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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배심원들' 판사 역, 왜 문소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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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배심원들' 판사 역, 왜 문소리였을까?

    [노컷 인터뷰] '배심원들' 홍승완 감독 ①

    지난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영화 '배심원들' 홍승완 감독을 만났다. (사진=CGV아트하우스 제공)

     

    흔히 '법정물'이라고 불리는 한국영화의 주인공은 대부분 검사나 변호사였다. 이미 세파에 찌들었으나 어떤 계기로 각성해 최소한의 '인간 된 도리'를 되찾고, 사건을 끌고 나가는 이들의 이야기가 대다수였다.

    바로 이 점에서 영화 '배심원들'(감독 홍승완)은 차별점을 가진다. 나이, 성별, 생활 수준과 성격 등이 제각각인 평범한 배심원들이 2008년 국내에서 처음 열린 국민참여재판에서 활약하는 모습이 주요 줄거리이기 때문이다.

    재판부의 역할은 작지 않지만, 굳이 따지자면 배심원들을 보조하는 모양새다. '원톱' 없이 고르게 빛을 받아서 생소해 보일 뿐이다. 무엇보다 이 영화의 판사는 '여성'이다.

    가장 첫 번째에 이름이 나오는 배우가 여성이라는 점, 관객들도 익숙해할 검사-변호사가 아니라 배심원들을 주인공으로 한 점은 이제껏 볼 수 없었기에 신선했다. 동시에 난관이었다. 시도되지 않았던 '모험'이 실현되기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 이유다.

    영화 개봉 이틀 전인 지난 13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배심원들' 홍승완 감독을 만났다. 살아 숨 쉬는 듯한 캐릭터를 잡아나가는 과정과, 왜 그 역할을 그 배우에게 맡겼는지가 궁금했다. 특히, 법과 원칙에 따라 판결하는 판사 김준겸 역에 문소리를 떠올린 이유가.

    다음은 일문일답.

    ▶ 지난 2일에 언론 시사회가 열렸다. 영화 어떻게 봤는지 궁금하다.

    완성된 거는 음, 저는 믹싱실에서 봤다. 스크린으로 본 건 기술 시사 때. 저도 일단 아쉬운 부분들만 눈에 띄는 것 같다. 그리고 이제, 믹싱실에서 사운드 작업을 하면 거기서 들리는 사운드 환경하고 막상 극장에서 틀면 그게 극장마다 조금씩 다르다. 이를테면 언론 시사 땐, 맨 처음 우~하는 사운드가 들리는데 처음에 안 들렸다. 극장 볼륨을 살짝 올린 거다. 작업할 때 '극장 가면 다를 거예요' 하는 얘기를 많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신인이라서… (웃음) 처음 확인하니까 당황하기도 하고 속상하기도 하고 그랬던 것 같다.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배심원들' (사진=반짝반짝영화사 제공)

     

    ▶ 언론 시사회 당시 무척 긴장한 듯 보였다. 그때 언론 평이 꽤 좋은 편이었는데 기분이 어땠나. 또, 주변에서는 영화를 보고 뭐라고 전했는지.

    (그날) 굉장히 긴장했다. 일단 축하를 많이 해 주셨다. 영화가 괜찮게 나와서 잘됐다는 얘기? (웃음) 흥행만 잘 되면 되겠다 싶더라. 저는 언론 시사 끝나고 그때가 제일 좋았던 것 같다. 사실 신인 감독은 전작이 아무것도 없으니까, 사람들이 큰 우려와 불안을 함께 가져갈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감독이니까 믿고 가야하고. 굉장히 복잡하고 힘든 상황에서 촬영을 진행할 수밖에 없는 건데, 박형식의 27테이크 사건이 있지 않았나. (* '배심원들'로 장편 상업영화에 처음 참여한 배우 박형식은, 첫 촬영 때 한 씬을 27테이크까지 갔다)

    경험이 많은 김홍파 선배가 보기에는 '아니, 신인 감독이 촬영 초반부터 이렇게 해서 어떻게 영화를 찍을까' 하셨던 것 같다. (웃음) 그러잖아도 신인 감독이라 불안한데 영화가 어떻게 나올까, 기대 반 걱정 반이랄까. 김홍파 선배는 그날(언론 시사회) 영화를 처음 보셨다. 그때 저한테 '승완아, 네가 이렇게 하려고 현장에서 그렇게 했구나'라고 구체적인 표현은 안 하셨지만 뭔가 되게 저를 인정해 준 느낌이었다. 그게 제일 뿌듯했던 것 같다.

