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앞서 소개한 고 문용동, 류동운 두 젊은 신학도들은 마지막까지 518의 현장을 지키다가 끝내 군의 총탄에 숨졌습니다.
엄혹한 현실을 외면하지 못했던 이들의 선택이 오늘 우리에게 전하는 이야기는 무엇일까요. 천수연 기잡니다.
예장통합총회 사회봉사부가 16일 교회와사회포럼 '5.18과 한국교회 그리고 신학도들(문용동과 류동운)'을 개최했다. 장신대 이치만 교수가 강의하고 있다.
[기자]
선배의 죽음 앞에 시위대에 참여한 류동운 전도사가 죽기 이틀 전 남긴 쪽집니다.
“한 줌의 재가 된다면 어느 이름 모를 강가에 조용히 뿌려다오”
더 많은 희생을 막기 위해 전남도청 무기고를 지키던 문용동 전도사는 끝내 그 자리에서 숨졌습니다.
비인간적인 현장, 죽을 줄 알면서도 죽음의 자리로 나간 두 청년의 선택은 타인을 위한 자기희생이었습니다.
[고재길 교수 / 장로회신학대학교]
"신학도라고 하는 자기 정체성을 바탕으로 이웃의 생명을 구하는 사랑을 실천했습니다.
문용동은 시민군의 한 사람이었지만 동시에 하나님이 주신 소명의 터 위에서 행동했던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
특히 이들의 삶은 오늘날 교회의 사회참여적 역할을 되새기게 합니다. 두 신학도의 행동은 한국기독교가 가장 자랑스러워하는 근대한국사 속 그리스도인들과 같은 맥락에 있습니다.
역사신학자인 장신대 이치만 교수는 전통적 유교사회의 붕괴와 일제의 식민지배라는
사회 변화 속에서 한국기독교는 계몽운동, 항일운동을 이끌어 왔음을 상기하면서, 사회의 가치가 궁극적으로 변화하고 위협받을 때 그리스도의 사랑을 사회에 표출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역할이라고 지적했습니다.
[이치만 교수 /장신대 ]
"우리사회의 가장 궁극적 가치가 훼손되는 상황에서 류동운 열사나 문용동 전도사가 그와 같은 군인들에 대항해서 참여하고 다친 사람들의 그 대열에 동참한 것은 그리스도인의 당연한 해야할 일이었지 않느냐 저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39주기를 맞는 광주민주화운동의 두 신학도들은 종종 '정교분리'라는 말 때문에 혼란스러워하는 한국교회에 사회운동의 기준을 새삼 일깨웁니다. CBS뉴스 천수연입니다.
[영상 정선택 편집 전호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