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무일 검찰총장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1년 전으로 시계를 돌려보겠다. 그때도 문무일 검찰총장은 이래저래 마음 고생을 꽤 했다.
◇ 文 "이런 걸 물어보려고 바쁜 총장을 불렀느냐"
일단 정부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논의하면서 검찰의 목소리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 이른바 '검찰 패싱' 논란이 한창이었다.
개혁 대상이 개혁안을 논의해서 되겠느냐는 '셀프 개혁 제척'이 아니라, 고분고분 말을 듣지 않으니 아예 '왕따'를 시킨 격이었다.
이에 문 총장은 "수사권 조정 논의에 있어 관련 기관 협의가 안되는 방식으로 진행되는 게 옳은가"라고 불만을 표시하기도 했다.
여기에다 검찰 내부에서는 '항명'사태도 벌어졌다. 강원랜드 채용비리 의혹 사건 수사를 했던 안미현 검사가 문 총장을 비롯한 검찰 지휘부로부터 수사 외압을 받았다는 주장한 것이다.
강원랜드 수사단도 "문 총장이 기존 약속과 달리 수사에 개입하고 있다"며 '직권남용' 카드를 꺼내들었다.
그러자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문무일 검찰총장을 모처로 불러 후배 검사들의 '직권남용' 주장을 옹호하는 듯 한 발언을 했다.
그러자 문 총장은 면전에서 "그런 논리(직권남용)라면 이런 걸 물어보려고 바쁜 검찰총장을 오라가라 하는 것도 장관의 '직권 남용'"이라고 맞받아쳤다.
결국 항명 사태는 '찻잔 속의 태풍'으로 끝났지만, 정부가 '검찰 개혁'의 상징처럼 여기고 있던 '검경 수사권 조정' 문제는 여전히 불씨가 남았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 朴 "수사권 조정안, (검찰도) 괜찮을 것이다"지난해 6월 드디어 정부여당은 '검경 수사권 조정안'을 담화 형식으로 발표했다. 검찰의 입장이 반영된 것이 아니었기에, 검찰 내부에서는 문무일 총장이 받을 수 없을 것이란 말들이 많았다.
그러나 박상기 장관은 전혀 아랑곳 하지 않았다. "이 안을 받아들고 문무일 총장이 조직에서 버틸 수 있겠느냐"는 질문에 박 장관은 "괜찮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문 총장이 이 안을 받아들인다는 말이냐"는 거듭된 질문에 박 장관은 "나는 그렇게 보고 있다"고 답했다.
정부안까지 도출돼 무슨 일이라도 곧 터질 것 같은 긴장감이 돌기도 했지만, 이후 이 안이 국회를 통과할 기미가 보이지 않자 다시 지루한 소강상태가 이어졌다.
◇ 文 "수사권 조정안, 민주주의에 역행"하지만 패스트트랙이 생각지도 못한 분란을 몰고 왔다. 검경 수사권 조정안이 패스트트랙에 지정될 줄은 꿈에도 모른 채 해외순방에 나섰던 문 총장은 지난 1일 해외에서 "지금의 수사권조정안은 견제와 균형이라는 측면에서 민주주의에 역행하는 것"이라고 반기를 들었다.
법조계 안팎에서는 '제2의 검란' 운운하며 문무일 총장의 행보를 주시했다.
경우에 따라서는 문 총장의 추후 행보가 수사권 조정과 관련한 흐름을 뒤바꿔놓을 가능성이 있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검찰을 무턱대고 자극하기 보다는 조용하고 신중한 '로우키(low-key)'를 주문하는 목소리도 많았다.
박상기 법무부 장관 (사진=박종민 기자/자료사진)
◇ 朴 "(검찰은) 겸손하고 진지하게 논의해라"하지만 지난 3일 수원고검 개청식에서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문 총장을 겨냥한 듯 "검찰은 (수사권 조정 문제를) 겸손하고 진지하게 논의하라"고 말했고, 지난 9일 문재인 대통령도 취임 2주년 특별 대담에서 "(검찰의) 셀프 개혁은 안된다"고 분명한 선을 그었다.
이뿐만이 아니었다. 법무부는 지난 10일 문 총장의 임기가 두달여 남은 상황에서 차기 총장을 세우겠다는 일정을 서둘러 발표하면서 현 총장의 힘을 뺐다.
검찰 관계자는 "총장의 임기가 7월 말까지니까 후임 총장 청문회 일정을 감안하더라도 6월에 후보추천위를 구성해도 아무런 문제가 없다"며 "이렇게까지 서두르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말했다.
문 총장이 귀국후 예정했던 '수사권 조정안 관련' 기자간담회는 지난 13일 저녁 뜬금없는 장관의 '지휘 서신'이라는 '돌발 상황'이 연출되면서 일정 자체가 어그러졌다.
문무일 검찰총장이 지난 16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검찰청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 (사진=이한형 기자/자료사진)
◇ 文 "검찰은 입 닫으란 말이냐"이와 관련해 문무일 검찰총장은 지난 16일 임기중 마지막이 될 기자간담회에서 "박 장관의 말대로라면 검찰은 입 닫아야 한다"며 "아무 말도 하지 말고 가만히 있으라는 것 아니냐"고 반박했다.
모 검찰 인사도 "문 총장은 기자간담회 등을 통해 (수사권 조정과 관련해) 조직 내외부의 여론과 관심을 환기시켰다고 본다"며 "검찰의 입장은 전혀 들으려고 하지 않은 법무부장관은 대체 어떤 역할을 맡은 것이냐"고 반문했다.
이제 문무일 검찰총장과 박상기 법무부장관의 신경전은 더 이상 볼 수 없을 지 모른다.
오는 20일은 차기 검찰총장 후보 추천 마감일이어서, 앞으로 검찰 조직의 관심은 자연스레 차기로 쏠릴 수 밖에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법무부장관과 검찰총장의 관계도 늘 좋았던 것만은 아니다. 참여정부 초기 강금실 법무부장관 시절 때도 그 유명한 '검사와의 대화' 이후 김각영 검찰총장이 곧바로 옷을 벗었다.
김각영 총장의 후임이었던 송광수 검찰총장도 강금실 법무부장관과 마찰을 빚었다. 대검 중수부 폐지, 공수처 설치 등 참여정부가 추진한 검찰 개혁과 함께 갈등은 존재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강금실-송광수 팔짱'을 재연해 달라는 것도 아니다. 다만 국민의 기본권이 결부돼 있는 '수사권 조정 문제'에 있어 협의의 주체가 되어야할 대상을 완전히 배제해 버리거나, 또는 나도 모르게 팔이 안으로 굽는 '조직 이기주의'로 비춰져서는 결코 '본질'에 다가설 수 없기 때문이다.
문무일 총장이 검찰총장 임명장을 받을 때 읊었다는 시를 인용하며 맺는다.
"하늘 노릇 하기도 어렵다지만 4월 하늘 노릇만 하랴. 누에 기르는 사람은 따뜻하기를 바라나 보리농사 하는 이는 추운 날씨를 바란다네. 집을 나선 이는 맑은 날씨를 바라는데 농삿꾼은 비오기만 바라고 뽕잎 따는 아낙은 그늘지고 서늘한 날씨를 바란다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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