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일 오후 평양을 방문중인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평양 옥류관에 마련된 오찬장에서 대화하고 있다. (사진=평양사진공동취재단)
"남북 분단이 굉장히 길었구나…."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이 숙고 끝에 건넨 말이다. 남북 정상회담 특별수행원 자격으로 평양에 간 가수 지코와 차범근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옥류관 냉면을 맛보고 내놓은 평에 대한 느낌을 묻자 돌아온 답이다.
황교익은 20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전화통화에서 "우리는 보통 평양에 가면 평양냉면의 원본이 존재할 것이라고 여긴다"며 "(지코와 차범근 전 감독 역시) 이러한 생각으로 평양 옥류관에서 냉면을 먹은 셈"이라고 봤다. 오랜 분단 상황이 만들어낸 평양냉면에 대한 판타지가 남측에 존재한다는 이야기다.
앞서 지난 19일 옥류관 냉면을 맛본 지코는 취재진에게 "밍밍한 맛의 평양냉면을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더라. 맛은 확실히 느껴지되 자극적이지도 않고 굉장히 균형 잡힌 맛 같다"고 했다. 차 전 감독은 "굉장히 깊은 맛은 있는데 제 입에는 한국에 익숙해서 그런지 약간 싱겁다는 느낌이 있다. 음미해 보면 또 깊은 맛이 있는 것 같다"고 평했다.
황교익은 "물론 지금은 사라진 지역도 있지만, 냉면은 백두에서 한라까지 우리 땅 어느 곳에서나 즐겨 온 음식"이라며 설명을 이어갔다.
"우리 땅에서는 밀 농사를 거의 짓지 못했다. 대신 메밀 농사를 짓고 그것으로 국수를 내렸는데, 여기에는 반드시 찬 육수를 썼다. 따뜻한 국물을 넣으면 면이 퍼져서 죽처럼 돼 버리기 때문이다. 결국 냉면도 국수인 셈이다. 그렇게 냉면은 우리 문화권에 다 있었다."
그는 "김치찌개나 된장찌개처럼 냉면 역시 지역마다 집집마다 그 맛이 모두 달랐는데, 일제 강점기에 그 많은 냉면 가운데 '평양에서 내는 냉면이 맛있다'는 말이 돌았다"며 "그렇다고 평양냉면만의 특별한 조리법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고 전했다.
"당대 문헌들을 찾아보면 평양산 쇠고기가 맛있다는 기록이 있다. 개량을 통해 품종이 한우로 통일된 지금과 달리, 일제 강점기만 하더라도 '함평우' '진주우' 식으로 지역마다 소 품종이 다 달랐다. 이 가운데 '평양우'가 맛있기로 유명했는데, 실제 평양에는 큰 우시장이 있었고, 평양에 가면 먹어야 할 것에는 불고기 같은 쇠고기 음식이 꼽혔다."
◇ "옥류관 냉면도 평양에 있는 한 가게에서 내는 냉면으로 인식될 날"
맛 칼럼니스트 황교익(사진=tvN 제공)
결국 "쇠고기가 맛있으니 그것으로 육수를 낸 평양냉면도 맛있다는 식으로 연결됐다"는 것이 황교익의 견해다. "평양만의 특별한 냉면이 있는 것이 아니라, 평양에서 내는 냉면이 맛있다는 소문이 났다"는 것이다.
"일제 강점기에 평양냉면이 맛있다고 소문난 상황에서 남북 분단 이후 남쪽 냉면 가게들이 평양냉면 간판을 내걸기 시작했다. 그렇게 평양냉면의 브랜드화가 이뤄졌고, '국물이 들어가면 평양냉면인가?'라는 착각이 우리 안에 자리잡아 온 것이다."
황교익은 "대개 외국 음식에 대해 이런 식으로 반응하는데, 대표적인 것이 '까르보나라'(이탈리아 파스타)"라며 진단을 이어갔다.
"우리는 늘 먹어 온 까르보나라가 이탈리아 음식이라고 여겼는데, '이탈리아 현지 까르보나라는 다르다'는 소식이 들리면서 '우리가 먹었던 게 진짜가 아니란 말이야?' '현지에서는 소스에 크림 같은 것 넣지 않고 치즈, 달걀을 넣는다더라'는 식으로 혼란을 겪는다. 하지만 실제로 이탈리아에도 다양한 까르보나라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간과된다."
그는 "옥류관에서 내놓는 평양냉면은 그냥 옥류관 스타일인 것이다. 옥류관 냉면을 대한민국에서 맛볼 수 있는 평양냉면의 원본으로 여기고, 그것에 맞춰 다른 냉면들을 비교하는 이유는 딱 하나 밖에 없다"며 "남과 북이 오랫동안 분단된 탓에 서로 교류하지 못하면서 외국 음식만큼이나 심리적으로 멀어진 탓"이라고 분석했다.
"북측에는 '조선민속전통'이라는 7권짜리 책자가 있다. 우리로 치면 민속대백과사전 같은 것이다. 거기 냉면 편을 보면 '냉면은 평양과 진주가 유명했다'는 구절이 있다. 어쩌면 북측에는 진주냉면에 대한 판타지가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웃음)"
황교익은 "전문점이 아니더라도 고깃집, 분식점에서도 메뉴로 넣을 만큼 냉면은 지금도 우리가 가장 많이 먹는, 우리 땅에 다양하게 뿌리내린 음식"이라고 했다.
"이처럼 다양한 냉면에 원본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모순이다. 분단 상황이 만들어낸 아픈 현실로 다가온다. 음식은 시간과 장소에 따라 늘 변해 왔다. 북쪽도 사람 사는 곳이다. 옥류관 냉면 역시 지금 평양 사람들의 기호에 맞춰 변한 결과물일 테다. 남북 교류가 활발해지면 옥류관 냉면 역시 평양에 있는 한 가게에서 내는 냉면으로 인식될 날이 오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