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참석차 일본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오후 오사카 웨스틴호텔에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 회담하기에 앞서 악수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 주석이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정상회담 자리에서 또다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를 언급해 한국 정부를 긴장시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한국 방문 이틀 전 이뤄진 회동에서 양국이 암묵적으로 덮어버린 사드 문제를 꺼낸 것은 중국으로부터 등을 돌리지 말라는 경고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열리는 일본 오사카에서 문 대통령과 만난 시 주석이 "사드와 관련한 해결방안이 검토되기를 바란다"는 언급을 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이날 밝혔다. 시 주석이 먼저 사드 관련 발언을 꺼내들자 문 대통령은 "그렇기 때문에 비핵화 문제가 해결돼야 한다"고 응수했다.
청와대 관계자는 "비핵화가 선행되면 사드 문제가 해결된다는 구체적 언급은 아니고, 같이 연동될 수 있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비핵화와 사드는 선후 관계가 아니며 "한중 정상이 해결방안이 모색돼야 한다는 원론적인 얘기를 나눈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극구 경계했다.
이날 저녁 중국 관영 CCTV는 "한국 측이 양국 간의 유관 문제를 계속해서 중시하고 적절히 처리하길 바란다"는 시 주석의 발언을 소개했다. '유관 문제'라며 직접적인 언급은 피했지만 사드 문제가 언급됐음을 공식적으로 확인한 셈이다.
CCTV 보도 내용에 따르면 시 주석은 사드 관련 언급에 앞서 "한중 협력은 완전히 호혜 공영으로 외부 압력의 영향을 받아선 안 된다"는 말을 꺼냈다. '외부 압력'이란 차세대 5G 이동통신 사업에서 화웨이(華爲) 배제를 요구하는 등 반중전선에 한국을 동참시키려는 미국의 압박을 의미한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최근 홍콩의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한국이 5G 사업에서 화웨이를 배제하지 않으면 대북 정보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미국이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실제로 랜달 슈라이버 미국 국방부 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는 한국 매체와 인터뷰에서 "화웨이 때문에 동맹국과 미국이 민감한 정보를 공유하지 못하게 되지 않길 바란다"며 이런 보도를 뒷받침했다.
시 주석은 이어 "양측은 유엔, 주요 20개국(G20) 등 다자 틀 내에서 협조를 강화해야 하고 보호주의를 함께 반대해야 한다"며 우회적으로 중국편에 서줄 것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문 대통령은 "미국과 중국은 한국의 1, 2위 교역국으로 중요하다"며 "어느 한 나라를 선택하는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고 답했다.
이런 시 주석의 발언들은 미국과 한국을 동시에 조준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틀 뒤면 한국을 방문하고 당연히 '화웨이 배제'를 요구할 것이라는 점을 예상해 미리 선수를 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어떤 의미든 한국 정부는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됐다. 미·중 무역전쟁이 격화되면서 한국 입장에서 가장 우려하던 상황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다는 징조이기도 하다. 시 주석이 우회적이기는 하지만 다시 '사드'를 언급했다는 것은 특히나 불길하다. 최악의 경우 롯데마트의 중국 시장 퇴출로 상징되는 한국 기업에 대한 보복이 재현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기 때문이다.