씰리슈. 왼쪽이 슈피, 오른쪽이 씰리붓이다.
홈즈크루 소속 래퍼 씰리붓(Silly Boot, 배수용)과 슈피(Shupie, 본명 박현민)로 구성된 힙합듀오 씰리슈(SillyShu)가 21세기를 살아가는 소년들의 사랑, 꿈, 일상 등을 주제로 한 일곱 가지 이야기를 담은 첫 EP '21세기 소년들'(21st century, 4일 오후 6시 음원 공개)을 내고 본격적인 행보에 나선다.
"완전 가요를 하는 것도, 그렇다고 요즘 힙합씬에서 유행하는 스타일의 음악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렇지만, 저희만의 무언가가 확실히 있다. 색깔로 표현하자면 아주 어둡지도 않고 완전 까만색도 아닌, 섬세함이 들어가 있는 탁한 색이라고 할까. 저희만의 무언가, 저희만의 감성을 많은 분이 좋아해주셨으면 한다"(슈피)
"무언가를 억지로 담으려고 하지 않았다. 대한민국 서울에 살고 있는 저희가 지금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상황을 자연스럽게 음악에 녹여내려고 했다" (씰리붓)
'이 미세미세 먼지는 나아질 수 있을까 / 날씨 때매 외국 가고 싶단 생각을 자주 하게 되네 / 빌어먹을 마스크를 그만 쓰고 맑은 공기를 마실 수만 있다면 ~♪'
'너의 예쁜 얼굴에 눈밖에 안보여 / 뿌연 하늘은 너와 안 어울려' '무지개를 못 봤지 오랫동안 / 네가 아픈 건 추워서가 아냐 ~♪'
3번 트랙이자 타이틀곡인 '스카이러버'(Skylover)도 억지로 쥐어짜낸 곡이 아니다. 심각한 미세먼지 문제는 자연스럽게 씰리붓과 슈피에게 창작 소재가 됐다. 그렇게 두 사람은 사랑하는 소녀가 시름시름 앓는 이유가 미세먼지 때문이라고 생각하는 소년의 마음을 표현한 재기발랄한 곡이 탄생시켰다.
"올 2월쯤, 기관지가 약한 여자친구가 3일 정도 끙끙 앓은 적이 있었다. 한창 미세먼지가 심할 때였는데 여자친구가 아픈 이유가 단순히 추워서가 아니라 나쁜 공기질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아팠다. 그런데 TV에서는 '외출할 때는 가급적 깊게 숨을 들이쉬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는 황당한 얘기만 하는 거다. 그걸 듣고 너무 화가 나서 미세먼지를 소재로 한 가사를 쓰기 시작했다"
"미세먼지를 소재로 가사를 써본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씰리붓의 경우 여자친구와의 에피소드를 가사로 풀어냈는데, 저는 '미세먼지가 없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 맛있는 걸 먹으며 기분전환을 하자'는 메시지를 편하게 가사에 담아봤다"(슈피)
나머지 수록곡들의 가사도 눈여겨볼만 하다. 1번 트랙 '21세기 아이들'은 '한탕주의'가 만연한 사회 분위기 속 학교공부를 싫어하게 된 소년의 이야기를 담고 있고, 2번 트랙 '스파링'(Sparring)은 사랑하는 여자친구를 울린 전 남자친구와 한 판 붙고 싶다고 외치는 소년의 엉뚱한 발상이 곡의 주된 내용이다.
또한 씰리슈는 6번 트랙 '피곤해'를 통해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소년의 이야기를 다뤘고, 7번 트랙 '왓츠 온 유어 마인드'(What's on your mind)를 통해서는 머릿속에 있는 복잡한 생각들을 모두 털어냈다. 타이틀곡 못지않게 힘을 준 곡인 4번 트랙 '이중섭'으로는 '화가 이중섭처럼 멋진 작품을 남기겠다'는 포부를 드러냄과 동시에 이중섭을 향한 존경의 마음을 표현했다.
"솔직한 매력이 있는 앨범이다. 힘주지 않고, 최대한 솔직하게 만들었다" (씰리붓)
"여자친구가 전곡을 듣고 나서 '우울하다'고 하더라. 그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마음은 '착' 하고 가라 앉아 있지만 꿈을 이루기 위해 움직여야 하는, 그러면서도 특별해 보이기 위해 애써야 하는, 그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현재 모습이자 서울이라는 도시의 모습이지 않나. 복잡함과 우울함이 앨범을 관통하는 키워드라는 생각이다"
사실 씰리슈가 첫 EP를 완성해 세상에 내놓기까지의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이들은 지난 1월 싱글 '청하'를 내고 야심차게 2019년의 첫 발을 뗐지만 가사 논란에 휩싸여 뭇매를 맞았다. 해당 곡을 접한 많은 네티즌들은 씰리슈가 가수 청하를 이용해 노이즈 마케팅을 했을 뿐만 아니라 저급한 가사로 청하의 이미지를 훼손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와 관련해 씰리붓과 슈피는 인터뷰에서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했다.
"청하 님과 소속사 관계자 분들, 불쾌감을 느끼셨을 청하 팬분들에게 정말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 '청하'는 애인에게 이별통보를 받고 술에 취해 괴로워하는 남자의 마음을 표현한 곡이다. 각자 써놓은 훅과 벌스를 합치는 방식으로 작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너무 어두운 분위의 곡이 만들어지면 안 되겠다는 생각으로 가사를 쓰는 과정에서 신중을 기하지 못해 벌어진 일이다. 청하 님을 떠올리고 가사를 쓴 것이 절대 아니었으며, 관심을 얻기 위해 일부러 그런 것도 절대 아니었다. 깊은 후회와 반성을 하고 있다"
이 같은 논란이 있었기에, 씰리붓과 슈피는 가사 작업에 특히 많은 신경을 기울였다고 강조했다. 인터뷰 말미 이들은 "실수를 범한 뒤 깨달은 점이 많다. 보다 더 진지하게 음악을 대하는 계기가 됐다"면서 "앞으로 꾸준히 성실하게 음악 활동을 펼칠 계획이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이들이 공감할 수 있는 이야기를 솔직담백하게 풀어내되 불쾌감을 줄 수 있는 가사를 쓰지 않은 팀이 되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