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일 검찰이 배포한 '검·경 협력, 전주지역 3개파 조직폭력배 33명 구속기소' 보도자료. 상단에 검찰과 경찰의 로고가 나란히 배치돼 있다. (사진=김민성 기자)
버닝썬 사건·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별장 성접대 사건 재조사 등으로 검·경이 날 선 공방을 이어가는 가운데 검찰이 별안간 '검·경 협력 조직폭력배 엄단' 수사브리핑을 여는 등 화해무드를 조성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수사권 조정 문제로 정부·여당과 대립각을 세워온 검찰이 출구전략을 세운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는 등 그 속내와 향후 미칠 여파에 세간의 관심이 쏠리고 있다.
전주지검은 19일 오전 '검·경 협력, 전주지역 3개파 조직폭력배 33명 구속기소'라는 제목으로 수사 브리핑을 열었다. 지난해 4월부터 이달까지 1년간 관내 폭력조직인 월드컵파와 나이트파·오거리파 등 폭력조직원 33명을 검거·구속하고 2명은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추적 중이라는 게 브리핑의 골자다.
검찰 보도자료 일부. (사진=김민성 기자)
검찰은 이날 기자들에게 배포한 보도자료 최상단에 검찰과 경찰의 로고를 나란히 배치했다. '협력', '상호 협력', '긴밀한 협력' 등 최근 검찰과 경찰 사이에 보기 힘든 단어들도 수차례 나왔다.
또, '검·경이 각자의 역할을 차질 없이 수행함으로써…(중략)…관내 조직폭력 세력 근절 및 서민생활 안정에 기여함'이라고 밝혔고, 해당 내용을 굵은 글씨체와 밑줄로 강조했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경찰 수사가 적극적이고 광범위했다"며 "구속영장 발부율도 97%로 나타나는 등 경찰이 정말 잘한 수사"라고 치켜세웠다.
검찰의 변화 기류는 전날부터 감지됐다. 그룹 빅뱅의 멤버 승리(이승현씨)의 성접대 의혹과 경찰 유착 의혹 사건을 맡은 서울중앙지검 형사3부(신응석 부장검사)는 경찰이 이미 수사를 진행 중인 점을 고려해 직접 수사에 나서지 않기로 했다. 앞서 국민권익위원회는 지난 11일 승리·가수 정준영 씨 의혹 공익신고와 경찰 유착 의혹 부패행위 신고에 대한 수사를 경찰이 아닌 대검찰청에 의뢰했다.
클럽 버닝썬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사진=노컷뉴스 자료사진(좌), 연합뉴스 제공(우)
이처럼 일선에서 유화 제스처가 잇따르자 검찰이 계속되는 갈등 국면에 부담을 느낀 게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최근 들어 검찰은 상대 조직에 대한 불만을 애써 감추지 않았다. 지난 1월 검찰은 검·경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정부안을 '중국 공안화 법안'으로 비판했고, 경찰 조직을 독일 나치정권의 비밀국가경찰 '게슈타포'에 비유한 문건을 자유한국당 의원들에게만 보내기도 했다.
경찰도 정면으로 응수했다. 지난 14일 국회 행안위에 출석한 민갑룡 경찰청장은 검찰이 김 전 차관의 별장 성접대 사건을 무혐의 처분한 것을 두고 "(경찰이 입수한) 영상에서 (김 전 차관의 얼굴을) 육안으로도 식별할 수 있었다"고 밝혔다. 당시 경찰은 특수강간 등 혐의로 김 전 차관을 기소의견으로 송치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오후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과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김학의·버닝썬·장자연 사건' 보고를 받고 지시 사항을 전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사건을 둘러싼 논란이 가중되고, 수사기관 사이에 '상호 흠집내기'가 기승을 부리자 행정부 수반인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검·경을 질타하기도 했다.
문 대통령은 전날 오후 청와대에서 박상기 법무부 장관·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으로부터 클럽 버닝썬·김 전 차관·고(故) 장자연씨 등 세 사건을 보고받고 "사건은 과거의 일이지만, 그 진실을 밝히고 스스로 치부를 드러내고 신뢰받는 사정기관으로 거듭나는 일은 검찰과 경찰의 현 지도부가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져야 할 일"이라고 말했다.
'조직의 명운을 걸고 책임지라'는 문 대통령의 말이 수사권 조정과도 연결되느냐는 질문에 김의겸 청와대 대변인은 "검·경수사권이나 공수처 등에 대해 오늘 이야기 나온 건 없었다"고 했다.
다만 "국민이 이 사건에 대해 검·경에 따가운 시선을 보내고 있고, 국민 신뢰가 무너지면 두 조직도 바로 서기 어려운 현실을 지적하면서 국민적 의혹을 말끔히 해소하도록 처리하라는 의미"라고 부연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검찰의 친경찰 움직임이 외부 압력에 의한 일시적인 오월동주(吳越同舟: 적대적인 두 사람이 이해관계 때문에 뭉치는 것)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전주지검 관계자는 "수사기관의 존재 이유는 국민의 생명과 안녕을 위한 것이고, 두 기관은 서로 협조해야 한다"며 "특히 일선에서의 협력관계는 문제가 없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