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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절대 봉인'이 정답일까?

법조

    '대통령 지정 기록물'은 '절대 봉인'이 정답일까?

    2심, 지정기록물 열람은 국회 동의·영장 있어야만 가능
    입법 취지 존중해야 vs 국민의 알권리 보장 '팽팽'

    청와대.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대통령이 지정한 기록물이라면 사실상 '절대 봉인'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법원 해석이 나왔다. 대통령이 임기 중 중요 기록을 파기하지 않고 많이 남기도록 하려는 법의 취지를 존중해야 한다는 판단이다. 그러나 지정기록물의 단순한 '목록'조차 수십년간 비공개된다면, 입법 목적을 고려하더라도 국민의 알권리를 지나치게 침해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일반인들은 대통령지정기록물 접근 기회 완전히 잃어

    지난달 21일 서울고등법원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 소속 송기호 변호사가 대통령기록관장을 상대로 낸 '정보공개 거부 처분' 취소 소송에서 1심과 달리 원고 패소 판결했다. 세월호 참사 당일 청와대에서 작성된 문건들을 황교안 전 대통령 권한대행이 대통령지정기록물로 만들면서 볼 수 없게 되자 '문건 목록'이라도 공개하라며 제기한 소송이었다.

    대통령기록물은 열람 공개 수준에 따라 '일반', '비밀', '지정' 세단계로 나뉜다. 일반기록물은 아무나 열람이 가능하고 비밀기록물은 차기 대통령이나 국무총리, 각 부처 장관 등 비밀취급 인가권자만 볼 수 있다. 지정기록물은 지정한 대통령 본인만 열람 가능하며 비공개 기간도 최장 30년에 달한다. 대통령기록물법(이하 법) 제 17조 1항에서는 공개될 경우 국가안전보장에 중대한 위험을 초래하거나 국민 경제 안정을 저해하는 경우 등으로 지정기록물의 구체적인 요건을 정하고 있다.

    최고 수준의 보안 조치인 '지정기록물' 제도를 명문화한 배경은 대통령들이 통치 이후 후환을 두려워하지 않고 중요 기록을 많이 남기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이에 제17조 4항에서는 지정기록물을 열람할 수 있는 경우를 매우 엄격하게 규정해뒀다. 일단 지정이 되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얻거나 고등법원장이 발부한 영장이 있어야만 열람 가능하다. 영장 발부 판단도 매우 제한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2심 재판부는 이러한 법의 취지를 무겁게 해석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대통령기록물이라하더라도 정보공개법 등에 따라 원칙적으로 공개돼야 한다"면서도 "제17조에 따른 지정기록물에 한해서는 법에서 정한 방법과 절차에 따라야만 열람이 허용된다"고 판시했다. 일단 지정된 기록이라면 정보공개 관련 소송 등으로는 다툴 수 없다는 판단이다.

    송 변호사는 "이번 판결대로라면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 취지와 달리 단순 목록조차 보안 지위를 갖게 되고 일반 시민은 완전히 암흑 상태에 놓이게 된다"며 "국회 동의나 영장청구 등은 일반인의 실질적 알권리 보장과는 너무 멀고 우회적이다"라고 말했다.

    이번 2심 판결은 기록물 목록이 대통령지정기록물이 되는 것이 타당하냐는 점을 주로 다퉜던 1심과는 사뭇 결이 다르다. 1심 재판부는 "대통령은 아무런 제한 없이 임의로 대통령기록물을 선정해 보호기간 지정행위를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라며 "국민은 지정기록물이라는 이유로 공개청구를 거부당한 경우 알권리를 실현하기 위해 법원에 지정행위의 위법·무효를 주장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국민의 알권리와 대통령지정기록물 제도의 취지가 경합하는 가운데 1심 재판부는 '입헌적 법치국가의 원리'를 설명하며 사법부의 적극적인 역할에 대해 언급하기도 했다. 고도의 정치성을 띤 '통치행위'에 대해서는 사법기관이 심사권을 다소 억제해야 하는 상황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책무를 태만히 하거나 포기하지 않도록 매우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정보공개법 제 20조에 따라 다툼의 대상이 된 정보를 재판부가 비공개로 열람·심사하는 방법으로 지정기록물 요건 충족 여부를 검토해야 한다며 세월호 당일 기록물 목록 제출을 요구한 바 있다. 당시 대통령기록관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MB, 지정기록물 26만 건, 비밀기록물은 0건

    지정기록물을 정하는 것은 오로지 대통령과 그 직무수행에 관련된 정보를 생산하는 보좌·경호기관들의 몫이다. 대통령기록관이나 상급기관인 국가기록원 등도 지정기록물과 관련해서는 단순 이관·처리 등의 일반 업무만 맡는다. 법에서 정한 지정기록물 요건에 해당하는 지 여부 등을 견제할 사전 장치는 없다. 이번 2심 판결이 확정되면 정보공개 청구 등을 통한 사후적 검토 가능성도 낮아진다.

    전임 대통령들도 비공개 정보를 다룰 때 대체로 지정기록물 제도를 이용했다. 비밀기록물의 보안 수준도 높지만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비밀기록물은 보안업무규정에 따라 1·2·3급 비밀로 구분하게 돼 있고 등급별로 비밀 취급 인가권자도 다르게 설정돼 있다. 기록물의 비공개 여부와 수준이 분류·재분류 규정 등을 거치며 비교적 상세히 검토된다.

     

    실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지정기록물은 26만 건이지만 비밀기록물은 단 한건도 남기지 않았다. 박근혜 전 대통령 역시 지정기록물은 20만4000건인 데 비해 비밀기록물은 1100건에 불과하다. 노무현 정부 지정기록물은 34만 건, 비밀기록물은 9700건이다.

    투명사회를 위한 정보공개센터의 정진임 활동가는 "지정기록물은 필요한 제도이지만 해당 기록물이 그만큼 보호해줘야 할 요건이 되는지를 판단할 필요가 있다"며 "기록물 목록까지 보호하는 것은 국민의 알권리를 과도하게 침해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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