    ▶ 본인도 기대했던 만큼 영화가 잘 나왔다고 보나.

    배우들이 굉장히 연기를 잘하지 않았나. 다 잘하셔서 '다 배우들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연기 너무 잘하셔서, 사실 시나리오를 쓰면서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캐릭터들을 잘 살려주셨다. 너무 고마워했는데, 문소리 선배님이 이 모든 배우를 다 함께 모은 감독님의 공이 크다고 해 주셨다. 되게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웃음)

    ▶ 배우들 칭찬을 했으니 말인데, 말 그대로 캐릭터가 살아있었다. 캐릭터 특성을 어떻게 잡고 그려나갔는지 설명 부탁한다.

    1번 배심원 윤그림(백수장 분)은 취업 잘 된다고 하니까 공대 갔지만 졸업하고 나서야 정말 법 공부가 하고 싶어서 늦깎이로 들어온 사람이다. 그렇게 똑똑해 보이진 않는 이미지다. 2번 배심원 양춘옥(김미경 분)은… 제가 가장 그 나이대와 세대에 맞는 평범한 사람들을 다 모으고 싶었다, 누구나 있을 법한. 60대는 대부분 요양보호사를 하시는 것 같다. 자식들이 돈을 용돈을 풍족하게 주지 않는 한. 50대는 마트 노동자를 한다면 60대는 요양보호사가 많더라. 제 주변 친구 어머니도 그렇고. 3번 배심원 조진식(윤경호 분)은 대리운전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무명 배우인데 그 설정이 다 잘렸다. 대충대충 하고 '열심히 해 봐야 소용없다'면서 뭔가 포기한 느낌을 주려고 했다.

    지난 15일 개봉한 영화 '배심원들' (사진=반짝반짝영화사 제공)

     

    4번 배심원 변상미(서정연 분) 같은 경우에는 어떻게든 자식 잘되게 하려는 중산층 엄마다. 교육열이 높고. 5번 배심원 최영재(조한철 분) 비서실장은 대기업 다니지만 엘리트 사회에선 '따까리'다. 본인도 굉장히 좋은 대학을 나왔을 텐데 그들 세계에서는 언제나 '엘리트가 되지 못한 사람'인 거다. 6번 배심원 장기백(김홍파 분)은 30년간 시체 닦으면서 어떤 '경험'이나 '노하우'에 대한 진수를 보여줬다. 7번 오수정(조수향 분)은 취준생이라고 하는데 직업이 중요했던 건 아니고 거기(임대아파트)서 살았던 설정이 중요했던 것 같다. 처음부터 (임대아파트 거주 사실을) 얘기 안 한 건 굳이 얘기하고 싶지 않아서였을 거다. 8번 권남우(박형식 분)는 뭐, 지금 파산 선고를 앞두고 있는데 자기 처지를 정확히 파악하지 못한 채 그냥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사는 사람이다.

    이 영화의 과정을 다 보고 난 다음에 (배심원들이) 조금씩 성찰하고 성장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재판장(김준겸)이 가장 크게 변하는데, 남우가 그렇게 하는 기폭제가 된다. 조진식도 대충대충 해~ 이러다가 뒤로 가면 열심히 한다. 변상미도 (딸과 통화할 때) '엄마도 중요한 일이 있어'라며 자기를 좀 찾는다. 법원을 떠나면서 다들 (자기를) 조금씩 찾게 되지 않았을까. 그런 인물로 그리고 싶었다. (배우들이) 너무 훌륭하다. 너무 맛을 잘 살린 것 같다. 제가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잘 살렸다. (다들) 자기 욕심을 안 냈다. 조한철 선배가 생각한 대사를 변상미에게 줬을 정도로. 서로 캐릭터가 좋아진 건, 모두 노력해서 힘을 합친 결과라는 생각이 들더라.

    ▶ 김준겸(문소리 분)이 형사부만 18년 했을 정도로 출세욕 없고 강직한 여성 판사라는 설정도 눈에 띄었다.

