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김군' 스틸컷(사진=영화사 풀 제공)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언론시사회가 열린 13일 서울 자양동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 이날 정오쯤 마친 시사회 직후 이어질 기자회견이 다소 늦어지고 있었다. 이 영화에 출연한 주옥씨가 자리를 비운 까닭이다. 주최 측은 "영화가 끝난 뒤 마음을 안정시키는 중"이라고 상황을 설명했다.
예정보다 5분가량 늦게 자리를 잡은 주씨는 "바깥 활동 없이 집에서 숨어 지내다가 이제서야 나온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하면서 "영화를 보니까 옛날에 겪었던 일들이 새롭게 생각나면서 먹먹하고 힘이 전혀 없다. 가슴이 너무 답답해서 이상하다"며 말을 잇지 못한 채 눈시울을 붉혔다.
1980년 5·18 당시 스물한 살이던 주씨는 둘째를 임신한 몸으로 시민군이 탄 트럭에 주먹밥을 실어 날랐다. 그는 5·18 이후 언론 등과 일체 접촉하지 않은 채 두문불출해 왔단다.
주씨는 이날 "둘째를 미숙아로 낳았고, 밖으로 안 나오면서 집에서만 생활했다. 집 근처 대학에서 축제할 때 폭죽을 터뜨리면 그 소리에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었다"며 "내가 치유될 수 있도록 조금이나마 도와 준 사람이 (영화 '김군'을 연출한) 강상우 감독이다. 이렇게 밖으로 나올 수 있게 된 계기였다"고 말했다.
그는 "5·18에 대한 날조된 주장이 인터넷을 중심으로 나오고 있는데, '5·18은 이랬다'고 정확하게 인식한다면 다시는 그런 일이 안 일어나고 바뀔 것 같다"며 "젊은이들이 진정으로 함께하는 세상이 됐으면 좋겠다"고 호소했다.
오는 23일 개봉하는 영화 '김군'은 '5·18 북한군 개입설'을 주장하는 극우논객 지만원 씨가 북한 특수군 '제1광수'로 지목한 인물을 찾는 기나긴 여정을 담았다. 해당 인물에 대한 단서는 5·18 당시 시민군으로 활동했던 것을 증명해 주는 사진뿐이다.
강상우 감독은 "2014년 다른 기록 촬영으로 광주에서 (주옥) 선생을 처음 만났고 이듬해인 2015년 5월 금남로에 문을 연 5·18기록관에 선생이 주먹밥을 나른 양은대야가 전시됐다"며 "그때 선생은 2층 전시관에 있던 (한 시민군) 사진을 보고 '아는 청년 사진이 걸려 있다' '김군'이라고 알아보셨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해 5월, 그러니까 같은 달에 사진 속 인물과 북한 사람이 동일인이라는 주장이 일베를 통해 처음 제기됐고, 한 달 뒤 지만원 씨가 그 사람을 두고 '제1광수'라고 지목했다"며 "사진 한 장을 두고 상반된 주장이 펼쳐지는 모습에 (사진 속 인물의 행방을) 찾아나섰다"고 부연했다.
◇ "김군, 어느 누구라도 될 수 있는 그 이름"
13일 서울 광진구 롯데시네마 건대입구점에서 5·18 시민군의 행방을 쫓는 다큐멘터리 영화 ‘김군’ 언론시사회·기자회견이 열리고 있다. 왼쪽부터 강상우 감독, 5·18 당시 김군 목격 제보자 주옥 씨, 5·18 당시 중앙일보 사진기자 이창성 씨. (사진=황진환 기자)
강 감독은 "사진 속 인물 찾기를 진행하면서 그분의 생사여부가 아니라 그 과정에서 만나는 시민군 한 명 한 명의 증언이 우리에게 몰랐던 기억들과 순간들을 알려 줄 것으로 봤다"며 "그랬기 때문에 (사진 속 인물을) 계속 찾아나섰다"고 했다.
그는 "당시 시민군에게 연락 드린다는 것 자체가 그 상처를 되새기게 만드는 일이었다. 연락 안 받는 분들도 있었고, 일정을 잡고 나타나지 않는 분들도 굉장히 많았다"며 "이런 일을 겪으며 고민하는 작업이 모든 제작 과정에서 계속됐다"고 덧붙였다.
극중 김군 사진은 5·18 당시 중앙일보 사진기자로 현장을 목격한 이창성 씨가 찍었다. 그는 지난 2008년 발간한 사진집 '28년 만의 약속'으로 그 항쟁의 역사를 증언했다.
이날 기자회견에 함께한 이 씨는 "강 감독이 시골로 찾아와서는 '5·18 영화를 만들겠다'고 하더라. 왜 하냐고 물으니까 '역사에 기록을 남기고 싶다'더라"며 "5·18 당시 시민군에게 '진실된 기록을 역사에 남기겠다'고 약속했다. 그 약속을 지키는 것은 영화 만드는 일을 돕는 것이라고 생각해 모든 자료를 내줬다"고 말했다.
그는 "사실 (5·18 때) 기자들이 소임을 다 못했다. (1980년 5월) 21일 당시 전남도청 앞에서 시민군과 계엄군이 충돌한 것을 제대로 본 기자도 찍은 기자도 없다"며 말을 이었다.
"그래서 자꾸 진실이 왜곡되는 것이다. 그때 새벽에 나가서 시민군과 함께 차를 타고 다닐 때 젊은이들의 자랑스런 표정, '나는 할 일을 하고 있다'는 표정을 봤다. 밤새 교전하고 도청에 돌아온 사람들은 '누군가 나서야 하기 때문에 할 일을 하고 있다'고들 했다. 그 사람들 눈빛 하나하나를 잊을 수 없다."
강 감독은 영화 제목을 '김군'으로 정한 데 대해 "주옥 선생이 사진 속 인물을 '김군'이라고 지칭했다. 한국에서 가장 많은 성이 '김'이기도 하다"며 "구체적인 개인에 대한 지칭이기도 하지만,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어느 누구도 될 수 있는 명칭이라는 생각이었다"고 설명했다.
영화 '김군'은 초반에 지만원 씨의 왜곡된 주장을 자세히 소개한다. 이를 두고 강 감독은 "(지 씨) 인터뷰를 충실히 담음으로써 그 논리 자체로 반박이 가능하다고 믿었기 때문"이라며 "관객들이 얼마든지 현명하게 판단해 줄 것이라 믿었다"고 전했다.
1983년생인 강 감독은 "5·18에 대해 피상적으로나마 어느 정도는 알고 있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 영화 작업을 하면서 너무 몰랐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며 설명을 이어갔다.
"영화 '김군'은 지만원 씨의 5·18 왜곡에 대한 응답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것(지 씨의 왜곡 주장)을 믿는 사람들이 이 영화를 보고 설득이 될 지는 모르겠다. 다만 스스로 5·18에 대해 잘 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이 영화를 많이 보면 좋겠다. 5·18에 관한 다른 모습, 다른 목소리를 들으면서 새로운 생각을 할 수 있을 거라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