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특정 인물이나 사건을 다룬 영화들이 현대를 사는 청년들에게 특별한 감흥을 선사하면서 흥행 몰이에 한창이다. 옛것을 익히고 그것을 통해 새것을 안다는, 가히 '온고지신'(溫故知新) 영화 전성시대다.
3일 영화진흥위원회 영화관 입장권 통합전산망에 따르면 지난달 28일 개봉한 '국가부도의 날'은 전날 전국 1149개 스크린에서 6151회 상영돼 관객 39만 9681명을 모아 박스오피스 1위를 유지했다. 개봉 이래 5일간 누적관객수는 157만 1096명.
지난 10월 31일 개봉한 '보헤미안 랩소디'(32.1%)는 같은 날 1103개 스크린에 4706회 걸려 29만 2028명의 관객을 불러들여 2위를 차지했다. 이 영화의 누적관객수는 604만 6697명으로 개봉 33일 만에 '레미제라블'(2012년 개봉·누적관객수 592만여명)을 제치고 음악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새로 썼다.
'국가부도의 날'은 1990년대 후반, '보헤미안 랩소디'는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다뤘다. 이 점에서 이들 영화가 그 시대를 성인으로서 직접 살아낸 4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어필할 것이라 여기기 쉽다. 하지만 이 두 영화의 흥행을 견인하는 관객들은 20, 30대 청년세대다.
실제로 이날 멀티플렉스 CGV 집계에 따르면 '국가부도의 날'은 20대(40.8%), 30대(29.5%), 40대(18.7%), 50대(9.2%) 순으로 연령별 예매 분포를 보였다. '보헤미안 랩소디'도 20대(36.5%)를 필두로 30대(29.4%), 40대(22.9%), 50대(9.4%)가 뒤를 이으며 비슷한 양상을 보였다.
또 다른 멀티플렉스 롯데시네마 연령병 선호도를 봐도 '국가부도의 날'은 20대(39.7%), 30대(34.5%) 40대(24,2%), 10대(1.6%) 순으로, '보헤미안 랩소디' 역시 20대(34.6%), 30대(34.1%), 40대(29.5%), 10대(1.8%) 순이다. 중장년층보다 오히려 청년 관객들에게 더 높은 선호도를 얻은 셈이다.
'국가부도의 날'을 통해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외환위기의 부조리한 과정을 접한 청년 관객들의 시선은 당대가 아닌 현재로 향하고 있다는 점에서 눈길을 끈다.
트위터 사용자 '@B********'는 "마지막 장면에 허준호(극중 작은 공장 사장이자 평범한 가장인 갑수를 연기)가 '아무도 믿지 말라'고 했을 때 공감"이라며 "스무살 때 아버지가 비슷한 얘기를 해줬었는데 '내 것 내가 안 챙기면 다 뺏긴다'고 그러셨다. 그땐 안 믿었다. 그게 맞다면 나도 다른 사람 걸 뺏는 게 되니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다"고 전했다.
또 다른 사용자 '@m********' 역시 "'국가부도의 날', 김혜수의 영화이고, 90년대 끝자락과 그 시절의 철없던 나 생각나고, 지금의 일과 미래, 정말 많은 생각이 드는 영화였다. 김혜수, 이번엔 믿고 가도 됩니다. 마지막 까메오마저 너무나 훌륭했다"고 평했다.
이러한 흐름은 앞서 '영화관 떼창' 풍경 등을 자아내며 장기 흥행을 이어가는 '보헤미안 랩소디'의 메시지를 청년들이 받아들이는 태도와도 맥을 함께한다.
문화평론가 김성수는 이와 관련해 "기본적으로 퀸의 노래는 루저(loser·패배자)의 노래다. 루저들이 사랑하고 배려하면서 서로를 챔피언으로 만들어준다는 메시지를 계속 반복한다"며 "소수 엘리트 권력이 여전히 득세하는, 선명하게 적이 보이는 상황과는 또 다른 현재의 묘한 정치·사회 환경에서 이러한 메시지는 사람들에게 '늘 그랬지만 언제나 견뎌 왔다'는 위로와 변화의 동력을 전한다"고 진단한 바 있다.
오는 19일에는 1972년부터 1980년까지 마약을 통해 권력과 돈을 지배한 한 남자의 일대기를 쫓는 '마약왕', 1951년 한국전쟁 와중에 거제포로수용소를 배경으로 이데올로기를 뛰어넘는 댄스단의 탄생기를 그린 '스윙키즈'가 나란히 개봉한다. 이들 시대극이 전하려는 메시지를, 현재를 사는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풀어낼지에도 관심이 모아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