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스틸컷(왼쪽)과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에서 펄럭이는 욱일기(사진=tvN·성신여대 서경덕 교수 제공)
공교롭다. 구한말 의병 조직의 태동과 확산을 그린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으로 항일 무장투쟁사가 재조명되는 지금, 일본 해상자위대 군함이 일제 전범기인 이른바 '욱일기'를 달고 제주에 입항한다고 해 논란이 일고 있다.
오는 10일부터 제주해군기지에서 열리는 2018 대한민국 해군 국제 관함식에는 전 세계 15개국 군함 50여 척이 초청됐다. 문제는 일본 해상자위대가 함정에 욱일기를 게양한 채 참가하겠다는 데서 불거졌다. 자국기와 태극기를 달아달라는 우리 해군 요청에도, 여타 국가와 달리 일본 측은 비상식적이라며 반발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욱일기로 상징되는 일제 침략전쟁을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의 그릇된 인식을 단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다. 한국 등 피해국과 전범국 일본의 극명한 인식 차이는 어디서 비롯되는 것일까.
전문가들은 일본의 역사 교육 부재를 그 근본 원인으로 지목한다. 일본 정부가 자국민들에게 일제 침략전쟁 역사를 가르치려 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 사실상 근현대사 공교육 전무…극우화로 역사 교과서 퇴보역사가 심용환은 2일 "일본 정부는 중학교 때까지 역사 교육을 최소화하는 식으로 근현대사 교육 자체를 안 하는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며 "교과서 개정 과정에서도 과거 극우파 교과서에서만 보던 논조가 지금은 일반 교과서에도 영향을 미쳐 근현대사 서술이 굉장히 퇴보했다"고 진단했다.
이러한 일본 내부 현실은 세종대 호사카 유지 교수의 말에서 뚜렷이 확인된다. 같은 날 그는 "일본에서는 중학교 때 1, 2년 정도 역사 교육을 받는데, 선사시대부터 강의를 시작해 에도시대, 그러니까 18세기 중반 정도까지만 진도가 나간다"며 "일제가 침략을 시작한 것은 그 이후인 메이지시대부터다. 일본 고등학교에서 역사는 선택과목이니 사실상 근현대사 교육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전했다.
일본 히로시마에는 원폭을 상기시키는 평화공원 등이 조성돼 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 패망을 부른 원폭의 인과관계를 따져보면, 일본인들이 과거 자국의 침략전쟁을 알 수도 있을 법한데, 내부 분위기는 그렇지 않은 것으로 확인된다.
호사카 교수는 "원폭 피해 측면만 부각되는 현실인데, '미국에게 당한 이 일이 얼마나 끔찍한가' '그때 (원폭이 떨어지지 않았다면) 일본은 한 사람도 남김 없이 끝까지 싸웠을 것"이라는 식으로 홍보하면서도 일제 침략 부분은 생략한다"고 지적했다.
이어 "대다수 일본 사람들의 경우 자국 침략 전쟁에 대한 의식구조가 상당히 약하다. 과거 일제가 아시아를 침략했다는 사실에 대한 인식이 많이 부족한데, '그것은 그냥 전쟁이었다'는 식"이라며 "역사교육이 부족하기 때문에 위(정부)에서 뭔가 이야기를 해도 그것에 반론을 펼 수 있는 지식 자체가 없는 것"이라고 부연했다.
심용환은 "히로시마 평화공원을 두고 한국에서는 일본 측이 전범 문제를 설명하지 않는다고 문제제기를 하지만, 일본 극우인사들은 평화공원에 가서 참배하는 것 자체가 모욕적이라고 발언한다"며 "그나마 예전에는 이곳에 일본 학생들이 수학여행도 많이 가면서 최소한 평화라는 가치는 이야기했는데, 지금은 그것조차 안 되는 분위기로 안다"고 말했다.
◇ "일본 내 양심적 목소리, 한국서조차 부각 안 돼 안타깝다"
욱일기를 달고 훈련하는 일본 해상자위대(사진=서경덕 교수 제공)
일본 정부가 과거사 성찰 없이 오히려 역사교육을 외면해 온 경향은 그 뿌리가 깊다.
호사카 교수는 "사실 일본의 역사 교사들을 만나 이야기해 보면 한국 등에 대한 일제 침략을 다 알고 있고 대단히 양심적"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그러나 교사들이 그러한 부분을 상세하게 가르칠 수 있는 교육 환경 자체가 안 된다. 초·중·고교 교사는 학습 과정에서 학습지도 요령 등 정부 지침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대학에 비해 자유가 없다.
