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마트에 도입된 무인셀프계산대. (사진=김정남 기자)
이마트 계산원 윤미숙(가명·56)씨는 6개월 전 들어온 무인계산대에 13년 동안 일한 자리를 내줬다.
대신 윤씨는 요즘 무인셀프계산대로 고객들을 유도하고, 이용법을 알려준다.
무인셀프계산대는 고객이 스스로 상품 바코드를 찍고 결제까지 진행하는 비대면 서비스의 한 종류다.
계산원 김인숙(가명·55)씨는 해가 갈수록 동료들이 줄어드는 것을 실감한다. 동료들의 빈자리를 채우는 것은 '더 이상 사람을 필요로 하지 않는' 계산대다.
김씨는 "마트에 무인계산대 6대가 들어왔는데 6대가 더 들어온다는 말이 있다"며 "다른 업무나 점포로 보내진 사람들의 얘길 들으면 남일 같지 않다"고 말했다.
최근 이마트는 전국 60여개 매장에 이런 시스템을 도입했다. 대전지역 이마트의 경우 복합터미널점은 지난해 추석 즈음에, 둔산점은 6개월 전에 무인계산대가 설치됐다고 한다.
직원들에 따르면 현재 무인계산대 이용률은 복합터미널이 32%, 둔산점이 38%로 이를 절반 수준까지 끌어올린다는 게 마트 측의 계획이다.
사람의 자리를 신기술로 채웠지만 어찌된 일인지 직원들도, 고객들도 전보다 더 힘든 경우가 적지 않다고 한다.
계산원 김은영(가명·52)씨는 "무인계산대 이용을 유도하기 위해 원래 있던 계산대를 적게 열다보니 어제만 해도 30여명의 손님이 계산대 앞에 서있었다"며 "그 중 한 분이 왜 계산대를 더 안 여냐며 저에게 막 소리를 지르고 삿대질을 하셨는데... 요즘 숱하게 겪는 일"이라고 했다.
계산원 이명희(가명·58)씨 역시 "아무리 찍어도 줄은 또 늘어나있고... 그 줄만 봐도 굉장히 중압감이 드는데 불만과 원성까지 감당하다 보면 솔직히 힘들다"며 고개를 저었다.
'카드 전용'으로 운영되는 무인계산대는 현금과 상품권을 사용하려는 고객들과 어르신들에게는 더욱 문턱이 높다.
김씨는 "상황이 이런데도 본사 방침이라며 계산대는 안 열어주고, 기존 계산원들은 무인계산대 이용률을 높이기 위한 '호객행위'까지 하는 실정"이라며 쓴웃음을 지었다.
윤미숙씨는 "무인계산대를 도입한 뒤 공식 근무시간이 1시간 줄었지만, 기존 30분씩이었던 쉬는 시간이 20분으로 줄어드는 등 실질적인 업무시간과 강도는 오히려 늘었다"고 말했다.
이마트 측에서는 "무인계산대 도입으로 인한 계산원의 구조조정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최근 이어지고 있는 '면담'이 계산원들은 불안하다.
파트타임과 계약직 직원은 이미 줄어든데다 다른 지역에서는 계산원의 타 점포 및 타 업무 발령이 이뤄진 사례가 있어 고용에 대한 불안감이 높은 상태다.
김은영씨는 "노브랜드 등 타 점포에 발령나 일을 하는데 상품을 채우고 진열하는 등 완전히 새로운 업무가 맡겨지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마트노조는 신세계그룹이 최근 5년간 대형점포 16곳이 신규출점했지만 정규인력은 같은 기간 오히려 200여명이 줄었다고 주장했다.
이런 가운데 무엇보다 힘든 것은 '기계'에 밀려 사람의 노동이 소외되는 현실을 실감할 때라고 계산원들은 털어놓는다.
18년 동안 일했다는 이명희씨는 "그동안 열심히 일하면서 즐거웠는데 요즘은 그런 생각이 들지 않는다"라며 "뭐랄까... 이제 우리는 밀려나는구나 그런 느낌..."이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무인계산대 안내를 하고 있는 계산원 윤씨는 "나 스스로가 내 일자리를 없애는 심정"이라고 말했다.
이마트는 1인 가구 증가에 따른 개인화, 소량화 소비 추세에 발맞추기 위해 무인계산대를 도입했다고 밝혔다.
이런 추세 속에 '신기술'에 사람의 노동이 밀려날 것이라는 우려는 현실이 되고 있다. 계산원들은 노동자는 물론 무인계산대의 혜택을 받아야 할 고객들까지도 소외되는 실태를 지적하며 기술과 인간의 '공존'을 주장한다.
마트노조가 소속된 민주노총 서비스연맹의 전병덕 대전세종충청본부장은 "우리는 신기술 도입에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하지만 노동자들의 노동강도 개선과 고객의 실질적인 편리가 뒷받침될 때 그것이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한국고용정보원의 박가열 부연구위원은 "그동안 해온 일이 기술적으로 대체되는 현상을 막을 수는 없지만 그 영향과 책임을 개인의 노력에만 맡기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며 "기술로 대체된 만큼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을 찾고 서비스의 질은 또 어떻게 끌어올릴 것인지에 대해 개인은 물론 기업 차원의, 정부 차원의 고려가 함께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박가열 부연구위원은 "기술은 결국은 사람의 행복을 지원하는 쪽으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