    일단, 그분은 법과 원칙에 정말 충실하다. 설정 자체는 그거였다, 법원 내에서 주류는 아니라는 것. 비법대 출신에 주류는 아니지만 나름 소신이 있어서 법과 원칙에 충실했던 사람. 오랜 연륜으로 인해서 자기도 모르게 어떤 초심을 살짝 잃은 것으로 설정했다.

    ▶ 배우들이 본인 생각보다 더 캐릭터를 잘 살려줬다고 했는데, 캐스팅 배경이 듣고 싶다.

    배우별로 캐스팅하는 과정은 꽤 오래 걸렸다. 1년 가까이 했기 때문에. 저 혼자 오디션을 본 것 같다. (웃음) 이를테면 영화와 드라마를 보다가 '어? 저 배우가 여기에 맞겠다'는 느낌을 받으면 엑셀로 리스트를 만들고 출연작을 봤다. 저 혼자만 하는 것은 아니고 제작사 PD, 대표와 함께하면서 주변으로부터 추천을 받고 나온 결론인 것 같다.

    우선 문소리 씨는 그냥 재판장으로서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왜 문소리를 재판장으로 하셨어요?'라고 하면 '문소리니까'라고 했다. 그럼 모두가 수긍하더라. 왜 모두가 수긍할까? (강직한 판사 역에) 의심의 여지 없이 잘 어울린다고 했다는 건, 연기도 잘하지만 그 사람의 배우로서 행보에 대한 신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 두 개(연기-행보)에 의심의 여지가 없었던 것 같다.

    18년째 형사부에서 근무 중인, 강직하고 신념 있는 원칙주의자 판사 김준겸 역은 문소리가 연기했다. (사진=반짝반짝영화사 제공)

     

    박형식 씨는 제가 맑은 얼굴이라고 하니까 '착하게 생긴 얼굴'이라고 받아들였다. 그때 제가 대중적 화법을 잘 못 쓰는 건가, 하고 생각했다. (웃음) 저는 도화지 같은 얼굴, 뭘 입혀도 삭 받아들이는 얼굴이라는 의미였다. 그런 맑은, 흰 도화지 같은 얼굴이어서 제가 원하는 느낌을 만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남우가 만약 악역이었다면 (박형식 씨는) 악역도 굉장히 잘했을 그런 얼굴이다.

    그전에도 백수장 씨를 어디 사석에서 본 적이 있었다. 그때 사람이 되게 진중하고 좋은 사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 대표님이랑 '범죄의 여왕'을 봤다. 거기서도 고시생으로 나오지 않나. 되게 귀엽고 재밌게 하더라. 그 영화를 보면서 캐릭터가 겹치는 느낌도 받았지만 잘 나온 것 같다.

    윤경호 씨는 '그래, 가족'이란 영화에서 이요원 씨 동료로 나온 적이 있다. 작은 역인데 이요원 씨하고 밥 먹는 씬에서 '히~'하고 너무 자연스럽게 웃더라. 정말 그런 사람인 것 같이. 거기서 확 꽂혔다. 저 사람이 조진식을 하면 되게 재밌을 수 있겠다 싶었다. 가벼우면서 대충대충 하는 걸 보면 재수 없을 수 있는데, 사실은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떠드는 느낌 같지 않나. 그 '히~'하는 웃음에 꽂혔다. 이거 찍을 때만 해도 더 알려져 있었는데 배우로서도 (쭉쭉) 올라와서 너무 반가웠다.

    변상미 역 서정연 선배는 워낙 드라마에서 메소드 연기를 보여주시기 때문에… 어떤 면에서 (변상미는) 전형적인 캐릭터다. 그런 것도 밉살스럽고 맛깔나게 되게 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했다. 김홍파 선배는 어디에 딱 꽂혔다기보다는 임팩트가 있어야 했다. (법정에서) 그렇게 확 내지르는데 되게 짧게 나오잖나. 짧게 나오더라도 (임팩트 있게) 해줄 배우로서는 최적이라고 생각했다.