'역사교육 과정에 대한 일본 정부의 제재가 아베 정권 들어 강화됐냐'는 물음에는 "아베 정권만의 특징이라기 보다는 옛날부터 이어온 일본 정부의 전반적인 경향이다. 일단 위에서 결정한 그대로 가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개념화 돼 있는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과거 김대중 정부는 한일 역사 연구를 정부 대 정부로 하자고 제안했지만, 일본 정부는 적극적으로 참여하지 않았다"며 "학자들 사이 자유로운 교류 정도로 하자는 점에서 일본 정부의 협력은 소극적이었다. 침략전쟁 사실이 드러날 것을 염려해 적극적으로 나설 수 없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이와 관련해 심용환은 "일본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간 깊은 경제적 어려움을 겪어 온 일본 사회에서 '아베노믹스 효과로 경제가 살아나고 있다'는 인식이 자리잡는 것을 엿볼 수 있다"며 "이러한 영향으로 일본 사회는 한국 사회가 국제적이고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는 것과 반대로 향하는 분위기"라고 봤다.
앞서 언급했듯이 일본 내부에서도 과거사에 양심적인 목소리를 꾸준히 내는 세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문제는 이러한 목소리가 한국에서조차 제대로 부각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호사카 교수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로 일본 내부 양심적인 세력과의 연대는 대단히 중요하다"며 "일본에서 '위안부' 문제에 대해 실증적인 연구를 하는 학자들이 있는데, 그들의 목소리가 한국에 전해지지 않는 점은 상당히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이어 "한중일 학자들이 동아시아 역사에 대해 공동의 목소리를 내려는 움직임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한계가 너무 컸다"며 "열심히 하기는 했지만 효과가 적었다. 학술행사로 6개월에 한 번 만나는 식으로는 언어 장벽 해소, 대중적인 전파를 기대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 "한일 평화적 소통…아베 정권·극우파 잠재우는 데 힘 싣는 길"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의 한 장면(사진=방송 화면 갈무리)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일본의 양심적인 세력과 손잡고 한목소리를 낼 준비가 돼 있을까.
심용환은 "영화 '군함도'나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 등 문화 콘텐츠에서도 엿볼 수 있듯이, 한국 사회 내부적으로는 우리 자신을 바라보는 데 있어서 탈민족주의 성향이 나타나고 있다"면서도 "다만 외부적으로는 대일 관계를 비롯해 동아시아를 바라보는 태도가 전혀 바뀌지 않았다"고 분석했다.
그는 "일본에 여전히 적대적인 우리 태도는 일본 내 중립적인 위치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국 내 극우파 논리에 동조하도록 만드는 측면이 있다"며 진단을 이어갔다.
"물론 일본 아베 정권이 잘못하고 있고, 과거사에 대해 사과해야 하는 것은 맞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사회 정서는 일본과의 관계를 신중하게 가져가야 한다는 데까지는 동의하는 분위기다. 과거 일제에 부역했던 세력을 '친일파'라 하지 말고 '민족반역자'로 부르자는 논의까지 온 것이 그 예다. 하지만 그것이 행동으로는 이어지지 못하는 게 현실이다."
심용환은 "일본 내 중립 세력까지 끌어안고 그들에게 우리 정서를 이해시키고 합의를 통해 평화 어젠다를 만들어갈 수 있는냐를 보면, 우리는 여전히 적대적인 태도를 견지하고 있다"며 "이러한 강경 일변도의 태도 자체가 일본의 극우화에 또 다른 합리화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은 간과된다"고 꼬집었다.
이어 "그렇게 일본의 양심적인 목소리조차 외면당하고 있다. 소통하지 않으니까"라며 "물론 '위안부' 문제를 비롯한 중요한 이슈에 대해서는 아베 정권에 대척점을 갖고 양보하면 안 되지만, 서로를 이해하기 위한 소통로를 넓히려는 노력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역설했다.
호사카 교수는 이러한 소통로를 넗힐 수 있는 방법의 하나로 '공동 플랫폼'을 제안했다. 그는 "공동 역사 연구 등에 활용할 의사소통 수단 연구가 부족했다"며 "예를 들어 인터넷에서 한국과 일본이 서로의 자료를 잘 번역해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이 효과적인 방법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신문은 일본어판이 있는 반면, 일본 신문은 한국어판이 없어서 상대적으로 한국이 일본을 이해하는 데 불리한 위치에 있다"며 "적어도 한국과 중국, 일본에 넓게는 미국까지 포함시키는 이러한 공동 플랫폼을 지원하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현재 대립의 벽을 크게 낮출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심용환은 "소통하고 이해하려는 우리의 적극적인 행보는 일본 아베 정권이나 극우파의 득세를 잠재우는 데 일조할 수 있다"며 "남북 관계와 마찬가지로 한일 관계에서도 우리가 평화적인 자세를 견지하는 게 결코 불리하지 않다. 결국에는 일본 내 양심적인 세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는 노력을 우리가 실천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