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프로농구 6개 구단 감독들이 25일 서울 등촌동 WKBL 사옥에서 진행된 외국인선수 선발회를 마치고 포즈를 취하고 있다. 왼쪽부터 안덕수, 위성우, 임근배, 유영주, 정상일, 이훈재 감독 (사진=WKBL 제공)
"우리 선수 잘 뽑은 거 맞아요? 그럼 왜 앞에서 안 뽑았대?"
25일 서울 강서구 등촌동 한국여자농구연맹(WKBL) 사옥에서 개최된 2019-2020 여자프로농구 외국인선수 선발회.
위성우 감독과 전주원 코치 등 아산 우리은행 스태프가 4순위 지명을 앞두고 회의를 하기 위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 나머지 구단 관계자들은 훈훈한 분위기 속에서 대화를 주고 받았다.
올해 처음으로 여자프로농구 구단 지휘봉을 잡은 부천 KEB하나은행의 이훈재 감독은 앞선 3순위 지명에 대한 주위의 반응을 살폈다. 좋은 선수를 뽑았다는 타팀 감독들의 부러움 섞인 평가를 듣자 표정이 밝아졌다.
KEB하나은행은 마이샤 하인스-알렌(188cm)을 지명했다. 미국여자프로농구(WNBA) 워싱턴 출신의 유망주. 정통 빅맨은 아니다. 주력이 좋고 득점력이 뛰어난 포워드.
이훈재 감독은 "가장 앞선 순위였다고 해도 하인스-알렌을 뽑았을 것이다. 빠른 농구에 적합하다"라며 "열정이 너무 좋고 팀 분위기를 활기차게 끌어올릴 수 있는 선수"라고 만족감을 나타냈다.
드래프트 현장에서 펼쳐지는 각 구단의 눈치 싸움은 코트 위 경쟁만큼이나 치열하다. 좋은 선수가 먼저 뽑혀도 고민, 뽑히지 않아도 고민이다.
장고 끝에 행사장에 재입장한 위성우 감독은 4순위 지명권으로 포워드 르샨다 그레이(188cm)를 지명했다.
어떤 점을 고민했느냐는 질문에 위성우 감독은 "그레이가 남으면 괜찮다고 봤는데 왜 안 뽑혔지? 그런 고민을 했다. 앞에서 뽑힐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웃었다.
그레이는 2017-2018시즌 신한은행 소속으로 35경기(평균 21.1분)에 출전해 14.5득점, 10.4리바운드를 기록한 WKBL 경력자다.
외국인선수 선발 과정에서는 새 얼굴을 찾는 모험 대신 이미 기량을 검증받는 경력자를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올해도 마찬가지다.
지난 2시즌동안 탁월한 득점력을 증명한 다미리스 단타스는 3시즌 연속 WKBL 무대를 밟게 됐다.
부산 BNK 썸은 창단 구단에 대한 혜택으로 보장받은 1순위 지명권으로 다미리스 단타스(196cm)를 뽑았다. 단타스는 지난 시즌 BNK 썸의 전신 OK저축은행에서 뛰었다. 사실상 재계약에 가깝다.
유영주 BNK 감독은 "우리 선수들과 SNS 등에서 메시지를 주고 받는 등 지난 시즌에 친분 관계 유지가 잘된 것으로 알고 있다. 선수들이 (단타스의 영입을) 간절히 원했다. 한번 더 호흡을 맞추면 더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BNK 썸이 1순위를 보장받은 가운데 나머지 지명 순위는 지난 시즌 성적의 역순에 따라 확률을 분배한 뒤 추첨을 해 결정했다.
부산 BNK 썸의 유영주 감독 (사진=WKBL 제공)
지난 시즌 최하위로 2순위 지명권 당첨 확률이 가장 높았던 인천 신한은행이 예상대로 2순위를 확보했다.
신한은행의 신임 사령탑 정상일 감독은 포워드 앨라나 스미스(193cm)를 선택했다.
올해 국내 무대를 밟는 선수 중 아마도 경력이 가장 화려할 것이다. 명문 스탠포드 대학 출신으로 올해 WNBA 신인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8순위로 피닉스의 지명을 받았다. 20살 때부터 호주 국가대표로 활동해 지난해 농구 월드컵 준우승에 기여하기도 했다.
스미스는 유력한 상위권 지명 후보였다. 그의 영입을 희망한 구단은 다수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위성우 우리은행 감독은 "스미스를 생각하고 있었는데 사실 앞에서 뽑힐 줄 알았다"고 말했다.
정상일 감독은 목표를 달성해 만족한다고 밝혔다. "스미스는 당초 생각했던 선수로 젊고 부상 이력이 없다. 빠르고 내외곽 플레이를 모두 할 줄 안다. 스탠포드 대학에서 주장을 맡았다고 한다. 리더십이 있다는 부분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여자프로농구에서는 각 구단이 외국선수를 1명씩 보유하기 때문에 부상 관리가 중요한 변수로 여겨진다.
정상일 감독이 스미스의 영입에 반색한 또 하나의 이유다. 그는 "무엇보다 부상 이력이 없다는 점에서 다른 선수들보다 낫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용인 삼성생명은 5순위로 센터 리네타 카이저(193cm)를 선발했다. 카이저 역시 지난 2012-2013시즌 KB스타즈에서 뛰었던 WKBL 경력자다.
하지만 당시 태업 논란이 있었다.
카이저는 발목 부상 때문에 공백기가 길었고 복귀 이후에도 경기 당일 오후 갑자기 못 뛰겠다는 의사를 밝힌 적도 있었다. 또 WNBA 구단과의 재계약이 확정된 뒤 빨리 미국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글을 SNS에 적기도 했다. 결국 KB스타즈는 그를 퇴출했다.
임근배 삼성생명 감독은 이같은 우려에 "발목이 안 좋은 상태에서 경기에 뛰었고 이후 다시 아프다고 했는데 그게 태업으로 보여 퇴출된 것이라고 들었다. 이 과정에서 조금 잘못 알려진 부분이 있었다. 성격 등을 자세히 알아봤는데 크게 문제는 없었다"고 했다.
이어 "기량은 괜찮다. 수비 센스가 있고 공격력도 나쁘지 않다. 슛도 던질 줄 아는 선수다. 지금 소속팀이 없기 때문에 미리 연락을 해서 운동에 대한 주문을 해야 할 것 같다. 몸 상태가 가장 중요하다"고 평가했다.
'디펜딩 챔피언' 청주 KB스타즈는 우승의 주역 카일라 쏜튼(185cm)과 다시 호흡을 맞추기로 했다.
쏜튼은 WKBL 3년차 시즌이었던 지난 2018-2019시즌 KB스타즈 유니폼을 입고 평균 20.7점, 9.5리바운드를 올려 외국인선수상을 차지했고 베스트5에도 이름을 올렸다.
안덕수 KB스타즈 감독은 쏜튼에게 바라는 점을 묻는 질문에 "어이없는 실책이 줄면 좋겠다"며 웃었다.
이어 "가끔 흥분해서 파울을 한다거나 흐름을 바꿔놓는 플레이를 하는데 보다 더 침착하게 농구를 하면 좋겠다"고 말했다.
예년에 비해 전반적으로 선수층이 얇다는 평가 속에서 6개 구단은 오랫동안 준비한 자료를 토대로 외국인선수 선발을 마쳤다.
이래도 고민, 저래도 고민이지만 모두가 장밋빛 미래를 꿈꾸는 순간이었다. 한 시즌 결과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외국인선수 선발에서 과연 누가 웃게 될까. 주사위는 던져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