    7번 오수정 역은 좀 새로운 느낌을 원해서 오디션을 꽤 많이 봤다. 프리(프로덕션)하는 두 달 내내 오디션 본 결과에서 (조수향 씨는) 그중 군계일학이었다. 새로운 얼굴의 이미지를 생각해서 뽑으려고 했는데, 그분 연기가 너무 좋아서 연기력 하나 믿고 가게 된 배우다.

    양춘옥 역 김미경 선배는… '연기 잘하는 60대' 이 리스트에 30명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이 찾아봤다. 어떤 단편영화에 나오는데 당구 치는 영화였다. 완전히 생활에 찌든 엄마인데 묘하게 웃기고, 마지막 순간에 확 귀여워지는 엄마 역이었다. 엄마가 갑자기 당구를 치기 시작하면서 아들이 백수로 살고. 그 단편영화에서 봐서 (김미경 씨는) 이미 알고 있었다. '밀양'에서 전도연 씨가 옷가게 들어왔을 때 그 가게 주인으로 나왔던 분이다. 연기 잘한다고 해서 존재는 이미 알고 있었는데 그다음에 그분 연기를 볼 데가 없었다. 정말 무표정하고 세파에 찌든 느낌인데 묘하게 귀여운 순간이 있어서 '연기 내공이 장난 아니구나' 생각했고, 주변에서도 추천을 받아서 하게 됐다.

    최영재 역 조한철 씨는 악역으로 나온 걸 주로 봤다. 제가 찾아본 드라마와 영화 속에서 너무 세게 나와서 '어, 이분이 괜찮을까?' 싶었다. 연기를 잘하셔서 미팅을 했다, 실제 보고 판단하려고. 근데 너무 웃기다, 사람이. 너무 웃겨서 '아, 이게 영화 속에서 연기를 이렇게 한 거지 실제 사람은 굉장히 웃긴 사람이구나'라고 해서 최영재로 딱이라고 생각했다.

    극중 첫 국민참여재판의 피고인 강두식 역으로 나오는 배우 서현우 (사진=반짝반짝영화사 제공)

     

    ▶ 증거, 증언, 자백이 확실한 사건의 판을 뒤집는 것이 바로 피고인 강두식(서현우 분)이다. 다가가기 힘든 무서움과 괴팍함, 그러면서도 자기 행동에 의문을 품는 자세에 연민도 생기는 캐릭터가 인상적이었다. 서현우 캐스팅 배경도 궁금하다.

    서현우 씨는, 저는 몰랐다. 저희 학교 출신인데도. 누가 추천해주셔서 찾아봤다. 감독이 캐스팅을 결정할 때는 그럴 수밖에 없다. 모든 배우를 제가 다 아는 건 아니니까. (웃음) 누구 잘한다고 해서 확인 안 하고 캐스팅했다가 혹시 낭패를 보면 책임을 제가 져야 하니까 확인할 수밖에 없었다. '1987'에서 되게 느물느물한 검사로 나왔다. 하정우 씨랑 목욕탕에서 같이 나온다. (웃음) 제가 결정적으로 서현우 씨와 (작업)하고 싶어진 단편이 있었다. 거기서 굉장히 무표정했다. 약간 사회 부적응자 같은 느낌의 캐릭터였다.

    ▶ 그 단편에서 두식의 얼굴을 본 건가?

    네네네! (웃음) 칼로 살인하는 역인데 '이분 연기가 엄청나구나, 여태 내가 왜 이 배우를 모르고 있었지?' 반성할 정도로 엄청난 연기 보여주셔서 되게 확신이 갔다. 웬만큼 연기를 하지 않으면, (피고인 역할은 애매해질 수 있었다. 분량도 적고. 제가 생각한 피고인은 뭔 짓을 저지를지 모르는 인물이었다. 나쁜 놈도, 불쌍한 놈도 아니었다. 우리가 길 가다 보면 '어?' 하는 은근히 무서운 사람이 있지 않나. 아무것도 안 했지만 편견 속에서 자라난 이미지로 무서워하는 사람. 뭔 짓을 저지를지 몰라서 오는 공포감이 있는. 되게 쉽지 않다. 분량이 많으면 (캐릭터를 더 잘) 드러낼 수 있는데 짧게 하면 쉽지 않다. 그래도 서현우 씨라면 할 수 있는 확신이 있었던 것 같다. 너무 잘해줬다. 거의 한두 번에 OK가 났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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