'라는 말을 어려워하고 싫어한다. 그게 그들의 탓만은 아니다. 젠더의식이 있는 우리들이 정책과 연구에 관심이 있었다면 훨씬 나아졌을 것"이라며 "이번 문재인 정부 들어와서 문화체육관광부가 2030 문화정책을 발표했는데 '성평등 문화의 구현'이라는 문구가 간신히 주요 과제에 들어갔다. 주요 집필진이었던 진보한 남성 문화지식인들 또한 이 문제에 대해 둔감하고 몰라서 생략해버린 현실이고, 그래서 우리가 급하게 집어넣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이미 현 시점의 성평등 정책은 혁명적이지 않고 굉장히 퇴행했다. 각 부처의 성정책관이 없어졌으니 다시 부활해야 한다. '미투' 국면이 있었음에도 그렇게 하지 않으려고 한다. 여성가족부가 컨트롤타워로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디테일에 대한 연구가 굉장히 약하다. 노동조합 또한 권력구조에 의한 남녀 인건비 차이에 대해 연구해야 한다"고 변화해야 하는 지점을 강조했다.

    홍지영 감독은 영화계 내 성평등을 구현하기 위해 ▲ 세분화되고 정밀화된 통계, ▲ 여성 영화를 폄하하는 일반론에서의 탈피, ▲ '성평등'에 초점을 맞춘 영진위 정책, ▲ 여성 제작자, 감독, 평론가 등의 연대로 '과소대표' 문제 해소 및 아래로부터의 로비스트 활동 등이 필요하다고 구체적 방안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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